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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꿈을 이룬 행복한 분 박완서

정주영 초대 이사장님을 처음으로 가까이 뵌 것은 모스크바로 가는 KAL기 안에서였다. 그러니까 그게 아마 1990년대 초였을 것이다. 철의 장막 속의 소련이 붕괴하고 개방될 무렵이었으니까. 10여 명의 여류문인이 러시아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철통같은 철의 장막에 겨우 틈이 생긴 것만도 신기했는데 대한항공으로 모스크바까지 곧장 갈 수 있다는 건 냉전시대의 사고에 젖어있던 우리에겐 꿈만 같은 일이었다. 나는 그냥 묻어가는 입장이었지만 개방 초기에 그런 단체여행이 가능했던 것은 그쪽의 여류작가동맹의 초청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던 정주영 이사장 일행이 뒷자리에 여류문인들이 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모양이다. 물론 일등석에 탑승했을 정주영 이사장님이 우리가 탄 뒷자리로 오셨지만 이코노믹 클래스에는 빈자리가 없어서 이사장님은 줄곧 통로에 서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구수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우리 일행 중에는 그전부터 이사장님과 가깝게 지낸 문인도 있어서 그런 흉허물 없는 담소가 가능했겠지만 초면의 문인들에게도 격의 없이 친절하게 대해주시며, 당대의 엄청난 돈을 번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소박한 언어로 말하고, 소박한 표정과 건강성으로 우리와 어울리셨다. 우리는 곧 그분이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라든가 우리보다 훨씬 연세가 든 웃어른이란 차이점을 못 느끼고 마치 동료처럼 친근하게 대했다. 그건 그분이 문학 애호가라는 걸 곧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문학을 단지 좋아만 하신 게 아니라 동경하고 계셨지 싶게 그분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소년 같은 순진성이 느껴졌다.
이사장님께서 당신 자리로 돌아가면서 모스크바에서 한 턱 내겠다고 하셨는데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무역회관이라든가, 당시의 모스크바에서는 가장 호사스러운 데서 철갑상어 알과 최고의 보드카가 나오는 근사한 저녁 식사를 대접받았다. 그 자리에서 일행 중 시 낭송을 잘 하기로 소문난 S시인이 정지용의 향수를 낭송했는데 그걸 듣는 이사장님의 태도는 경건했고 최고의 찬탄과 경의를 표하시는 게 마치 순진한 소년 같았다. 그렇게 모든 소망을 다 이룬 분이 문학을 대하는 태도만은 마치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것처럼 순박한 동경을 담고 있어서 문학하는 우리를 으쓱하고 기분 좋게 만드셨다.

그렇게 해서 구면이 된 이사장님과는 그 후에도 몇 번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일부러 조촐한 점심자리를 마련해놓고 초대해주신 적도 있고, 원주의 토지문학관에서 행사가 있는 날에도 몸이 불편하신데도 행사가 끝날 때까지 온종일 자리를 지켜주시는 걸 보고 감동한 적도 있다. 가까이 뵐 때나 매스컴을 통해 뵐 때나 저 분은 대기업가이기 이전에 문학 애호가라는, 그분의 인간성의 바탕에 대한 믿음은 변치 않는 호감이 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지속되었다.

문학하는 사람이란 남다른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꾸는 꿈은 아름답지만 엉뚱해서 이루지 못할 꿈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주영 이사장님이 오백 마린가 천 마린가 하는 소 떼를 이끈 방북은 엉뚱하지만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소 판 돈을 가지고 가출하는 소년에게 어찌 꿈이 없었겠는가. 성공해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출세해야지, 그러나 그건 목표나 복수심이지 꿈이 아니다. 오백 마리의 황소 떼는 정주영 이사장만이 꿀 수 있는 꿈, 그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뿐인가, 그에게 신화처럼 전해 내려오는 고물유조선으로 물막이 공사를 한 거라든가, 보리를 옮겨 심어 한겨울에 유엔군 묘지를 푸르게 만들었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다 정주영 이사장만이 할 수 있는 엉뚱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그의 뛰어난 상상력은 고정관념을 허물고 세상을 바꾸었다.

그분이 설립한 아산사회복지재단도 의료혜택이 미치지 않는 시골에서 자란 소년, 가난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 소년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가 그대로 반영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설립취지가 ‘우리 사회에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 로 되어있듯이 우선 대도시에 집중된 우수한 의료진과 의료시설을 산간벽지에 있는 의료취약지역으로 확대하고 방문간호, 지역봉사 등 지금은 거의 일반화되다시피 한 봉사업무에도 일찍부터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고, 장학생을 선발하는 데 있어서도 소년소녀가장이나 극빈자 가정의 자녀, 시설에서 성장한 자녀들을 우선으로 함으로써 대물림의 가난을 차단하는 데 앞장서 왔다.
꿈꾸지 않은 젊음이 어디 있으며, 돈벌고 싶지 않은 가난한 소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원대한 꿈을 꾸어도 돈이 없으면 이루기 어렵다. 꿈이 크면 클수록 그렇다. 그래서 범부들은 겨우 일신의 부귀영화나 꿈꾸다 만다. 정주영 이사장의 엉뚱하지만 아름다운 꿈이 거의 다 이루어진 건 그의 뛰어난 상상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를 근세의 입지전적 인물 중 가장 행복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를 문학 애호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자유고,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유쾌해지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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