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의 향기가 안내하는 세상 꿈나무들의 씩씩한 꿈 공남윤



천년의 미소를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 경주에, 버스들이 꼬리를 물고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버스 문이 열리자 경주 땅에 재잘재잘 아이들 목소리가 먼저 내려앉는다. 그 위로 똑같은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등에 가방을 둘러멘 아이들이 콕, 발 도장을 찍는다. 아이들은 달뜬 표정이다. 청주 제천 익산 군산 곡성 김해 밀양 등 각지에서 모인 88명의 공부방 아이들이다.

아침 일찍 짐을 꾸려 경주를 향해 달려왔으니 지칠 법도 한데 아이들 얼굴에는 싱싱한 에너지가 넘실거린다. 공부방 아동 산업체 견학은 여가활동 기회가 적은 공부방 학생들에게 행복하고 유익한 여름방학을 선사하기 위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이 마련한 행사다. 사랑을 나누고, 세상의 온기를 전하는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부스러기 사랑 나눔회’가 주관했다.

첫째 날 : 경주 문화엑스포와 흥겨운 만남의 밤
“2박 3일 동안 정말 재미있게 보낼 거예요. 어젯밤엔 잠도 제대로 안 오더라고요.” 경상북도 밀양시 가곡동에서 언니 인영이와 함께 견학 프로그램에 참가한 명선이는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마지막 날 밤에 캠프파이어와 장기자랑이 있는 것을 아느냐며 그 시간을 위해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다고 살짝 귀띔도 해준다. 명선이를 비롯해 이번 행사를 통해 신명나는 여름을 만들 아이들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가득 차 있을까? 아이들은 첫째 날의 첫 번째 행선지인 경주 문화엑스포를 향해 간다. 버스 차창 너머의 세상은 희붐하다. 반갑지 않은 비가 흩뿌리고 있지만 세찬 기세는 아니다.

엑스포 문화센터 안을 둘러보고 3D 입체 영화를 감상하게 된 아이들. 버스 안에서 쉴 새 없이 재잘대던 아이들이 영화를 볼 때에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몰입하다 영화가 끝나자 아쉽다는 표정까지 짓는다. 영화를 감상하고 난 아이들 얼굴은 바깥 날씨와 대조적이다. 경주문화엑스포장을 나서 숙소로 돌아온 아이들에게는 만남의 밤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맛깔스러운 저녁을 먹고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자기 소개를 시작으로, 재미난 율동과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느 조의 박수소리와 함성이 제일 큰지 시합하느라 강당이 떠들썩하다.

둘째 날 :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견학과 푸른 바다!
아이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하늘에 닿았는지 언제 흐렸냐는 듯 날이 쾌청하다. “오늘 비 오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해수욕장에 가서 놀 건데 비 오면 큰일이잖아요. 친구들이랑 수영복도 입고 잤어요.” 김해에서 온 동연이, 진희, 혜진이는 일어나자마자 창문가로 달려갔단다. 이 어여쁜 어린 숙녀들만 빌었으랴. 참가 학생 전원의 단체 기도였으니 급행으로 하늘에 닿았으리라.

둘째 날의 첫 번째 행선지는 현대자동차 공장이다.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자동차업계 최대규모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도착한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의도의 1.5배라는 어마어마한 면적에 놀라고, 12초에 한 대씩 차가 생산된다는 설명을 듣고는 탄사가 연발이다. 질문 공세도 끝이 없다.

자동차 공장 견학으로 한껏 달아오른 아이들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줄 곳은 현대예술관과 예술관 지하에 있는 스케이트장. 예술관을 둘러보고 영화를 감상하고 난 후 들른 스케이트장은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하다. ‘익산 꿈터’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두 번째 타보는 것이라면서도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얼음 위를 누비고 다닌다. 밀양 ‘하늘사랑 교실’의 송명숙 선생님도 아이들과 손을 잡고 미끄러지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정말 값진 방학 선물이네요. 우리 아이들이 공부방에서만 방학을 보내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좋네요.”



이어 현대중공업 공장에 가서 초대형 선박들을 구경하고 기념 사진도 찍은 아이들은 학수고대하던 그곳,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있는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푸른 융단을 드리운 듯 펼쳐진 바다를 보고 주저 없이 달려가는 아이들. 어젯밤부터 수영복을 입고 잤다는 김해 ‘셀라 신나는 집’아이들의 컬러풀한 수영복이 여름 햇살 아래서 눈부시게 빛난다. 예쁘고 앙증맞은 이 수영복들은 김선미 선생님의 친구가 30명이나 되는 공부방의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수영복 입고 바닷가에서 놀 생각에 들뜬 아이들은 어제 뜬 눈으로 밤을 샜다. 튜브를 타고 유유히 바다를 떠다니고, 물장구를 치고, 모래성을 쌓고, 모래찜질을 하고…. 살갗이 벌개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놀이는 이어진다.

실컷 여름 바다를 즐긴 아이들 얼굴에는 강렬한 여름 햇살이 남긴 흔적이 스며있다. 물놀이를 마친 아이들은 바닷물에 담가놓은 수박과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위를 녹인다.

셋째 날 : 문화유적 둘러보며 천년 숨결 느끼다
“어젯밤 장기자랑 해서 받은 상이에요!” 둘째 날 밤은 화려하게 불타올랐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장작불 주위를 돌며 신나는 게임을 즐겼고 장기자랑으로 무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춤, 노래, 악기연주까지 장기를 뽐낸 아이들은 선물을 손에 쥐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체스 세트, 축구공, 학용품 등 켜켜이 쌓여있던 선물들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전날 받은 선물을 손에 꼭 쥐고 마지막 날 일정에 나선다. 오늘 일정은 경주 문화 답사. 천마총 유적지와 안압지, 그리고 첨성대까지 둘러보게 된다. ‘익산 꿈터’에서 참가한 쌍둥이 자매 희지와 혜지는 수첩에 꼼꼼히 적어가며 유적들을 가슴속에 새기느라 여념 없다.



“2박 3일 일정이 다 재미있었어요. 자동차가 12초에 한 대씩 나온다는 게 참 신기했고, 장기자랑도 재미있었어요. 아, 바닷가에서 논 것이 제일 신났어요!”

희지와 혜지는 밝은 성격과 웃는 눈매가 꼭 닮았다. 이 아이들에게 2006년 여름, 경주와 울산에서 보낸 시간이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잠시나마 공부방을 떠나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흥미진진한 경험을 하고, 자연을 한 걸음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공부방 선생님들의 마음도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오려면 비용 부담이 커요. 그래서 쉽사리 나서질 못하지요. 우리 아이들은 가정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큰 꿈을 품고 살고 있어요. 올 여름에 이런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분이 좋고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드려요.”

익산에서 아이들을 인솔해온 김순덕 선생님은 2박 3일을 즐겁고 알차게 보냈다면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제 다시 버스에 올라야한다. 사흘 동안 돌아다니면서 불어난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아이들이 집으로 향한다. 엄마에게 들려줄 이야기보따리만큼 아이들의 꿈도 부풀어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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