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강수량 230mm, 최고 풍속 30m/s. 한낮의 비닐하우스 기온 40℃, 모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한밤의 기온 9℃. 이 수치들은 지난 7월 7일부터 7월 12일까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영랑 마을에서 있었던 아산장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이하 농활)이 얼마나 극과 극을 달리면서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수치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러나 그보다는 정도 많고, 추억도 많았던 그들의 좌충우돌 농활생존기를 소개한다.
봉고차 아저씨의 속사정 “나 혼자서는 이거… 못 하지. 학생들이 이렇게 와서 해 주니깐 새로 옥수수도 심고, 들깨도 심고 할 수 있는 거지.” 넓은 운동장만한 밭이 세 개. 두 밭에 옥수수를 다 심고 이제 마지막 밭에 들깨 모종을 심고 있는 학생들을 보시며 아저씨께서는 고마운 마음을 덤덤히 전했다. 이번 농활 내내 일을 많이 시켜 학생들에게 ‘공포의 봉고차 아저씨’로 불렸던 그 집이었다. “너희들 때문에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동 받았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정담 33기 정인화 학생은 봉사단이 오기 며칠 전, 악상을 당해 경황이 없으셨던 할아버지께서 배추밭이었던 그 곳을 통째로 남에게 맡겼다가 밭을 다 망치셨다는 사연을 전해준다. 농사지을 엄두를 못 내시던 분께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다며 남은 기간에도 봉고차 아저씨 댁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다고 했다. “전 요즘은 농사를 다 기계로 짓는다고 알고 있어서 ‘무슨 일손이 필요한가? ’했었는데요, 이렇게 와서 해보니까 어휴…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다 하는지 몰랐어요. 헤헤. 정말 귀한 음식들이란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33기 문윤원 학생 또한 처음 접해 본 농사일에 허리도 아프고 힘이 들지만 그런 만큼 또 얻어가는 것이 많아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며 해맑게 웃었다.
서럽고, 외롭고, 힘들고… “이건 뭐… 해가 뜨건 말건, 폭우가 쏟아지건 말건 줄곧 일, 일, 일입니다.” 강을 따라 산을 넘고 인적 없는 넓은 감자밭을 몇 개나 지나야 겨우 당도할 수 있었던 오미자 밭에서 만난 2조는 마침 새참을 먹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막걸리를 한 사발 죽 들이키고는 한목소리로 죽겠다는 시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난생 처음으로 체험학습도 아닌 노동을 올올히 해내야했기 때문이다. “서럽고, 외롭고, 힘들고 그래서 아저씨께 저도 오미자 밭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해서 오후에 이곳에 합류하게 됐는데… 제가 오미자랑 잡초를 구분 못해서 한 라인을 다 망쳐놨어요. 아저씨, 죄송합니다.” 진주에서 왔다는 33기 전현승 학생은 오전 내내 혼자서 감자밭에 농약을 치다가 왔다면서 일이 서툴러 오히려 밭을 망쳐놓은 것이 죄송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로는 제대로, 깔끔하게 잡초를 다 제거했다며 힘주어 덧붙였다. “역시 장학생들이라 일 배우는 게 빨라. 그러엄~, 얼마나 도움이 된다구! ” 귀농한 지 3년 밖에 안 되었다는 김부영·최은희 부부는 자식 같은 학생들이 와서 힘든 일을 해내는 것이 대견하다며 40℃가 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피망 가지를 골라내고 묶는 학생들을 향해 힘내라는 듯 큰 목소리로 칭찬했다. “피망 아저씨께 오히려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너무 잘 해 주셨거든요. 딸이 있었으면 사위 삼으시겠다고 하셨는데… 저에겐 훈훈한 하루였습니다.” 부산 청년으로 불렸던 김민우 학생은 일과를 돌아보면서 만족스러운 듯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소감을 밝혔다.
농활, 그 쓰고도 단 오미자의 맛 “저는 정담회 농활이 좋아서 자원해서 농활대장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거 다 알고는 있지만 우리는 농가에 도움을 주러 온 거잖아요? 그 몫은 해내게 하고 싶습니다.” 이번 농활의 총 지휘를 맡은 농활대장은 군에서 막 제대한 태권청년, 이정민 학생이었다. 6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을 일일이 챙기느라 목이 다 쉬어버린 그는 자신 또한 정읍에서 소를 키우는 축산농가의 아들이기에 농촌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다독여가며 독려하고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이겠지만,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 뿌듯합니다.” 해가 뜨면 밭에서, 폭우가 쏟아지면 비닐하우스에서 잡초도 뽑고, 모종도 심고, 쇠똥도 치우며 그들은 빨리 집에 돌아가길 바라는 도시 학생들에서 일하는 기쁨을 조금씩 알아가는 청년일꾼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번 농활을 통해 일하는 캐릭터가 되려고요. 명색이 장학생인데 잉여인간이 되어서야 쓰겠습니까? ” 농활도 이제 막바지. 이제야 비로소 일을, 고통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한 학생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좋아하면서 남은 일정동안 잡초 뽑기에 열중하겠다고 했다.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우리는 ‘정담인’ “도울 수 있다는 뿌듯함? 암튼 하고 싶어서 시켜달라고 졸랐어요.” 농활 이틀째, 서울아산병원 무료진료가 있던 날 간호학과와 치위생과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참여, 일을 도와드렸다고 한다. 비록 어르신들의 혈압·혈당 측정, 차트 작성과 안내 같은 단순한 일들이었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많은 분들이 오실 수 없어 안타까웠다는 정다와 학생은 졸업하면 꼭 의료봉사단에 들어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간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오는 게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만나려고 왔습니다.” 신구전문대 교수인 조남두 동문회장을 필두로 이제 갓 동문이 된 정담회 30기인 배선화 동문까지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부터 모든 일정을 조정하고, 휴가를 내고, 연차를 써 가며 모인 동문들이 거의 30여 명. 그들은 입을 모아 농활을 거쳐야만 진정한 아산장학생이고 정담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서 후배들을 위해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들고 찾아와 격려하였다. “정담인에게 농활은 1년 일정 중 가장 중요한 행사입니다. 이 일주일간의 시간을 통해 평생을 가는 친구를 만날 수 있죠. 정담회는 좋은 사람들만의 모임입니다.” 농활 첫 일정부터 함께한 김용우 동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젠 지기가 된 서로의 손을 잡고 매년 가족과 함께 찾아오는 동문들의 모습 속에서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농활이라는 5박 6일 동안의 즐거운 소동 속에서 끈끈하고도 아름다운 인연의 끈이 만들어지고 이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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