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1915~2001)
아산(峨山) 정주영(鄭周永)은 1977년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고 2001년까지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강원도(江原道) 통천군(通川郡) 송전면(松田面) 아산리(峨山里)에서 태어나 한국이 현대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고비마다 큰 족적을 남긴 우리 나라 현대사의 큰 별이다.
아산은 창조적 기업가 정신과 강인한 추진력으로 한국전의 폐허를 딛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을 창설하여 세계시장에 진출하였고, 현대건설을 설립하여 중동 주베일 산업항 공사, 서산방조제 건설 등 국내외 많은 역사적 사업을 주도하였다. 이처럼 그는 한국의 산업화, 국제화를 이루며 한국 경제발전을 선도해 왔다.
아산은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주역으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국민들에게 긍지를 심어주었다. 1998년에는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방북하여 평화통일로 가는 남북교류의 물꼬를 텄다.
아산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였다. 재단은 “우리 사회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 아래 의료사업, 사회복지지원사업, 연구개발지원사업, 장학사업을 수행해 오고 있다. 의료시설이 부족한 농어촌 지역에 먼저 병원을 세우고 1989년에는 서울아산병원을 개원하여 세계적 수준의 종합의료기관으로 발전시켰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아산의 긍정적 사고방식과 도전정신은 영원히 기억되고 빛날 것이다.
봄이다. 3월 20일 조선호텔 오키드룸에서 열린 이번 세미나 자료집 서문에는 정주영 이사장의 글 ‘새봄을 기다리며’가 실려 있다. 먼저 이 봄에 그분의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되고 직접 봄에 쓰셨다는 이 글 일부로 그 분을 느껴보기로 하자. ‘봄볕이 하루하루 짙어져 간다. 천지가 새 봄이다. 이제부터는 기업의 단하에서 봄을 만끽하고 싶다. 경제단상에서 호기있게 일하는 연출자들의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면서 오랜만에 심정의 여유를 가지고 이 봄을 즐기리라. 봄 눈이 녹은 들길과 산길을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위대한 자연을 재음미하고 인정의 모닥불을 피우리라. 천지의 창조주 앞에 경건한 찬미를 바치리라. 인생은 여러 가지이다. 온화한 삶과 질풍처럼 달리는 삶이 있으나 그 궁극의 염원은 한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평화와 자족을 느끼는 마음이다. 봄이 온다. 마음 깊이 기다려지는 봄이 아주 가까이까지 왔다.” - 1981년 2월 25일 서울신문 게재 -
아산 정주영 1주기 추념 세미나 세미나에는 정몽준 이사장을 비롯한 관계자 외에도 평소 정주영 이사장과 친분이 두텁던 각계 인사 500여 명이 참석했다. 박홍 서강대 전 총장의 추념 묵념을 시작으로, 유창순 전 국무총리의 추념사, 기록 동영상으로 이어진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은 다각도로 정 이사장을 조명했으며, 한결같이 ‘소 떼 500마리를 몰고 휴전선을 몸소 넘어가는 것’을 ‘아사니즘(아산-ism)의 구상’, ‘노벨평화상의 계기’, ‘금세기 최대의 정치쇼’ 등으로 표현하며 큰 주제로 삼았다. 과연 ‘소떼 500마리 방북’은 세계 예술계에서도 가장 크고도 멋진 퍼포먼스 아트로 기록될 수 있다. 이 장면은 영상매체를 통해, 소감이라는 소리를 통해, 전세계로 퍼진 가장 훌륭한 행위 예술이었다. 정 이사장은 예술가, 사회사업가, 평화주의자로서도 독창적이며 위대하다. 그는 초인의 힘으로 사회 전 분야를 망라하며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해결되며, 기업이나 정치나 예술이나 모든 분야는 통해 있고, 창조력과 상상력, 그리고 기획력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실제로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 날의 주요 발표 내용을 간략히 추려 본다.
