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오늘 하루 그대가 되어 “세상이 푸르러 행복해요” 이인영

40년 동안 석고처럼 누워있는 남편을 보살피는 이금안(52) 씨를 만나러 갔다. 전북 군산으로 들어서는데, 겨울 철새 삼사십 마리가 전깃줄 위를 V자로 날며 환영한다. 과연 철새도래지 군산이 맞나 보다. 1945년부터 있었다는 빵집에도 들러 선물용 빵을 고른다. 나운동 삼성아파트. 평범한 거실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며 환자를 찾는다. 아무 냄새도 기척도 없다. “이 집은 아는 할아버님이 아들 집에 가 계신 동안 쓰라며 한 일년 빌려 주셨어요” 하는 그를 보니, 임시 보금자리를 찾아온 아까 본 철새가 떠오른다. 남편 김정언(66) 씨가 있는 안방에 들어서자 비로소 훈기가 돌며 이야기꽃이 터져 나온다. 침대에서 맑은 얼굴로 남편은 행복을 드러내며 말한다. “지금도 아내와 사는 것이 꿈인가 해요.” 이불을 들추고 그의 손을 붙잡는데 빳빳하게 제멋대로 꺾이고 오그라진 손이 하얗고 따뜻하다. ‘하늘의 색’이라고 아내를 표현한 그 말마따나 아내는 하늘에서 왔나 보다.

추함과 흉함마저 사랑한 천사
“계세요? 계세요? 문 열어도 됩니까?” 버스를 4번이나 갈아타고 서울서 전북 옥산면 쌍봉리에 온 24세의 처녀.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 소개된 사연이 너무 가엾어 기도부터 올리며 울었다는 사람. 공군의장대 출신으로 제약회사를 다니던 멀쩡했던 청년이 25세 되던 어느 해 강직성 척추염과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온몸이 틀어지고 굳어졌다고 했다. 12년째 누워 있고, 밥도 먹여주어야 하는데 어머니가 편찮아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사연이었다. 위로의 편지를 몇 번인가 썼고 어느 날 답장이 왔다. 38세 남자는 꺾인 손가락 사이에 펜을 껴, 신경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참고 하루 내내 몇 줄의 답장을 썼다. ‘큰 위로와 변화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오간 편지에서 남자가 생을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궁금해 서울에서 근무하던 이금안 씨가 휴가를 이용해 그의 집을 찾은 것이다. 문을 빠끔히 연 순간 소스라쳤다. 얼굴은 상처로 뒤덮였고 비듬 때가 덕지덕지 앉은 머리와 수염은 길게 자라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엄습했다. 그대로 나올 수도 없는 난감한 상태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했다. 추함과 흉함을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마음이 안정되자 그는 방문을 열어젖히고 죽음의 냄새를 몰아냈다. 거미줄이 쳐진 방 청소부터 했으며 저녁을 지어 아픈 노모(당시 77세)와 남편에게 밥부터 먹였다. 고열과 통증은 방치되어 있고, 모자는 굶은 상태였다. 머리도 자르고 며칠 정성껏 돌보자 환자는 몰라보게 깨끗해지고 기쁨과 평안을 느꼈다. 그리고 상경 전날, 급기야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과 살아 달라’고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14살이나 어린 아가씨는 그 자리만 모면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것이 평생 헌신과 절제로 사랑하겠다는 신호탄이 되었다. 신의 허락과 남편의 요구로 하느님께 맹세한 그는 이미 세속에 있지 않았다.

내 가족이라면 고맙지 않나요
직장을 정리하고 친정어머니에게는 차마 말을 못해 직장을 옮긴다고 속인 후 두 달 만에 다시 옥산으로 내려왔다. 생활고가 심각했다. 치료약을 살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젠 돈을 빌리는 일만은 없어야 했다. 그는 아궁이에 지필 나무를 하고, 스웨터에 꽃무늬를 수놓으며 빈 쌀독을 채웠다. 가지고 간 조금의 돈으로 병아리, 토끼를 키우고, 개도 키웠다. 정확한 내막을 알게 된 어머니와 친정 식구들이 기겁을 해 달려왔다. “엄마, 우리 가족 중에 그런 환자가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어요.”하자 어머니는 혼절하시기도 했지만, 간절하고 진실한 호소에 결국 ‘잘 살아 귀감이 되라’는 말을 남기셨다. 온 몸의 관절이 굳어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으며 서러움과 통증에 시달리던 그. 저녁이면 소리내 울어 동네 사람들이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무서워하던 집에 천사가 왔다. 남편을 치유하고 싶어 기도원으로 갔으나 남편이 치유되진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신랑이 침대에 누워 있는, 보기 힘든 결혼식이 이루어졌다. “버스에서 내리자 갠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았고, 그 무지개를 따라 끝 지점까지 갔더니 기도원이 있었다”는 그 말이 뜬구름처럼 들리지만은 않았다. 그가 하는 말이기에. 마치 동화가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아 장면을 떠올리며 채색까지 하게 된다.

