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회복지 선진 노인의료복지 르포 3 - 캐나다 이윤환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은 아산사회복지재단 후원으로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 실시되는 다양한 노인케어 현장을 찾아가 바람직한 우리 모델을 모색해 봤다.

캐나다의 노인인구는 약 4백만 명이다. 전체인구 8명당 1명이 노인인데, 2041년에는 92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의료와 요양의 필요도가 높은 85세 이상 노인은 43만 명에서 2041년에는 160만 명으로 늘어나 전체인구의 4%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의 5분의 4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4분의 1이 장애를 지니고 있는데 85세 이상 장애율은 45%나 된다.

캐나다에는 의사와 병원비가 조세에 의한 재원으로 충당되는 전국민 건강보험(Medicare)이 있어 국민들은 기본적인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한다. 그러나 케어(요양)에 있어서는 급성치료만큼 포괄적인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을 뿐더러 주 마다 차이가 크다. 일반병원과 요양 및 재활병원은 거의 공공재정으로 운영되지만 너싱홈(Nursing home) 같은 장기요양서비스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홈케어, 주간보호센터, 낮병원, 재활병원, 장기요양시설 등 제공주체별로 예산, 대상자 판정기준, 관할구역 등이 독립적으로 정해져 있다. 문제는 불필요한 입원 방지와 노인의 지역사회 거주를 장려하는 등 적정한 서비스로 연결해주는 재정 및 임상적 책무를 맡은 단일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서비스를 못 받거나 중복되게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에 따라 캐나다는 좀더 효율적인 서비스를 위해 기존의 분절된 서비스제공 조직의 변화를 위한 개혁방안을 강구해오고 있다. 퀘벡을 포함한 5개 주에서는 서비스 제공기관간의 조정된 환자평가 및 적정 서비스로의 배치, 사례관리 등을 통한 단일창구(single entry point)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또한 병원과 장기요양시설의 병상수 감축과 동시에 퇴원 후 또는 지역사회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기관간 독립된 재정과 관할구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급성치료와 장기요양, 보건의료와 복지서비스, 시설과 재가서비스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두제(capitation)에 기초한 통합 케어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엘버타주 애드몬튼시에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통합케어 모형인 PACE를 본따 ‘CHOICE’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퀘벡주 몬트리올시에서는 시범사업으로 ‘SIPA’를 진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중소도시인 셔부룩시를 중심으로 ‘PRISMA’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공공중심의 의료제도를 표방하는 캐나다가 노인케어에 대한 미래 대안으로 통합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어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노인을 위한 통합케어 ‘SIPA’
병원이나 재활기관 혹은 요양원을 하도 번갈아 찾아 다녀 ‘하이 롤러스(High Rollers)’ 라고 불리는 중증 장애노인들. 최근 캐나다 맥길대학 의과대 노인의학과는 증가하는 의료서비스나 수발의 수요를 만족시키면서 비용부담은 늘어나지 않는 노인케어 모델 ‘SIPA’를 선보여 각국의 주목을 끌고 있다.
“노인홈케어 담당자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물으면 ‘15,000시간의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식으로 답한다. 이런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입원 횟수가 몇 회라는 등으로는 노인케어의 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System of Integrated Care for Older Persons(노인을 위한 통합케어 시스템)의 첫 글자에서 따온 SIPA의 개발과 진행을 맡아온 맥길대학 하워드 버그만 교수의 말이다. SIPA는 지역사회에 바탕을 둔 포괄적인 의료복지서비스 프로그램으로 노인의 건강 증진, 유지, 회복을 위한 보건의료와 복지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노인건강이 심각해졌을 때 병원이나 시설 입원도 연계해 줄 만큼 프로그램은 유연하게 운영된다. “몬트리올 내 2개 지역 도시주민을 대상으로 22개월 동안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을 적용해 봤다. 1차 의료의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평가가 이뤄졌다. 예를 들면 가정봉사원이 환자의 영양상태를 평가하고, 종합적인 케어정보는 1차 의료의사에게 전달되는 식이다.” 노인 케어에서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중요하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병실에서 응급콜 버튼을 누르면 누군가 와서 돌봐준다. 그러나 지역사회 서비스 조직은 이런 것이 원활하지 않다. 일단 필요한 서비스를 알아야 하고, 이에 맞는 제공자를 찾아 연락해야 하는 등 쉽지가 않다. 이를 위해 SIPA는 24시간 전화상담 창구를 개설하고 있다.