제1부 국가와 민족에 남긴 유산
아산 그림을 위한 몇 개의 획 서양 근대와 동양의 만남을 ‘do-oriented’와 ‘be-oriented’의 씨름이라고도 한다. 1915년생인 아산은 출발부터 ‘do-oriented’였다는 생각이다. 명예회장이라는 대표적인 ‘이다’의 자리에서 그는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었다. 남을 시켜서 해야 될 일을 스스로 ‘하기’에서 보람을 찾는 것이 아산의 원점이 아닐까. 아산은 추상보다는 구상을 중요시하는 언행이 돋보인다. … 햇볕정책은 실상 추상이다. 그런 추상의 이름에 상관없이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몸소 넘어가는 것이 아산-ism의 구상이 아닌가 한다. 또 한국의 문화·예술 관련으로 남긴 자취가 그를 그리고자 할 때 빠질 수 없는 획이라고 말하고 싶다. - 권오기 / 21세기 평화재단 이사장
햇볕정책이 노벨평화상 받게 되는 계기 조국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을 합쳐도,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을 합쳐도, 20세기말 소 500마리 몰고 휴전선을 넘은 것을 따라오지 못한다. 이는 금세기 최대 정치쇼이다. … 그것 없이는 햇볕정책도, 노벨평화상을 못 받을 수도 있었다. - 김동길 /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아산 정주영의 경제 외적 유산 타계한 지가 이제 막 일년이니 그 분의 과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 누가 쓰더라도 위인전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그 분의 전기가 완성된다면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50년사 그 자체가 될 것이 틀림없다. …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이야말로 유교적 가치의 가장 탁월한 실천자였고,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과 함께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논쟁에 연료를 공급한 장본인이었다고 본다. - 이인호 /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신 분 제주도 어느 바닷가에서 그 분이 ‘서울에 가기 싫은데’하는 말을 들었다. 그 분은 매우 감상적인 어른이다. 낭만적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결은 거기 머물지 않았다.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면서도 이를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도식으로 극복하기보다 감상적 성찰을 통한 상상력의 세계에 뛰어들면서 그 사태를 꿈의 실현으로 이어나갔다. 특유의 그런 감상은 현실을 언제나 ‘열려진 가능성’으로 전제하는 그분의 힘의 원천이었던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오늘 우리 시대의 가장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는 상상력의 고갈이라고 말하고 싶다. … 소 떼를 몰고 북녘을 향해 가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녔던 초조와 당혹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 그 때 그 모습처럼 그분의 삶과 인간을 드러낸 일은 없는 듯하다. 그것은 한평생 감상과 낭만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장 현실적으로 삶을 살아낸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드러내 보여준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 정진홍 / 서울대학교 교수
아산 정주영의 정치참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정주영 회장의 정치 참여는 오히려 돋보이는 것이었으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리라고 믿는다. 첫째, 경제발전에 따른 산업자본의 정치 세력화의 국면 전개를 이끌었다는 점이며, 둘째, 3김시대의 도래를 저지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 비록 민주화의 명분이 중시된다고 할지라도 3김시대의 폐해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셋째, 박정희 시대를 마무리짓고자 하는 데 의의를 두었다. 이것은 아산 회장의 과제였다고도 할 수 있다. 아산 회장은 이른바 ‘큰 경제’와 ‘큰 정치’를 같은 테두리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 그러나 기업 경영에만 안주할 수 없게 만든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88 서울올림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올림픽 유치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멍에를 씌우려 했던 게 당시 관계 당국의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산 회장은 개인과 기업의 위기를 오히려 국운 융성의 전기로 만들었다. … 정치 참여와 후퇴는 개인적으로는 재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큰 정치의 꿈을 키우면서 역사적인 거보를 옮겨 나갔다. 그것이 바로 소 떼를 이끌고 방북한 것이며, 나아가서 금강산 관광 개발이었다. 겨레 통일을 향한 정 회장의 ‘큰 정치’는 여기서 한정되지 않는다. 남북 정상 회담의 성사에 기여한 것은 물론이고 북한 경제의 획기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초석을 놓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이 평가되리라고 믿어 마지않는다. - 이규행 / 사단법인 한배달 회장
