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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아산병원 내 이웃 같은 병원 편집부

봉사는 전 직원의 일상생활
“전달!, 전달! ”을 외치며 차가운 바람도 아랑곳 않고 분홍 고무장갑을 낀 손을 분주히 움직이며 연탄을 전달하는 보령아산병원 직원들. 3년 전부터 연말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연탄을 배달해왔다.
봄이 되면 보령아산병원 봉사활동은 활기에 찬다. 진료지원과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펼치는 ‘꽃이 있는 병원 만들기’로 건물 사이사이의 화단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직원들이 직접 비닐하우스에서 파종하여 키운 꽃이다.
이때부터 보령아산병원의 오후는 특별한 스케줄로 병원 밖에서도 바쁘다. 중증장애인, 장기 와병중인 요보호대상자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 이동목욕봉사 때문이다. 특수 제작한 이동욕조를 갖춘 차량의 물이 얼고 어른들이 감기에 걸릴까 겨우내 쉬었던 목욕봉사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행된다. 김완영(42) 사회복지사와 김현미(42) 직원을 중심으로 목욕봉사에 참여한 55명이 매일 2~3명씩 조를 짜서 봉사를 나간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발갛게 생기가 피어오른다. “고마워! 이렇게 매번 고마워서 으떡혀. 미안혀서….”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어린애처럼 봉사자들에게 몸을 맡긴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목욕에 이어 머리까지 감겨준 봉사자들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준비해온 김밥과 빵을 할머니에게 드리고 다음 행선지로 서둘러 떠난다. 목욕에 걸리는 시간은 한 분당 30분쯤이지만 목욕에 앞서 기초적인 건강검진을 하고 하루 2~3명씩 방문하다 보면 어느새 병원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다. 60여 명을 번갈아 목욕시키느라 한 달이 금세 지나간다. 목욕 차량이 가지 않으면  1년 내내 목욕 한 번 못하는 분들이 많아 더욱 사명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보령아산병원의 전 직원들은 봉사활동을 생활화하고 있다. 팀을 구성하여 대천애육원, 만수노인복지원 등 8개 사회복지시설을 일과시간 후 월 2~3회 찾아간다. 휴일에 봉사를 가기도 한다. 아동시설에서는 책 읽기, 숙제지도, 삼계탕 등 음식 만들어 주기, 보령원 등 노인복지시설에서는 진료, 생일상 차리기, 말벗 되어 드리기 등과 관광명소로 야유회를 가기도 한다.
보령아산병원에 가을이 오면 배추를 사고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양념을 버무려 김장을 한다. 직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령아산병원의 연례 김장 행사에는 입원 환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식단을 꾸려간다는 정성스런 마음이 담겨있다.
종교단체 및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1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보령아산병원은 읍·면·동의 통장과 이장 등을 병원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어려운 이웃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있다. 이와 같이 보령아산병원은 지역사회의 이웃과 함께하는 병원, 아산재단의 설립 이념을 성실히 실천하는 병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에 힘입어 2006년 보건복지부에서 전국 260병상 미만의 118개 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기관 평가에서 우수의료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지역요구에 부응… 진폐병동·석면피해신고센터 운영
9개 특수클리닉과 진폐증 환자들을 위한 진폐병동을 운영하고, 2009년에는 석면피해신고센터로 지정되어 석면질환 의심자에 대한 상담과 검진을 시작한 것도 보령아산병원의 남다른 모습이다.
진폐병동 운영처럼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맞춤형 의료활동은 개원 초기부터 시작됐다. 해마다 탄광의 채탄장까지 직접 답사하며 작업환경 측정 및 광산근로자들에 대한 건강상태를 점검했다. 보령은 1995년 석탄박물관이 국내 최초로 세워질 정도로 과거 탄광산업으로 번창했었지만, 지금은 막장에서 일하던 산업역군들이 불치의 병을 얻어 진폐증 환자로 보령아산병원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좋으니까 여기 있지요…. 모두 잘 해주고 부탁도 잘 처리해줘요.” 보령아산병원에 입원 중인 진폐환자 대표 정태영(63) 씨가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는다. 충남에 병원이 여럿 있는데, 자연환경도 좋고 친절한 보령아산병원이 좋아 선택했다며 자신과 같은 환자 77명이 함께 입원해 있다고 말했다.
작업 중 들이마신 분진들이 폐속에 남아 폐기능 저하, 폐기흉 등 많은 합병증을 일으키는 진폐증은 진폐 자체에 대한 치료가 불가능한 무서운 직업병이어서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생활을 해야 하는 환자들이 많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숨이 차서 언덕도 못 올라가고 얼굴도 숙일 수 없어 세수나 목욕도 스스로 하기 어렵다. 그래서 산재병동은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들의 표정은 밝다. 늘 병실에 있자니 무료하고 답답해 증세가 웬만하면 복도에 나와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병원에서 마련해준 휴게실에 모여 장기, 바둑, 심심풀이 고스톱 등을 하기도 한다. 봄 볕 따뜻한 4월이 되면 진폐환자, 보호자, 직원들이 고창 선운사 등으로 야유회를 다녀오기도 한다.
2009년 1월 30일 환경부는 보령아산병원을 석면 피해자 검진기관으로 지정하였다. 과거 석면광산이 많이 있던 보령 및 인근 지역의 주민과 석면광산 근로자들을 검진하고 판정위원의 심의 후 석면질환 여부를 판정하게 된다. 앞으로 석면피해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면 석면 피해자에게 지속적인 치료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령아산병원은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녀님이 봉사했던 평화스러운 병원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보령시에서 5km 남짓한 거리, 충남의 2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오서산 명대계곡 가는 외진 길에 자리한 보령아산병원. 주소는 충남 보령시 죽정동 1번지로, 재단의 지방병원들이 모두 허허벌판에 세워졌지만 1번지라는 지번을 가진 것은 이 병원뿐이다. 개원 당시 모습에 대해 <아산재단 20년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재단은 보령아산병원을 대지면적 1만3,500평 위에 1978년 5월 24일 착공, 9개월 만인 1979년 2월 9일 개원했다. 총 2,800평에 공사비 15억 원을 들인 150병상의 현대식 건물이다. 의료기기와 장비 7억1,600만 원 등 총 24억800만원을 투자했으며 경관이 수려해 세인을 놀라게 했다. 여기에 수녀들의 봉사로 병원은 참으로 평화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환자들이 과거에 없었던 양질의 진료 혜택을 받게 되었다.”
정읍아산병원이 개원한 지 6개월 만에 보성, 인제병원에 이어 재단의 네 번째 병원으로 문을 연 보령아산병원의 진료 대상은 보령군을 비롯한 청양군, 서천군 등 3개 의료 취약지역 주민 약 38만 명이었다. 재단의 모든 지방병원이 그랬듯이 당시 그 지역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최첨단 시설과 우수한 전문 의료진을 갖춘 지역 유일의 종합병원으로 출발했다. 지금도 서부 충남 일대의 유일한 종합병원으로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냥 ‘종합병원’으로 통한다.
아름다운 청천저수지 곁에 자리잡은 병원의 수려한 경관은 여전하다.
“보령의 설경은 참 아름다워요. 수녀님은  원장 수녀님 등 여섯 분이었는데, 기도하는 이멜다 할머니 수녀님은 환자마다 방문해 기도하셔서 많이들 좋아했지요. 정주영 이사장님께서 초창기에 성모병원 운영 경험이 있는 성바오로 수녀회에 기반을 잡아달라고 부탁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간호과장으로 82년부터 6년간 근무했던 조운자 수녀의 말이다. 13년 동안 환자들을 정성껏 기도로 돌보았던 수녀들의 힘인지 지금도 보령아산병원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정주영 초대 이사장은 세속에 대한 욕심이 없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수녀들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에서 간호사 자격을 지닌 수녀들을 파견해 주었다. 보령의 수녀들은 개원 초기 입원했던 미혼모가 버리고 간 아기에게 ‘보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 아이가 입양될 때까지 직접 키우기도 했다.

