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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인터뷰 한국방송공사 ‘러브 인 아시아’ 제작팀 김승현

“다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관심을 높인 부분을 평가해 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11월 26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전날 제21회 아산상 특별상을 수상한  ‘러브 인 아시아’ 제작팀의 허완석 한국방송공사(KBS) 책임PD(CP)를 만났다. 인터넷 열린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도 등재돼있는 이 프로그램은 ‘국제결혼으로 인한 이민자들의 한국생활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한국방송공사의 교양프로그램’이다. 한국의 ‘다문화 전도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그를 만나는 장소로 매주 일요일 다문화 벼룩시장이 열리는 대학로만큼 적합한 장소가 없어 보였다.

허 CP는 먼저 수상소감을 묻자 “운이 좋아서”라고 짧게 답했다. 좀 더 자세한 답변을 주문하자 그는 이같이 말했다.
“2005년 처음 시작할 때 이 프로그램이 성공하겠느냐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소재도 아시아를 넘어가고 있으니 좀 더 범위를 넓혀 ‘러브 인 월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저 혼자 한 것이 아니고 전임자들과 스태프 등 모든 직원들이 함께 땀 흘린 결과입니다. 단지 제가 운이 좋아서 대표로 상을 받은 것뿐이지요.”
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 한국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비교를 부탁했더니 허 CP는 “방송이 끝난 뒤 시청자들로부터 중매를 서달라는 전화”라고 말했다.
“지난 주 방영에서 출연자가 친정집에 가서 여동생을 만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이 끝나고 ‘아들이 (혼기가) 늦었는데 중매를 서 달라’는 전화가 바로 왔습니다. 외국인 며느리를 얻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 않습니까. 이제 많이 마음들을 여신 것 같아요. 결혼에 실패해 돌아간 우즈베키스탄 여성을 방송했을 때는 ‘아들과 맺어주고 싶다’ ‘소개해 주고 싶은 좋은 사람이 있다’ 등 수십 통의 전화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휴머니즘을 추구한다
거의 매일 공연을 보다보니 TV를 볼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시간이 되면 봤다. 베트남 아가씨가 신랑과 함께 친정집에 가서 즐거운 한때를 즐길 때는 눈시울이 찡했다. ‘러브 인 아시아’에서 가장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인간존중, 사랑, 배려 이런 것입니다. 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오랫 동안 단일민족을 내세우며 살았기 때문에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모든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이 바로 우리가 가장 추구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러브 인 아시아’는 12월1일로 200회째를 맞았다. 주1회 방송에서 200회를 넘어섰다는 것은 이제 스스로 브랜드를 갖고 자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는 의미도 있다. 또 ‘아산상’을 비롯해 올해에만 세계인의 날 국무총리 표창, 방송통신위원회방송대상 문화다양성상, 한국방송대상 특수대상을 수상했다. 특히 방송대상을 한 해 두 차례나 수상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 힘의 바탕을 묻자 그는 또 “운이 좋아서”라며 빙긋이 웃었다.
“제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2년 전입니다. 앞에 분들이 땅을 잘 갈고 좋은 씨앗을 뿌리느라 고생하셨고, 저는 물만 좀 줬을 뿐입니다. 마침 다문화가정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때라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가운데 저희 ‘작품’의 진심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준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역시 진실은 외롭지 않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손가락에는 분명 긴 것과 짧은 것이 있다.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어떤 것이냐고 묻자 허 CP는 한참을 당혹스런 표정을 짓다가 “대부분 후배들이 하고 저는 뒷바라지만 했다”며 “개인적 생각”을 전제로 지난 5월 5일 방송한 ‘선령아 혜진아 사랑해’편을 꼽았다.
“필리핀 엄마가 남편과 이혼한 뒤 딸 둘을 데리고 학원강사를 하며 삽니다. 그러나 도저히 일을 하면서는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되자 필리핀 친정으로 보내고 자신은 돈을 벌어 부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나 예쁘고 밝게 커 가슴에 찡하고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허 CP는 또 “지난 6월 9일 ‘윌린 가족의 한 걸음 한 걸음’편”이라며 “필리핀 여성이 어부 남편과 함께 작은 고기배로 어업을 하며 사는데 아이들이 너무 해맑아 감동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남매였는데 큰 애는 장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밝게 정말 낙천적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엄마 아빠가 고기 잡으러 나가면 오빠가 동생을 챙겨 밥 먹이고 학교에 데려 갑니다. 더구나 공부까지 잘해 요즘 일반적인 주변 아이들과 비교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습니다.”
허 CP는 일단 ‘작품’자랑을 시작하자 하나하나 새롭게 생각난듯 이어나갔다.
“지난 6월 23일 ‘엄마는 울지 않는다, 그 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3월 31일 ‘엄마는 울지 않는다’편에서 파라과이 출신 마르타라는 여성은 이혼 후 한국남자와 재혼했는데 전 남편과 사이에 난 다비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아파 병구완하기 위해 서울로 들어왔다가 그만 다비드와 생이별을 하게 된 경우입니다. 우리가 항공권을 제공, 만나게 했는데 후편에서 건강하게 새출발하는 다비드의 ‘한국 일기’를 내보냈습니다. 또 10월 13일 ‘로슬린 15년 만의 귀향’편에서 남편과 사별 후 친지의 식당일을 도우며 아들과 근근이 살아온 로슬린이 15년 만에 고향 필리핀의 외딴섬을 찾은 이야기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또 7월 14일 ‘몽골 보디빌더 장당후, 가족은 나의 힘!’편은 ‘씩씩한 삶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준 실례입니다….”

조화롭게 사는 ‘다문화’ 필요
끝없이 이어지는 ‘자식 자랑’에 ‘아산상’ 상금을 어떻게 쓸 것이냐고 서둘러 질문을 돌렸다. 허 CP는 “아직 실행되지 않는 단계여서 말하기 어렵다”면서 “3000만원은 복지재단을 통해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형편이 어려운 분들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으로 100만원씩 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1000만원은 그동안 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PD가 모두 27명인데 그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하나씩 마련하고 더 좋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워크숍 비용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나머지는 200회 방영과 수상기념 파티를 조촐하게 치러 회사와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수고한 미술, 카메라 등 스태프진들을 위해 쓰려고 합니다.”
그는 조심스레 뜸을 들이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우리 다문화가정은 대부분 형편이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도 과정을 살펴보면 모두 가난한 이민자들이 만든 유토피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치열한 국제화시대에 이같이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다문화에 생산력, 경쟁력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 생산력, 힘으로 작용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물었다.
허 CP는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다문화국가와 우리는 다문화 개념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오랫 동안 단일민족국가였습니다. 이제 다문화라는 말을 쓰지만 우리는 이민자들로 이뤄진 국가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그 같은 다문화를 지향해야 하지만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외국인 여성과 한국인 남성으로 이뤄진 국제결혼가정으로 인해 탄생한 말입니다.”
좋게 말해 다문화가정이지 긍정적 다양성의 다문화가 아니라 ‘깔보는’ 느낌이 남아있다는 비판이다.
“그들은 어쨌든 한국인이 됐습니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갈 길을 제공해야 합니다. 편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다문화’가 필요합니다. 세월이 흘러 미래에는 이런 벽이 무너지겠지요. 더 다양한 한국인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는 그런 세상이 올 겁니다.”
허 CP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인간을 존중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며 “이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러브 인 아시아’를 계속 만들어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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