버그만 교수는 기존의 노인케어 시스템의 약점으로 서비스에 대해 책임을 지는 주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병원은 독자적으로는 좋은 케어(홈케어, 의사, 병원 등)를 제공한다. 하지만 각 기관들은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후 환자가 퇴원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수입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 이후 상황은 더 이상 의료기관의 문제가 아니라는 식이다.” SIPA는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보건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일례로 홈케어 대상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거나 퇴원했을 때 가정간호 서비스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통합케어의 새로운 과제가 시작됐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허약한 노인은 복잡하고 다양한 의료복지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열이 나는 환자의 경우 누군가 집에 와서 복지서비스만 제공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서비스는 제공되지만 환자 상태는 악화된다. 현재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문제점이다. 버그만 교수는 “수발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왜 만족하는지 물어보니, 보호(security)라고 응답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례 관리자에게 연락, 대처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전처럼 응급실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홈케어, 그룹홈 등 환자의 중증 여부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장애수준을 가진 노인이라도 재활이나 건강증진을 위한 추가 서비스는 개인에 따라 맞춤식으로 접근하는 게 적절하다.



이런 점에 비춰 일본식 개호(장기요양) 보험은 경직된 시스템이라고 버그만 교수는 지적한다. “노인통합 케어를 위해서는 재정을 더 투입하든지 아니면 현재의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전자의 경우 정부에서 부정적이므로 후자의 경우를 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급성기 질환을 위해 썼던 재원을 1차의료나 홈케어 분야에도 과감하게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한국은 새로운 장기요양제도를 시작하는 만큼 우리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처음에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통합케어 서비스가 제도에 따라 병행 개발돼 분절(fragmentation)의 문제가 생겼다. 의료와 지역사회 복지서비스 간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장기요양 서비스 혜택을 받는 노인들이 주로 병원을 이용하게 돼 비용 상승을 불러오게 됐다. 캐나다의 SIPA와 미국의 PACE 같이 중증노인 환자를 위한 새로운 통합케어 시스템은 미래 수요와 비용증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런 제도가 정착되면 앞으로 병원이나 너싱홈을 추가로 신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인구고령화는 우리 사회가 닥친 큰 문제다.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리 갖춰야만 노인케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생활 보장하는 ‘PRISMA’
‘독립생활 유지를 위한 통합서비스 프로그램’인 퀘벡주의 PRISMA(Program of Research to Integrate the Services for the Maintenance of Autonomy)는 중소도시 및 농촌 지역의 허약한 노인들에게 보건의료와 복지서비스의 원활한 조정을 통해 지역사회에 오래 거주하도록 돕고 있다. SIPA처럼 한 기관에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관련기관의 서비스를 노인의 필요에 따라 연결, 의뢰,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PRISMA의 자랑은 탄탄한 조직망이다. 보건과 복지기관이 참여한 공동운영위원회는 정책과 자원분배를 결정한다. 서비스 조정위원회는 지역사회기관 관계자와 노인이 참여해 서비스 조정과정을 모니터링 해 원활하게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한다. 실무팀은 사례관리자를 중심으로 구성해 필요한 대상자를 사정하고 서비스 제공 업무를 담당한다. 노인과 가족은 건강정보전화(Health Info Line)를 통해 판정심사와 서비스 신청을 할 수 있다. 자격요건은 ①65세 이상, ②중등도 또는 중증장애, ③재가생활 가능, ④보건의료 및 복지서비스를 두 가지 이상 필요로 하는 경우다.

검증된 판정도구를 통해 대상자의 장애정도를 평가하는데, 이 도구는 환자의 중증도 분류가 가능하도록 개발돼 적정한 서비스 배정과 급여 수가 책정에도 이용된다. 따라서 사례관리자의 역할이 PRISMA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사례관리자는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계획하고, 서비스와 연결해 주고, 환자 모니터링과 재평가를 맡는다. 단순히 서비스를 연결해주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며 기관간의 서비스 연계를 총지휘한다. 환자의 정보는 전자의무기록을 통해 모든 기관이 공유한다. PRISMA는 1997년 이래 보건소 중심의 시범사업으로 실시돼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평가결과 대상노인의 입원율과 응급실 이용률 감소, 높은 이용만족도, 수발자의 부담 경감 효과가 입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