변화하는 병원, 신뢰받는 병원
초대 병원장 최한종 박사를 비롯하여, 김우열 병원장, 배만길 병원장, 최영균 병원장에 이어 지금은 5대인 정종기 병원장이 보령아산병원을 이끌고 있다.
1996년 입사해 정형외과 의사로 진료부장을 지내고 2007년 병원장에 취임한 정 원장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바꾸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 속에 우리들의 미래가 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할 게 아니라 멀리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변화이자 발전이다. 신뢰받는 병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보령아산병원의 자랑은 직원들이다. 힘들 때 서로 잘 돕는 우리 직원들이 병원의 재산이다”라고 덧붙였다.
보령아산병원은 1990년 초 광산이 폐광되기까지 진폐환자들이 계속 생겨나 1985년에는 산재병동을 증축하였고, 현재는 220병상 규모로 내과(1·2·3)와 외과,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1·2) 등 11개 진료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22명의 의사와 68명의 간호사가 하루 평균 623명의 환자(외래 386명, 입원 237명)를 진료한다.
보령에서 유일하게 소아 입원병동이 있고, 병원 앞뜰에는 토끼장도 있다. 소아환자들의 정서 안정을 위해 토끼굴 등 자연생태를 복원해 만든 토끼장에서 30여 마리가 자라고 있다.
개원 이후 적자가 발생한 것은 설립 취지에 따라 예측된 결과이나 보령아산병원은 정성을 다하는 의료진과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11개 진료과의 환자가 꾸준히 늘어 2005년부터 병원 경영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병원 이미지가 해마다 좋아져 병원을 찾는 고객들이 점점 늘고 있다.
보령아산병원은 지역 유일의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1991년), 중환자실 운영으로 종합병원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령을 ‘만세보령(萬歲保寧)’으로 부른다. 신라 승려 도선국사가 이곳을 둘러본 후 ‘오성지간(嗚聖之間: 오서산과 성주산 사이)에 만세영화지지(萬歲榮華之地)가 있다’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이곳엔 수산물, 농산물 등 먹을거리가 풍족하고 광물 등 부존자원 또한 넘쳐난다고 한다.
개원 30주년! 이제 보령아산병원은 당당한 청장년의 모습으로 신뢰받는 병원이 되고자 구성원 모두 각오를 다지고 있다. 훌륭한 의료진과 최신의 시설 및 장비를 갖추고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며,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병원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다. ‘환자들이 믿고 찾아오고, 와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병원, 나누고 배려하고 돕는 즐거움을 아는 병원, 그래서 우리 사회의 좋은 이웃이 되는 병원.’ 이것이 보령아산병원이 꿈꾸는 아름다운 병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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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때는 직원들이 냇가에서 빨래를 했습니다” 
“81년에는 수해로 지하가 침수되었습니다. 40일간 의료진을 비롯해 전 직원이 하나 되어 서류와 기계 모터를 뜯어 말리고, 환자복과 침대시트 등을 차에 싣고 냇가에 가 빨아서 말렸습니다. 당시 영안실이 있었는데 일손이 모자라면 일반 직원이 시신 운구작업을 돕기도  했지요. 간호과장, 구매담당, 방사선사, 영양사 등을 하시던 수녀님들은 석가탄신일, 설날, 부활절 등에는 수녀원으로 휴일 근무하는 직원을 불러 떡국 등 음식을 주시곤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보령아산병원은 ‘한 번 해보자’ 하면 긍정적으로 따릅니다. 하나 돼서 자기 일처럼 하는 그 힘은 의료진과 직원들이 합심했기 때문입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병원장이 앞장 서 조직한 축구회가 주축이 되어 잔디구장에서 함께 공도 차고 저녁도 먹고 하지요.”
- 개원 멤버 전봉수(53) 노조지부장

