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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편지 축령산 편백나무 숲 김주영

서울에서 남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호남고속도로로 들어서서 3시간 남짓한 여정, 백양사 나들목으로 나가면, 바로 전남 장성군 서삼면 일대 축령산 기슭과 만난다. 그 기슭 아래로 조그만 마을이 바라보이는데, 영화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을 촬영하였다는 영화민속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 들머리에 있는 안내판이 없다면, 영화를 촬영하였다는 낌새를 당장 찾아내기 손쉽지 않다.

이 곳에서 마을 주변인 축령산 기슭을 둘러보노라면,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첩첩한 산기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삼나무와 편백나무 군락지가 바라보인다. 몇 년 전 일본을 여행하였을 때 가파른 산기슭을 온통 타고 오른 삼나무 군락지들을 발견하고 놀랐었다. 축령산 기슭에서 방대한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과 만나게 되다니,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내가 고속도로를 3시간 이상이나 겨냥하고 달려온 까닭은 영화마을 안 쪽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세심원(洗心院) 지킴이며 축령산 편백나무 지킴이기도 한 변동해 씨를 찾아뵙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1957년경부터 이 숲을 일구기 시작해서 무려 2백50여 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아가신 임종국 선생의 피나는 노력의 대가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겉보기에 구분이 어렵다. 겨울철에도 잎의 푸르름을 그대로 유지하는 편백나무와 잎에 낙엽이 드는 삼나무는 구분이 가능하지만, 같이 푸른 여름에는 딱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축령산의 편백 휴양림 산책로를 걸어보면 똑 같이 갈색을 띤 껍데기가 벗겨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어느 것이 삼나무이며 어느 것이 편백인지 더욱 구분하기 어렵다. 사실 이들 나무들은 서식 환경이 비슷해서 함께 식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무들 모두가 일본을 원산지로 하고 있고 1920년대부터 목재로 쓰기 위하여 수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축령산 휴양림에도 두 나무들이 뒤섞여 식재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편백나무는 그 향기가 매우 독특하고 오래 가기 때문에 건물의 내장재나 가구로 쓰인다 한다. 보통 집을 지을 때, 이 나무로 몇 개의 서까래만 올려도 여름의 모기와 파리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온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히노끼탕’의 히노끼는 바로 노송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 편백이라 한다.

세심원에서 걸어서 장성 시내 쪽을 겨냥하고 축령산을 넘어가는 1시간 반 동안의 약 6킬로 산책길 양쪽으로는 온통 길길이 자란 이 삼나무와 편백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산책로는 그 향기를 폐부 깊숙하게 들이마실 수 있어서 그 정취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 이 숲은 그래서 2000년에 ‘22세기를 위하여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어 있기도 하다. 

간벌한 편백나무로 마루를 깐 세심원 마룻방에서 변동해 선생이 직접 만드신 차 한 잔을 얻어마시며 앉아 있노라면 사타구니 사이로부터 끊임없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편백나무 향에 또한 아득하게 도취되고 만다. 세심원에서 장성 쪽으로 산책길을 떠날 적에는 반드시 차를 버려야 한다. 차를 타고 고개를 넘게 되면 10분을 지나지 않아서 곧장 후회하게 된다. 무리를 해서라도 걷기로 작정하고 1시간 반을 편백나무 휴양림 사이를 걷다보면, 정말 예상치 못했던 행운과 만나게 된다.

1시간 반이 지난 그곳 산기슭 오른편에 짓질려진 삽짝문을 가만히 밀면, 그대로 열리는 방 두 칸짜리 초가집을 발견하게 되는데, 삽짝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3백년 매화나무 한 그루가 이 집의 주인이 자기인 것처럼 떡 하니 자리 잡았다. 편백으로 마루를 깐 방 한 칸, 그리고 황토로 미세 올리고 황토로 바닥을 만든 방 한 칸, 이 조촐하기 그지없는 집이 바로 휴휴산방이다.

유명한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 선생이 명상하는 집이기도 하다. 만나지는 못하리라는 예상을 뒤집고 섬돌 아래로 내려서 있는 그를 발견함으로써 나는 그 우연과 반가움으로 가슴이 뛰었다. 참으로 소중한 분을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조용헌 씨와 변동해 씨는 그래서 임종국 선생이 일궈낸 편백의 정기를 지켜나가는 축령산 지기일시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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