제2부 한국경제와 사회의 선진화에 대한 기여
한국 경제의 선진화에 대한 기여 미국의 ‘포춘’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은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잭 웰치 회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잭 웰치 회장이 자신이나 GE가 그렇게 된 데는 경영학의 시조라고 하는 피터 드러커 교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했다. 그는 경영학의 성인 한 사람을 꼽는다면 드러커 교수라고 했다. 드러커 교수가 지금까지 쓴 28권의 경영경제학 책을 요약한 ‘드러커 핵심 경영’의 내용을 보면 놀랄 정도로 정 회장의 경영 철학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잭 웰치 회장의 자서전 ‘끝 없는 도전과 용기’와 정주영 회장의 여러 자서전을 읽어 보면 … 정 회장의 업적이 사업 범위, 활동 영역, 경영 철학, 국가 민족의 장래에 대한 비전 등의 면에서 잭 웰치의 업적보다 한결 앞서 보인다. 정주영 회장 주도로 유치한 88 서울 올림픽은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이고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올림픽이 소련과 한국간의 국교 정상화의 길을 열었다고 했다.이는 시카고 대학의 동아시아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가 ‘햇빛 받는 한국’이라는 책에서 밝힌 것이다. 88 서울올림픽은 수많은 동구 공산국가들로 하여금 공산주의를 버리게 만들었고, 한국과의 국교를 정상화하고, 아울러 한국 모델을 배우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송병락 /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 사회의 선진화에 대한 기여 선진, 선진화, 선진 사회는 ‘보다 나은 사회(Better Society)’를 지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진화의 의미를 상대적 개념으로 한정할 때 중요한 것은 이 선진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역량(Capacity)이다. … 문제는 ‘선진화 역량’에서 도시 누가 이 역량을 창도하고 주도해 가느냐이다. 선진화는 정체 사회(Static Society)에서 동태 사회(Dynamic Society)로 이끌고 탈바꿈시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창도자, 주도자, 혹은 촉발자, 추진자(Promoter), 견인차(Tractor)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어떤 변화도 그 사람들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 이 사람들, 이 파이어니어들. 이 히어로들과의 해후야말로 이 시대 사람들의 복이며 행운이다. …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처럼 성취 동기의 증대는 그 의욕과 의지로 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 성취 욕구를 용솟음치게 한 파이어니어가 정주영 회장이고,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의지의 다이내미즘을 불어넣은 히어로가 바로 정주영 회장이다. 우리의 선진화 역량은 이로 해서 키워진 것임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 송 복 / 연세대학교 교수
한국경제를 바꾸어 놓은 거목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교육의 중요성이 절대적이라는 신념으로, 울산에 많은 교육기관(울산대학교, 울산공업전문대학, 현대공업고등학교, 현대여자중학교와 현대여자고등학교, 현대중학교와 현대고등학교)을 1970년대에 설립했고 또 거액의 장학기금도 조성했다. … 울산대학교 아산도서관 앞의 큰 바위에 “젊은 시절, 어느 대학 공사장에서 돌을 지고 나르면서 바라본 대학생들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에게는 한없는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때 이루지 못했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여기에 배움의 주춧돌을 놓게 하였으니…”라는 아산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 아산 정주영 선생은 배움의 주춧돌만이 아니라 사회복지 향상의 주춧돌, 그리고 한국경제의 선진화와 세계화에 큰 초석을 놓으셨다. - 구본호 / 울산대학교 석좌교수
사회복지 유산 기업이윤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돌려주어 밝은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현대건설 소유 주식의 50%를 출연하여 1977년 7월 1일 아산재단을 설립하였다. 아산재단은 지난 25년 동안 4,547억 원이 넘는 사업비를 들여 의료사업, 사회복지 지원사업, 연구개발 지원사업, 장학사업, 학술연찬사업 등을 수행하였다. 의료사업을 보더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삼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연말까지 우리나라 추계 인구(약 4,795만 명)의 88%에 해당하는 4,230만 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하였다. 