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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살아서 다시 오시는 분들 이인복

살아서 다시 오시는 분들

미국에서 공부하는 젊은 부부가 후원금 200불을 보냈습니다. 큰 재산을 가진 사람도 궁핍한 이웃을 돕는 일에는 마음이 무딘 사람이 허다한데, 고학하면서 이웃을 돕는 젊은 부부 모습이 동전 두 닢을 성전에 바친 가난한 과부 이미지와 오버랩되어, 감동스러웠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남편을 여의어 문상하였습니다. 영정 속의 제자 남편이 활짝 웃고 있어, 나는 때와 장소를 잠깐 잊고 망자에게 “축하해요. 이제 안 아프지요? ”했습니다. 하긴,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임종은 일종의 치유요 그것도 완벽한 치유입니다.

살아온 날들이 일장춘몽인데 어느새 칠십을 넘겼습니다. 백 살을 산다 해도 칠십은 인생의 가을이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하였으니, 이미 나는 세상 사람이 누리기 어려운 드문 분복의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삶은 나에게 은총이고 선물입니다.

그래서 요즘 나에게는 곱게 늙는 분이 존경스럽습니다. ‘곱게’ 산다는 것을 나는 비이기적 이타의 삶으로 생각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사는 분이 ‘곱게 늙는 분’ 입니다.

2차 대전 비사 가운데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칠과 루즈벨트 사이의 일화입니다.
영국이 히틀러에게 밀리던 때 처칠은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편지했습니다. “나치를 무찌르는 것이 영국을 위한 것만이 아님을 아신다면, 인류 공동 목적을 위해 귀하는 당장 군수품을 귀국의 운송비로, 보내주어야 하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루즈벨트는 하루 종일, 왜 군수품을 무상으로 그것도 자국의 수송비로 보내야 하는지, 국민에게 납득이 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위해 부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밤이 깊어 외쳤습니다. “영국은 인류를 위해 싸우고 있다. 옆집에 불이 났는데, 그 불을 안 끄면 우리 집에 불이 붙는다. 옆집 사람들이 불을 끄는 것은 우리 집을 구하는 것이다. 그 불을 끄기 위해 우리 연못에서 물을 퍼다 불을 껐을 때 과연 우리가 그 물 값을 받아야 하는가? ” 루즈벨트의 말에 국민은 박수를 보냈고, 군수품은 실려 갔고, 처칠은 승리했습니다.

우리 각자가 나만 위하고 남을 무시하며 살 때, 남도 나도 다 자멸하는 것임을 말해주는 실례입니다. 함께 잘 사나?  모두 망하나?  그것이 내 미래이고 인류와 민족의 미래입니다.

“좀 더 오래 사시지, 그 어른 왜 벌써 가셨나? ” 이렇게 생각되는 어른들이 계십니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마더 데레사나 아산 정주영 회장님이 그런 분들입니다. 1998년 6월 16일 아산 정주영 회장님이 손녀를 대동하시어, 소 500마리를 끌고 북한을 찾으시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아! 저 손녀는 할아버지의 정신유산을 잘 물려받으면 좋겠다.’ 그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11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손녀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산의 향기>를 발행하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여러 활동을 통해 정주영 설립자의 뜻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나 청어람(靑於藍)이라 했습니다. 아산이 소 500마리를 이끌고 북한 고향땅을 밟은 것이 선친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는 일화는 이미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아산의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하여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사회복지법인 나자렛성가회는 2000년도에 법인 인가를 받았습니다. 1978년부터 개인 수입으로 운영하다가 정년퇴임을 맞아 퇴직금과 연금을 일시불로 받아 지금의 5층 500평 건물 짓기에 다 바치고, 가정폭력 피해여성과 성매매 피해여성의 자활쉼터를 마련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젠 좀 편히 쉬실 수 있겠네요” 라고 나에게 말하는데, 나는 오히려 요즘 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직 어머니의 유언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현재의 쉼터에서는 다 수용할 수 없는 수많은 노숙 여성과 부랑 여성과 무의탁 노인 여성들이 있고, 우리 쉼터를 떠난 후에도 여전히 갈 곳이 없는 식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노숙, 부랑, 무의탁 여성들이 마음 편히 살며 자활할 공간을 마련해 주고 어미를 따라오라’ 하셨는데, 포천에 땅을 마련하고 설계도까지 완성했지만 건축비 준비가 까마득합니다.

하지만 나는 신념을 갖고 삽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을 통해, 매일 매일 아산이 자손들과 세상 사람들 앞에 다시 살아서 오시는 것처럼, 내 어머님의 33주기인 2011년 12월 8일 쯤에는, 분명 사회복지법인 나자렛성가회가 추진하는 피해여성들의 행복한 생활공동체의 종합복지시설도 완공되어 있을 것이며, 그날 내 어머니도 살아서 다시 오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임용되기 직전 내 생애에서 내가 가장 가난했던 시절, 기름진 식사 한 끼와 좋은 약 한 첩 마련해 드리지 못한 채,  6 ·25 의 폐허를 가슴에 안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몹시 그리운 이 가을 밤, 불효를 서러워하며 어머님께 이 글을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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