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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음악회 거인을 다시 보는 환희와 그리움의 무대 김승현

아산 정주영 회장 10주기를 1주일 앞둔 3월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마에스트로 정명훈 지휘로 서울시교향악단의 추모음악회가 열렸다.

연주곡목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1, 2악장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 역시 마에스트로다운 의미와 감성, 미학을 갖춘 선곡이라는 평가다. 두 곡 모두 중학교 교과서에 편곡, 수록돼 배운 음악으로 쉽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깊은 의미와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웅장한 화음으로 세계 음악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명곡들이다.

드보르자크와 베토벤은 마에스트로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들로 정 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삶과 의지를 그대로 닮아 있다. 특히 드보르자크의 삶은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집을 떠나 스스로 몸을 일으켰으면서도 평생을 소박하게 살면서 조국과 민족을 잊지 않은 아산의 그것과 꼭 빼닮았다.

시련을 극복한 드보르자크와 베토벤
드보르자크(1841-1904)는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30km쯤 떨어진 몰다우강 기슭 네라호체베스에서 푸줏간 겸 여관업을 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16세에 가출, 프라하의 오르간학교에 입학했다. 고학으로 3년간 공부해 비올라 주자로 체코 국민극장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드보르자크는 스메타나를 만나 작곡가로 새롭게 눈을 떴다. 그는 자연스런 음악 속에 체코 민족의 애환을 담은 작품을 작곡하며 표제음악이 전성기를 이루던 시절 절대음악 작품을 많이 썼다. 1892년 미국 뉴욕 국민음악원 원장으로 초청돼 활동 중 흑인영가와 인디언음악을 접목해 불후의 명곡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했다. 드보르자크는 전 생애를 걸쳐 소박함을 잃지 않았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그가 완전히 청력을 잃었음에도 불구, 침묵의 세계 속에서 작곡한 불후의 명작이다. 특히 4악장 ‘환희의 송가’는 베토벤이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를 30여년 동안 매만져 만들어낸 걸작 중의 걸작으로 꼽힌다.

박수와 함께 포디엄에 오른 정명훈은 잠시 침묵 속에서 기를 모았다. 이윽고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신세계로부터’ 1악장 아다지오-알레그로 몰토를 저어 나갔다. 첼로의 낮은 선율이 여리게 영탄하듯이 시작해 두 개의 호른이 5음계적 제1주제를 따랐다. 이어 오보에와 플루트에 의해 제2주제가 제시되며 힘찬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절묘하게 융합, 발전하며 모든 악기의 화음연주가 경쾌하게 신대륙의 대평원을 질주하며 시원하게 코다로 맺었다. 흥겨운 체코 민속가곡과 영혼을 후벼 파는 흑인영가의 느낌이 가슴을 휘감았다. 역시 섬세하면서도 경쾌한 활력과 화려한 화음을 잃지 않는 마에스트로 정명훈 특유의 음악이었다.

한바탕 질주가 정리된 후 2악장 라르고가 느리게 펼쳐졌다. ‘Going home’으로 편곡돼 노래로도 잘 알려진 부분이다.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아/ 지금은 사라진 동무들 모여/ 옥 같은 시냇물 다리를 건너/ 반딧불 쫓아서 즐거웠건만/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그리운 고향 아 아 내 고향/ 밤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일 때면/ 영혼의 안식처 찾아 헤매네/ 찾아 헤매네/ 밤마다 그리는 그리운 고향/ 영혼의 안식처 찾아 헤매네/ 그리운 고향 내 고향’

추억의 노랫말이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을 따라 머리 속을 맴돌며 아득한 고향의 향수에 자못 비감해진다. 격정적으로 몰아쳤던 신세계 대평원에서의 질주가 잉글리시 호른에 실려 아련한 향수로 다양하게 변주되며 부모, 형제, 자식,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기도 한다.

30년 전, 문화한국 꿈꾼 아산
이런 비감함을 ‘빰빰빰 빠바밤, 빰빰 빠바밤~’하며 체육대회 응원가의 팡파레로도 자주 사용되는 3악장 스케르쪼-몰토가 걷어내고 영화 ‘죠스’의 테마곡으로 널리 알려진 흥겨운 행진곡풍의 4악장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50분의 주어진 여건상 1, 2악장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여간 안타깝지 않다.