그 중 의료취약 지역의 영세민과 사회복지시설 수용자 24만 2,000여 명에게는 무료 진료를 해 주었으며, 의학 발전과 의료의 선진화에 기여했다. 사회복지 측면에서는 장애인, 아동, 여성,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 1,335 단체를 지원하였다. … 소년소녀 가장 1,282명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활비를 지원하였다. 학문 발전을 위해 1,851개 연구과제를 지원하였고, 15, 727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아산재단은 해마다 선결해야 할 사회문제를 가지고 대규모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사회복지 총서와 연구총서를 발간, 배포하기도 했다. 아산 정주영 선생의 사업은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빛과 희망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선진화에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 김승국 / 단국대학교 총장
감성 중심 산업의 씨앗 정주영 회장의 경제적 업적보다는 사회문화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미친 영향력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경제적 토대가 선진화의 외형을 갖추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 된다면 사회 문화적 토대의 발전은 사회 내적으로 질적인 차원에서 내실을 갖추기 위한 요건이다. 첫째, 정 회장은 우리 국민이 민족적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였다. 88 서울 올림픽의 유치 또한 6.25 전쟁만을 기억하는 세계에 우리의 잠재된 역량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위대한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소 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을 때였다. 남북이 하나이고 북한이 돌아가야 할 고향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말할 수 없이 큰 사건이었다. 둘째, 장엄한 드라마에서 얻어지는 감동의 에너지가 국민 모두가 하나되는 강격한 유인력을 갖는다. 정회장이 각본 쓰고, 연출, 감독, 주연까지 한 그 장엄한 드라마는 … 민족적인 일체감과 하나됨의 경험은 한국의 선진화를 가능케 해온 중요한 동인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나눔의 정신’이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기 이전인 1969년 한국지역사회학교 후원회 회장으로서 실제적인 지역사회교육 운동을 주도하였다. … 또 정 회장은 시간이 허락하면 저녁 늦은 시간에도 강의를 하였다. 어느 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에 가서 학부모들에게 강의를 했다. 그 부모들이 흐느껴 울면서 합장을 하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학교를 지역사회에 개방하고 부모교육을 활성화하려 했던 시도는 그 자체가 평생교육의 효시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 그분의 성공 비결은 초심을 잃지 않았던 삶의 자세가 가장 중요한 비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분은 마음의 산업이라는 5차 산업 중심 사회로 바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 이 땅에 High Tech산업이 아닌 High Touch 산업, 즉 감성 중심 산업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그 씨앗을 뿌렸다고 믿는다. 어쩌면 후대에는 회장님이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마음의 산업을 시작한 분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 이동원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날 세미나는 아산 정주영 이사장 1주기를 맞아 그 분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고 추모하는 자리가 되었다. 영상물이 방영될 때 들리던 그 분의 목소리는 이 나라를 더 발전시켜 세계 속에 우뚝 서게 하라고 격려하는 듯했다. 정몽준 이사장도 ‘아버님이 그립고 자랑스럽다. 이 자리에 계신 것 같다. 그 분을 계승하고 더 발전시키는 좋은 계기로 삼을 것’을 다짐하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타계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어서 많은 자료 수집을 통한 깊이있는 연구와 토론에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주제 발표자들은 경제적 업적은 물론, 그 외적인 측면을 더욱 깊게 조명하여 새로움을 보여주었다. 또한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그분 에너지의 근원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야 할 당위성과 과제를 남겨 주었다. 이번 세미나는 생의 전 장르에서 활약한 세계적인 인물로서 아산 정주영 이사장의 새로운 면모를 더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정 이사장을 알프레드 노벨, 카네기, 록펠러 등과 견주어 설명하던 좌장 김진현 이봉창의사 기념사업회 회장의 탁월한 사회로 이어진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소 떼몰이 방북을 중요하게 대두시켜 주목을 끌었다.
