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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을 추모하며 “아산이 그립습니다, 고맙습니다” 편집부

“왜 신이 감동하셨을까 짐작합니다”
옛날 제 시골 집 뒷동산에는 용트림하듯 솟구치는 커다랗고 오랜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각박한 세월을 살면서 저는 그 나무 아래서 온갖 꿈을 꾸었습니다. 그 거목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무도 모르게 키우고 있었습니다. 거목은 제 이상이었고, 꿈의 실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거목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정주영 회장님을 회상하면 그 거목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그분의 경제도, 정치도, 인간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의 그늘에서 마음이 평안했던 경험, 그분의 울창함에서 한 인간의 꿈의 실현을 확인한 경험, 그리고 그분의 거목으로의 성장과정에서 왜 신이 그에게 감동하셨을까를 짐작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분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목에의 그리움을 아직도 잃지 않고 있는 저에게 그분은 여전히 살아있는 거목으로 계십니다. 고맙고 행복한 일입니다.
- 정진홍/ 재단 이사, 울산대 석좌교수

시골서도 바르게 사셨던 아산의 선친
벌써 10주기가 되었다니…. 정주영 회장님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입니다. 어릴 적엔 친정어머니와 이모님들께서 정주영 회장님의 아버님과 할아버님에 대해 하시는 말씀을 듣곤 했습니다. 신문과 TV에 나오면 말씀을 나누셨지요. 이북에서 잘 아시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정 회장님의 선친과 조부님은 정말 바른 분들로 시골에 사셨어도 양반이셨다”고 회상하셨습니다. 저의 조부님도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무료로 서울아산병원에서 무릎 수술을 받고 진료 혜택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분은 우리나라를 이렇게 발전시킨 애국자이십니다. 정주영 회장님이 정말 고맙습니다.
- 황경분/ 서울 가양동 주민

남은 자들의 역할을 생각하며
세상이 참 어수선하다. 자고 일어나면 새 사건이 있고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 안도 나라 밖도 똑 같다. 좋은 일은 드물고 궂은 일이 대부분이다. 들여다보면 모두 욕심 때문이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을 접할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있다. 벌써 10주기, 정주영 회장님이 우리 곁을 떠나가신 지 어느덧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 전체를 보는 큰 어른이 드문 세상, 우리가 본받고 따를 사표가 없는 세태에, 자기만 아는 시절에, 그분의 검소함, 담담함, 열정이 아쉽다. 그분의 업적 그리고 큰 그늘이 새삼 그리워진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린 세계 유수 기업들의 초석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의 효시를 이룬 아산재단의 설립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 소외된 곳에 일찍이 관심을 가지셨다.
아산재단에서 근무한 18년 그리고 해외에서의 4년 동안 그분이 만드신 아산재단의 도움으로 나의 젊은 시절은 보람이 있었다. 아직도 그분이 만들어 놓은 그늘 아래에서 사는 우리 남은 자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본다.
- 황혜헌/ 전 정읍아산병원장,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장

발상의 전환 일깨워 주시는 분
아산께서 주시는 장학금으로 공부를 하고 나이팅게일의 꿈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분께서 질병과 빈곤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든 아산재단의 산하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출근할 때 로비 한켠에서 미소로 반겨 주시는 그분의 큰 모습을 항상 마주 대한다. 특히 일이 안 풀릴 때 나는 그분을 많이 생각한다. 그분의 유연한 사고와 추진력은 나에게도 발상을 전환하라고 일깨워주신다. 해법을 찾아가는 데에 그 이상의 힌트가 없을 듯하다. 5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조선소를 만들고 벼룩에게서 지혜를 터득해 나가는 그런 발상의 전환이 지금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아산은 세상에 안 계시지만 아산정신은 영원히 살아 있다. 아산!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께서 주고가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이봐 해봤어!”는 제 인생에 지침이 되는 어록입니다.
- 강정희  / 홍천아산병원 인공신장실 수간호사