“뇌염 유행 때 병원 생긴 것에 감사했어요” 
“84년인가 보령에 뇌염이 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얼마나 환자가 많았는지 소아 한 침상에 2명씩 있을 정도였어요. 중환자실에 근무했었는데, 그 당시는 의료보험이 안 될 때라 대학병원 후송은 사람들이 생각도 못 했죠. 저희는 비상근무에 들어가 밤 11시에 퇴근하는 ‘이브닝’은 새벽 2~3시, 오후 3시에 퇴근하는 ‘데이’는 저녁 7~ 8시에 퇴근하는 등 지역주민과 고통을 나누었습니다. 이 지역 사람이던 저는 그때 보령아산병원이 생긴 것에 정말 감사했어요. 많은 사람을 구했죠. 우리 병원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서문희 간호사는 23세에 입사해 28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는 당시 위궤양으로 출혈이 있거나, 복수가 찬 중환자들이 많이 발생했었는데 지금은 이 지역 주민들의 건강이 많이 좋아진 편이라고 한다.
- 제5병동 서문희(50) 수간호사

“퇴사해도 봉사하고 싶어요” 
“퇴사를 해도 봉사할 생각이에요. 자긍심이 느껴지는 참 좋은 직장입니다. 한 달에 최소 2번 정도 근무에 지장 없는 한도에서 봉사를 갑니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3시간 정도 있다 오지만 휴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합니다. 결혼 전부터 저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박선옥 조무사는 병원에 감사하며 20년째 근무하고 있다.
- 박선옥(41) 조무사

“추기경님도 쉬어 가셨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가끔 오셨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오신 추기경은 뒷산에 올라 조용히 정경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원장 수녀님이 추기경님 비서를 지낸 분이라 복잡한 일이 있으면 2~3일 수녀원에 계셨지요.” 고미화 간호과장은 잘 알려지지 않은 보령병원의 비화를 밝힌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가운데서 시국 걱정으로 불면증을 앓던 김수환 추기경이 경찰의 감시를 피해 잠적했던 장소 중 하나가 보령병원의 수녀원이었던 것이다.  “수녀님들이 참 열심히 하셨어요. 간호사 회의 때는 아직도 ‘간호사의 기도’를 모두 함께 낭송합니다.” 
- 개원 멤버 고미화(52) 간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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