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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에 핀 꽃 봄을 알리는 진달래와 춘심 이종묵

겨우내 얼어 있던 대지가 녹으면 농부들은 바쁘게 들일을 나간다. 농촌의 봄날은 노동과 함께 이른다. 조선 말기의 시인 이학규(李學逵)는 봄날 시골의 풍경을 이렇게 그렸다.

봄이 오니 하는 일마다 생계가 달린 것 무논에는 벼를 심고 언덕에는 삼을 심네.
몸소 난간 앞의 대나무를 베어 탁 트이게 하고 따로 울타리에 오이 넝쿨을 올리도록 가르치네.
나무하는 아이 가면서 입으로 풀피리 부는데 나물 캐는 처녀 돌아갈 때 머리에 꽃을 꽂았네.
이러한 일에 마음이 쏠리지 않는다면 만년에 어찌 전원에 머물 수 있으랴?

春來作事摠生涯  水種香秔岸種麻
自與翦除穿檻竹  別敎培養縋籬瓜
樵兒去處脣吹葉  菜女歸時鬢有花
不是此間料理過  晩年那得住田家
- 이학규, <잡다한 일을 우연히 시로 짓다(雜事偶題)>

봄이 오면 농촌은 바빠진다. 무논에는 볍씨를 뿌리고 언덕에는 마를 심는다. 일손이 부족하니 난간 앞의 대나무를 적당하게 쳐서 시야가 탁 트이게 하는 일은 직접 하고, 아래 사람들을 시켜 오이를 심어 울타리 위로 넝쿨을 올리게 한다. 나무하는 아이들의 풀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나물 캐는 처녀들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춘흥에 머리에 꽃을 꺾어다 꽂는다. 이러한 일을 즐길 줄 모른다면 어찌 전원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봄날의 전형적인 옛 풍경은 나무를 하면서 풀피리 부는 시골 아이나 머리에 꽃을 꽂고 나물을 캐는 처녀의 모습일 것이다. 이학규의 시에 보이는 여인이 머리에 꽂은 꽃은 아마도 진달래꽃이리라. 진달래는 한자로 두견화(杜鵑花)라 적는다. 촉(蜀) 망제(望帝)의 죽은 넋이 화하여 두견새가 되었고 그 새가 울면서 토한 피가 꽃잎을 붉게 적셔 두견화라는 말이 생겼다. 혹은 두견새가 처음 울 무렵 이 꽃이 피어 두견화라는 말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16세기의 문인 소세양(蘇世讓)은 두견새가 봄소식을 전하고자 봄바람을 먼저 보내어 진달래를 피게 하였다고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새벽녘 바닷가에 노을이 붉게 타는데  바위 절벽 모래 언덕에 멋대로 피었네.
두견새도 봄소식을 전하고 싶었나보다  봄바람 먼저 보내 온 나무에 꽃 피웠으니.

際曉紅蒸海上霞  石崖沙岸任欹斜
杜鵑也報春消息  先放東風一樹花
- 소세양, <처음 핀 진달래를 보고서(初見杜鵑花)>

명나라 주이준(朱彛尊)의 『명시종(明詩綜)』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소세양이 1537년 중국에서 온 사신을 접대한 자리에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소세양의 문집에는 이 시가 실려 있지 않지만 중국인의 안목에도 이 시가 뛰어났기에 『명시종』에 수록되어 전하게 되었다.  진달래는 봄을 알리는 꽃이다. 자신이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을 본다면 얼마나 기쁠까? 17세기의 문인 이진백(李震白)은 그러한 뜻을 담았다.

나무하는 아이 머리에 진달래를 꽂고서 돌아오는 길에 사람을 만나 자랑하였네.
아이들이 다투어 어디서 꺾었는지 묻기에 서암(西巖)의 개울가를 웃으며 가리키네.

樵兒頭揷杜鵑花  歸路逢人輒自誇
群童競問折來處  笑指西巖溪水涯
- 이진백, <나무하는 아이가 꽃을 꺾다(樵童折花)>

동네에서 나무하러 간 어린아이가 먼저 핀 진달래꽃을 발견하고 의기양양하게 머리에 꽂고 내려와 자랑한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어디서 꺾었는지 묻기에 서쪽 바위 아래 개울가라 일러준다. 이것이 아이의 춘심(春心)이다. 춘심은 아이보다는 여인의 몫이다. 하항(河沆)이라는 16세기 선비가 경상도 상주 땅을 지나다가 무진정(無盡亭)이라는 정자에 올라 이런 시를 지었다.

부끄러워하는 저 여인네 선비의 유혹을 받았나, 강가에 등지고 서서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네.
끊임없는 춘흥에 봄 풍광을 그리워하여 진달래꽃을 꽂고서도 몸을 가누지 못하네.

有女羞爲吉士誘  江干背立不回頭
丹心未盡懷春態  猶插鵑花不自由
- 하항, <무진정에 올라 즉흥적으로 짓다(登無盡亭卽事)>

낙동강 가에 있는 무진정에 올라보니 한 여인이 비녀에 진달래 꽃 가지 하나를 꽂고 있다. 아마도 평소 흠모하던 선비가 데이트 신청을 하였나보다. 저렇게 부끄러워하면서 뒤돌아보지 못한 채 강물만 바라보고 있으니. 여인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름다운 사랑만이 가득하다. 이것이 머리에 진달래를 꽂는 여인의 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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