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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편지 답답할 때 높고 넓은 하늘을 보라 한말숙

해외여행 중에 어느 댁에서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두어 살 되는 어린 아들이 거실 바닥에 넘어졌는데 미국인 엄마는 달려가서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아이는 대단한 부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눈물 콧물을 비 오듯 흘리며 울었다. 엄마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편안한 미소를 띠우며 손님과 대화를 계속했다. 조금 후에 아이는 고개를 돌려 엄마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며 넘어진 채 슬프게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엄마는 요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러다가 원망스런 눈빛으로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여전했다. 체념했는지 아이는 분명 삐친 눈빛으로 엄마를 한번 흘깃 돌아보고는 일어서서 제방으로 가버렸다.

“좌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예방 주사를 놓아 주느라고…. 그러나 시끄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엄마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 이런 경우 독립심을 심는 교육이라는 말만 들었지 ‘좌절’을 알게 하는 거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아이는 낯선 손님 앞에서 넘어져서 체면이 깎인 좌절감, 엄마의 도움을 바랐는데 거절당한 좌절감, 그리고 원망해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좌절감 등 넘어진 약 4, 5분 사이에 세번의 좌절감을 느낀 끝에 혼자 털고 일어서는 길을 택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젊을 때의 고생은 황금과도 바꿀수 없다’는 평범한 격언이 우리나라에는 물론 동서고금의 어느 나라에도 있지 않은가. 다만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어린 아이에게 좌절감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을 길러준다는 것을 내 나이가 상당히 든후에 들어서인지 나는 혼자서 감탄했다.

S전자의 현직 부사장 이 모 씨가 출근길에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보도는 금년들어 첫 충격적인 뉴스였다. 나이는 고작 51세, 한창 일도 하고 생을 즐길 수 있는 너무도 찬란한 시기다. 서울대, KAIST석사, 스탠포드대 박사, S그룹의 최고의 명예인 그 회사 펠로우에도 선정되고, 지인의 말에 의하면 평생 좌절을 몰랐고 직장에서도 고속 승진, 재산은 70억이 넘는 부와 명예를 다가진 수재다. 작년에 부서가 바뀌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유언장에 있었다) 좌절감을 느끼고 우울증도 있었고 등등이 자살의 원인 같다고 했다. 내가 고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신문에서 읽고 알게 된 것이 전부다. 그의 평소의 성격이며 주위 환경 등은 전혀 모른다. 내가 아는 것만 가지고 생각해 보면 그의 학문이며 직장에 바친 노력이 아깝다. 따지고 보면 그는 짧은 일생을 한정된 공간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열심히 일하고, 오로지 한 곳만 보고 달린 것이 아닐까?

그런 처지에 놓이면 대개의 사람들은 그 자리가 싫으면 사표 내던지고 훌훌 털고 나와서, 현재 가진 것만 갖고도 평생 느긋하게 세상 구경도 하고 주위 사람도 돌아보며 쉬며 놀다가, 우연히 재충전이 되면 드문드문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혹은 더 연구를 해서 진짜 제 2의 큰 도전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좌절을 오히려 기회로 삼을 것이다. 아니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넉넉한 돈으로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넓은 바다를 보며 낚시질도 해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때로 농사일도 해보고 자연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기도 할 것이다.

예부터 사노라면 좌절할 때가 더 많은 것이 인생이라 했다. 그리고 돌고 도는 것이 또한 인생이라고도 했다. 어 찌나에게만 태양이 언제나 비춰줄 줄 알았던가. 아침에는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달이 뜨고 또 밝은 아침은 온다. 이 간단한 원리를 젊은 그 엘리트는 왜 몰랐을까. 그가 스트레스가 쌓이고 울적하고 좌절감이 엄습할 때 한번이라도 넓고 높은 하늘을 크게 숨을 쉬며 바라보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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