노동과 기쁨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아내가 되어. 창을 열면 남편이 누워서 가파른 앞산에서 나무하는 아내를 볼 수 있다. 조마조마해 하며 그의 눈은 아내를 쫓고 아내는 뒤뚱거리다 머리에 인 나무와 함께 구른다. 그는 달려가고 싶다. “임신한 아내가 추운 11월에 땔나무를 하고 내려오다 넘어져 구르는 걸…” 66세 남편이 이야기 하다 말고 눈물을 흘린다. 정작 아내는 가시에 찔려가며 억새풀과 갈퀴나무를 채취하면서도 씨 뿌리지 않고도 땔나무를 주는 자연과 하나님께 감사했다. 나중에 갚겠다며 이웃집에서 돼지 새끼 3마리를 분양받아 왔다. 음식을 잘 거둬 먹였더니 새끼를 쳐 26 마리가 되었다. 소나무를 베어다 분만장도 미리 만들고 탯줄 자르기, 새끼 이빨 자르는 일이며, 소작 밭에 분뇨를 날라 뿌리는 일까지 감당했다. 노동 속에서도 남매가 태어나 기쁨을 배가 시켰다. 마을에도 관심을 가져 편찮은 어른께는 죽도 쑤어드리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장애인에게는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며 희망을 주었다. 재밌게 살았지만 남편이 심하게 아프고 돼지 파동이 몰아쳐 힘들어지자, 일감이 있는 군산으로 이사를 했다. 역 앞에서 액세서리 노점상을 하면서 5살짜리 아들에게 리어카를 맡기고 2시간 마다 남편에게 갔다. 몸 구석구석에 받쳐놓은 9개의 베개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고 보살피기 위해서다. 과일, 야채 노점상도 하고 꽃도 팔았다. 집에 다녀오는 사이 자리를 뺏길 때면 눈물이 핑 돌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엔 항상 미소가 흘렀다.

소통의 문을 열어주는 여자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린 일이 없어요.” 남편이 말한다. 자녀들에게도 그랬냐고 묻자 “아이들을 나무랄 때는 아버지에게 소홀히 한다고 할 때 뿐”이라고 답한다. 자녀는 사춘기가 없을 정도로 잘 자랐다. 딸이 태어날 때, 아내는 분만 1시간 만에 퇴원해 남편 밥부터 챙겼다. 입원 날부터 굶을 수밖에 없는 남편이므로. 요즘도 그는 남편을 2시간 마다 보살피며 대학교 청소, 파출부 등의 일을 한다. 물리치료사가 된 딸이 5년째 월급을 보내오고 엄마에게서 용돈을 조금씩 타간다. 한 마디의 불평도 없는 아이들과 아내. 아내는 목수장이며, 매일 마사지를 해주는 마사지사고, 지난 1월에는 방문요양사 자격도 취득하게 되었다. 아내가 만든 바퀴달린 받침대 위의 컴퓨터는 위치를 바꿔가며 위로해준다. 화면을 켜고 침대 가까이 컴퓨터를 민다. 존경하는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된다. 부지런한 아내가 늘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줘 세상사에 동참한다. 동창도 찾아주고 서울의 아들 소식도 전해준다. “밤에 안 아플 때는 다섯 번쯤, 아플 때는 스무 번 이상 깨는데 의자에 앉아서 침대에 얼굴만 대고 잠을 자요. 미안해 깨우지 않으면 ‘왜 안 깨웠어. 조금만 내가 움직여도 안 아플 건데…’하며 뭐라 나무래요.” 그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핑 돈다. 동생 결혼식에도 어머니 칠순 잔치에도 가지 못하고, 평생 여행도 하지 않은 아내. 아이들과 남편이 끔찍이 사랑하는 엄마요, 아내인 그. 그는 아름다운 가게의 단골 멋쟁이기도 하다. 아산상 시상식 때도 천 원짜리 예쁜 옷 두 벌을 사 입고 참석했다. 아이들은 그를 ‘천 원짜리 엄마’라고 부른다. 천 원짜리 엄마가 말한다. 컴퓨터를 이동해 남편이 좋아하는 오창남 목사의 설교 동영상을 열어주는 이금안 씨 “세상이 푸르러 행복하다”고.

이미지 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