그 아쉬움은 세계의 애국가로도 불리는 베토벤의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가 대신 메워줬다.

마에스트로는 ‘합창’ 연주에 앞서 이례적으로 무대에 등장, 이번 추모음악회와 관련한 정 명예회장과의 사연을 소개해 박수를 받았다. 마에스트로는 확실히 ‘말’보다 ‘음악’을 잘한다. 그도 이를 잘 알아 좀처럼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나를 망신시키려면 말을 시키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그는  “진정은 소통된다”며 이례적으로 약간은 더듬는 말로 정 명예회장을 추모했다. “30년 전에 가난한 나라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들고,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문화로 훌륭한 나라를 만들려 했던 비전을 갖고 계셨던 분”이라며 같은 정씨인 게 자랑스럽다는 유머로 양념을 치고 “서로 사랑하고 형제같이 지내자는 세계의 애국가 ‘합창’을 들으며 그 분의 뜻을 기리자”면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D단조 작품 125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 연주를 시작했다.

9번 ‘합창’ 교향곡은 베토벤이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곡을 했으며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고전주의의 완성이자 낭만주의 문을 연 걸작이다. 특히 4악장에 합창을 넣은 것은 베토벤이 사람의 목소리까지 넣은 모든 악기를 동원한 조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베토벤이 항상 공감하고 애독했던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장시 ‘환희의 송가’에 의한 합창을 붙인 교향곡으로 네 사람의 독창과 대합창이 교향곡에 사용된 최초의 음악이다.

베토벤이 ‘환희의 송가’를 음악으로 옮기려고 마음먹은 것은 23살 때다. 그러나 실제로 ‘환희의 송가’가 교향곡에 담겨 완성된 것은 31년 뒤인 1824년이다. 베토벤이 처음으로 교향악과 칸타타의 결합을 시도한 것은 1808년의 ‘합창 환상곡’ 작품 80번에서였으며 이 시도가 나중에 교향곡 ‘합창’의 밑거름이 됐다. 이 곡을 작곡할 때 베토벤은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음향의 세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무한한 고통과 싸워야 했고, 육체적인 건강의 악화와 가난 때문에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초인적 의지로 천상의 선율을 찾아가며 역경을 극복, 불멸의 환희의 순간을 포착해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명예회장의 의지와 꼭 같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등 현이 웅장하게 바닥을 다지고, 클라리넷과 오보에 등 관이 경쾌하게 뛰놀면서 부드러움과 열정의 조화 속에 행복하게 펼쳐지던 화음을 뚫고 ‘벗이여 보다 즐거이 노래부르지 않겠는가’라며 바리톤 정록기의 힘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 소프라노 박정원, 메조소프라노 백재은, 테너 나승서, 바리톤 정록기 등 4명의 독창자와 국립합창단, 고양시립합창단, 나라오페라합창단 등 120여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모든 인류는 한 형제가 되도다/ 당신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서/ 백만의 사람들아, 이 포옹을 받아라/ 온 세상 향한 이 입맞춤을/ …/ 환희여, 낙원의 딸이여/ 그대의 신비로 다시 결합시키니/ 가혹한 시류가 가르는 것들을/ 모든 인류/ 모든 인류는 한 형제가 된다/ 당신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서/ 그대의 신비, 그대의 신비로 다시 결합시키니’라고 격정적으로 노래했다. 합창에 맞춰 서울시향의 연주도 절정으로 치달았다. 마에스트로는 국내 최대의 무대를 자랑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를 꽉 채운 연주자들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어가며 장장 25분이 넘는 시간을 한 순간의 집중도 놓치지 않고 한 계단, 한 계단 꾹꾹 밟아 올라가며 환희의 절정으로 끌어 올렸다.

음악의 요리사, 웨이터를 자처하는 그답게 베토벤의 진정한 천재 위에 정 명예회장의 생전의 의지를 얹어 웅장한 교향곡의 쓰나미로 조리해낸 그는 한 순간에 관객들의 마음을 환희의 절정으로 와르르 덮쳐버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앙코르 박수에 마에스트로는 다시 한번 ‘합창’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을 연주,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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