제4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인사말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낸 성과 오늘로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제정한 한겨레통일문화상이 4번째 수상자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제정할 때와 지금은 남과 북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이제 많은 민간인이 마음만 먹으면 군사분계선을 평화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쪽 사람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일은 무엇보다도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난관이 우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실향민 1세대에서 60을 넘긴 사람은 70여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평생 한을 품고 살아가는 이산가족의 수는 더 많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아픔을 언제까지나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서로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서로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통일이 성큼 우리들 곁에 다가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그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일꾼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제정했습니다. 매년 심사를 할 때마다 많은 분들이 후보로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비록 그분들에게 일일이 상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런 분들을 대표하여 한 분이 수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있으면 고 정주영 회장의 1주기가 돌아옵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방북하던 고인의 모습이 바로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낸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시상식에 오신 유족들과 또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오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비록 늦었지만 고인에게 이 상을 드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 변형윤
제4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심사 경과 통일 일꾼 아산 정주영 -남과 북을 하나로 잇는 노둣돌을 놓다 정주영 회장은 1998년 소 500마리를 이끌고 군사 분계선을 넘으셨습니다. 이름하여 소떼 방북을 추진하셨고, 그 뒤 5개월 만에 현대 금강산 사업을 통한 역사적인 일반인의 관광 방북을 성사시켰습니다. 이 금강산 왕래를 계기로 남북 교류가 본격화되었고, 이는 2년 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군사 분계선을 넘어선 후 ‘이번 북한 방문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이 아니라 부디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저희 심사위원회에서는 금강산 관광이라는 남북 왕래의 역사적 물꼬를 만들어 냉전과 남북 대결의 장막을 열어제친 업적을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데 다른 이론이 없었습니다. 남북 대결의 역사에서, 그리고 세계 최고의 군사 대결 지역을 소떼 500마리를 몰고 유유히 넘나든 일은 아마 민족 분단의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에피소드로 기록될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 전에는 일반인이 북한 땅을 밟는 것, 그리고 북한 주민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냉전의식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 속의 적대 의식을 털어 내고 북한을 동포로 이웃으로 가족으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다른 기업인들은 물론이고 어느 정치인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보통의 기업의 논리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정주영 회장은 이룩해 냈습니다. 이는 바로 고인이 기업인이기에 앞서서 민족 통일을 위한 큰 뜻을 갖고 자기 희생적으로 실천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정주영 회장께서는 1998년에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를 발간하셨습니다. 그 회고록 맨 마지막 장에서 “5년 전 내가 낙선한 것은 나의 실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선택했던 국민들의 실패”라는 한마디를 남기셨습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씀드린다면 우리 한국 현대사의 실상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묘사하는 말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을 잘못한 국민들의 실패’라는 표현은 작금의 우리 사회를 둘러볼 때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입니다. 지금 금강산 여행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언제까지 북한에 퍼주기만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는 어느 때는 바로 통일이 내일이라도 될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아주 먼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는 한때의 이해관계에 좌우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가 넘겨 받았거나 또 지어낸 잘못을 우리 후손에게 또다시 멍에로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이는 바로 고인의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주영 회장의 금강산 사업은 민족통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오랜 계획과 먼 미래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결단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은 기업인이라는 평가에 우선해서 통일에 기여한 통일 일꾼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살아 있을 것이고, 그렇게 역사에 기록되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상식에 함께 한 우리는 뒷날 이론의 여지없이 평가받을 정주영 통일운동가의 업적을 후세의 역사보다 앞서서 세상에 알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가톨릭대학교 교수 안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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