“제 삶에 기회를 주셨습니다”
소아마비와 가난 때문에 재활원에서 자랐으며 그곳에서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대학 진학이나 그 이상의 아무 희망과 비전을 가질 수 없어 좌절감으로 헤매던 청년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함께 악기를 배우던 장애를 가진 친구들(베데스다4중주단)과 함께 미국 신시내티대학으로 유학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 모든 유학비용과 생활비는 정주영 회장님이 설립한 아산재단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수이신 장정자 이사님의 배려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기회였기에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4중주단의 멤버들은 음악가가 되어 교수로, 음악인들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 고마움과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의 인생이 펼쳐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정 회장님과 아산재단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 차인홍/ 지휘자, 미국 Wright State University 음악과 교수

보내주신 승합차에 춤추시던 어른들
1979년에 저희 어머니 이일성로원 이정희 설립자께서 제1회 아산상 사회복지부문 대상 수상의 영광을 받았습니다. 이일성로원은 무료 양로원으로 100여 명의 어르신을 모시고 어렵게 생활하던 때입니다. 부상 2천만 원은 당시 너무나 큰 액수였습니다. 연탄가스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건물들을 개보수 하고, 집기 등 시설이 새롭게 단장되어 어르신들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도움인지라 더욱 기쁨이 컸습니다. 그 후 어르신들은 감사하다며 정 회장님이 건강하고 더 잘되셔서 좋은 일 많이 해야 한다며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12인승 현대 승합차를 보내 주셨는데 하얀색 승합차가 들어오던 날 모두 나와 박수치며 춤추시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그 차는 몸이 불편하셨던 많은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었고, 그 후로도 많은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대가 없는 베풂에 진실로 감동하였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아산 정주영 회장님께 아련한 정을 느낍니다.
- 손문권 / 이일성로원 원장

기회 있을 때마다 하는 ‘아산 강의’
평소 교양특강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산 정주영 회장님의 인간으로서 됨됨이와 인생역정을 힘주어 상기시켜 왔다. 그를 참으로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될 만한 분들이 꽤 많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주영 회장님만큼 실질적으로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가난한 농부로 태어나서 소학교만 졸업하고 미곡상으로 출발하여 핵심 중공업분야를 앞장서 일으켜 세우신 한국경제의 신화적인 인물이다.
정주영 회장님은 항상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곁에 계셨다. 일찍부터 아산재단을 설립하신 것도 그의 인생철학에서 출발한 것이다. 필자 역시 아산재단의 학술연구 지원을 받아 10년간에 걸쳐 연구에 몰두한 적이 있으며, 덕택에 당시 썼던 저서가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적인 혜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 특히 기성세대들은 모두 정주영 회장님으로부터  인간애와 도전정신, 그리고 백년을 내다보는 안목을 배우며 나이를 먹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같이 어려운 때 일수록 아산 정주영 회장님이 무척이나 그립고, 깊은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 윤충원 / 전북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농활 때 직접 수레를 끌던 회장님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에 최고 권위의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되던 기쁨과, 지금은 여러 분야의 요직에 있는 선후배 및 동기 회원들과 구(舊) 서울고등학교 자리에서 공 차고, 구르고, 소주를 나누며 세상을 토론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장학생 농촌봉사활동 때는 직접 수레를 끄시며 학생들과 격의 없이 막걸리를 마시던 거인 정주영 회장님의 모습도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회장님의 10주기…. 요즈음처럼 세상이 각박하고, 각계 지도자 분들의 봉사, 헌신, 희생, 열정의 마음이 아쉬울수록, 마음에 새겨진 거인의 빈 자리가 더욱 더 크게 느껴집니다. 아산장학생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살아오며, 장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귀중한 인연의 한 축을 가질 수 있었고, 또한 순수와 열정이라는 인생의 좌표를 배우게 된 데 대해 저의 작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 오철승 / 아산장학생 동문회장, 대한장애인볼링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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