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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둣돌 사람과 벌레와 새 안도현

“할머니, 어서 일어나세요. 오늘은 텃밭에다 배추를 심는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며칠을 미뤘으니 오늘은 꼭 심어야지.”
“할머니, 이제 괜찮으세요?”
“오늘은 몸이 많이 나아진 것 같구나. 허리도 이렇게 펼 수 있는 걸.”
“저를 달래기 위해 하시는 말씀은 아니죠?”
“그럼. 할미의 말을 믿어야지, 내 새끼가 할미 말을 안 믿으면 누가 내 말을 믿누? 저기 날아가는 까치한테 내 말을 믿어 달라고 할거나?”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서 할머니하고 배추 씨앗을 뿌리고 싶어요.”
“그러자꾸나. 얘야, 배추씨를 심을 때는 말이다, 이렇게 깊지 않게 땅에 오목하도록 구멍을 낸 뒤에 씨를 넣으면 된단다.”

“할머니, 배추씨를 한 개씩만 넣으면 되나요?”
“아니지. 한 구멍에 적어도 씨를 세 개 정도는 넣어야 한단다.”
“네? 그러면 너무 아깝잖아요, 할머니. 할머니는 밥 한 톨도 아껴야 한다고 늘 말씀하지 않았어요?”
“네 말대로 우리가 가꾸어 먹을 배추 씨앗은 한 개면 충분하지. 하지만 사람만 생각하고 땅속에 사는 벌레들에게 무심해서는 안 된단다.”
“벌레들이라구요?”
“땅속에 사는 벌레들의 몫으로 씨앗 하나를 더 심는 거란다. 그리고 또 날아다니는 새들이 땅에 내려앉아 쪼아먹을 먹이로 씨앗 하나를 더 심는 거야.”
“아하, 그렇군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논이나 밭에 사는 벌레들을 죽이려고 농약을 마구 뿌리는 거죠?”
“옛날에는 농약을 요즘처럼 뿌리지 않았단다. 사람들이 자기가 먹을 것보다 더 많은 농작물을 가꾸려고 욕심을 내면서 농약도 많이 뿌리게 된 거야. 벌레들도 당하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화가 난 거지. 그래서 점점 더 사납게 농작물을 해치는 벌레들이 된 거란다.”
“할머니, 우리 텃밭에는 농약을 뿌리지 않을 거죠?”
“물론 그래야지.”
“그렇다면 이 밭에 있는 벌레와 새들은 앞으로 화도 내지 않고, 또 점점 순해지겠네요?”
“그렇고 말고. 틀림없이 순해질 거야.”
“할머니! 앞으로는 벌레들하고도 친해져야 하겠어요.”
“사람만 욕심이 많단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하고, 또 가지려고 하면 못 쓰는 법이야. 벌레와 새들은 꼭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먹을 뿐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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