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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있는 공간 삶을 나누는 예술 김선희

부암산 능금나무길 중턱에 아담한 한옥이 한 채 서 있다. 꽤 정성이 들어간 듯한 작고 아담한 정원에는 ‘삶을 축제로’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 있고 그 옆에 ‘Art for Life’라고 새겨진 간판이 서 있다.

이곳이 성필관, 용미중 부부의 보금자리이자 매주 토요일마다 음악회가 열리는 곳이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을 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성필관 씨는 서울시향 오보에 연주자였고, 용미중 씨는 플롯 연주자였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이런 공간을 갖게 됐을까?

용미중 씨를 처음 봤을 때 눈빛이 아주 맑아서 놀랐고,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 동안이라서 또 한 번 놀랐다. 나는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행복하세요?”
그녀는 일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예”라고 대답했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그녀에게 맑은 눈동자를 갖게 했고, 행복하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음악가의 길을 걸어왔다. 아직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여전히 음악가다. 그런데 그녀는 서울시향을 그만두고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요리를 선택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였어요. 프랑스 요리에서 양파나 감자를 볶는데, 그 때 한국냄새가 났어요. 맛은 달라도 요리에 대한 추억이 기억되는 요리는 어느 나라나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그녀는 우연히 지인의 권유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음악으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암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봉사였다. 많은 말기암 환자들을 보면서 그녀는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부터 음식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기억될 만한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어쩌면 음악보다 더 가까이 환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 같았다.

그녀는 서울시향을 그만두고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할 때,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관객들은 힘차게 박수를 치지만, 관객과 진정으로 소통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그녀의 눈앞에서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만나면, 진정으로 그 대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행복했다.

음악에서 ‘카덴차’라는 게 있다. 작품 말미에서 연주가의 기교를 보여주기 위해 솔로 연주자가 화려하게 연주하는 부분이다. 그녀는 요리에서도 카덴차를 연주한다. 즉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화려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뚱뚱한 사람이 크림스프를 원하면 야채를 많이 늘려서 스프를 만든다. 노인들에게는 채소를 무르게 해서 먹기 좋게 하고, 프러포즈를 앞에 둔 연인들에게는 파릇파릇한 채소를 듬뿍 얹어 요리를 한다.

그녀의 삶을 이루는 요소는 세 가지이다. 음악, 봉사, 요리. 이 세 가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것들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을 한다는 점이다. 음악은 청중과, 요리는 고객과, 봉사는 그 대상과 소통한다.

‘Art for Life’는 그들 부부가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혹은 무엇인가를 나누기 위해 꾸며놓은 복합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음악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눈다. 함께 나누기 위해 그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복합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 길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아니 절대 후회 안 해요. 왜냐하면 그 길이 옳은 길이기 때문이에요. 비록 돌아가더라도 옳은 길로 가고 싶거든요.”
그녀의 말이 옳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옳은 길이라면 몇 바퀴를 돌아서라도 그 길로 가야 한다. 그녀는 흔들림 없이 그녀가 옳다고 믿는 길로 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귀를 편안하게 해주는 영롱한 음악과 혀끝을 행복하게 해주는 맛있는 음식과 마지막 순간 가장 행복한 기억을 남기고 떠나는 환자에게 하는 아름다운 봉사와 함께 그녀는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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