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이 있는 풍경 강릉아산병원 박인숙



보건복지부가 우리나라 의료역사상 최초로 전국의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85곳을 종합평가해 2005년 2월 발표한 전국 의료기관 평가에서 강릉아산병원은 진료체계, 환자의 권리와 편의 등 9개 분야에서 A등급을 받았다.

아득한 바다에서 새해의 태양이 솟아오른다. 하늘과 맞닿은 검은 어두움에 눈썹 같은 빛띠를 스며내며 천천히 조금씩 빛을 밀어 올리다 마침내 붉고 큰 덩어리로 둥실, 물기를 털어내는 둥근 해. 저 해를 닮아 한 해의 모든 날들이 환히 빛나기를 소망하며 너도 나도 차가운 바람이 옷섶 헤치는 겨울바다를 찾아 일출의 감동을 맛본다.

산과 바다와 호수가 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빚어내는 영동지방의 중심도시 강릉에는 자랑거리가 너무도 많다. 하늘과 바다와 호수와 술잔과 사랑하는 님의 눈동자에 뜬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경포대, 시대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자유로운 예술혼을 꽃피운 신사임당이 조선의 큰 학자 율곡 이이를 낳은 오죽헌.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우리 민속놀이의 진수를 세계에 뽐낼 수 있게 된 강릉단오제며 99칸 한옥에 고풍스러운 옛 살림문화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선교장….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이 자랑거리들은 하루하루 삶에 충실하며 여유와 품격을 가꾼 선조들의 귀한 유산이다. 그 옛날처럼 여전히 높은 산, 거친 파도에 맞서며 자식 낳아 기르고 부모 봉양하는 오늘의 강릉에서도 새로운 자랑거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자리한 강릉아산병원이다.



전국적 명성을 쌓은 강릉아산병원 2006년에 개원 10주년을 맞는 강릉아산병원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에 전국적인 명성을 쌓아올린 영동 주민들의 건강 지킴이다. 보건복지부가 우리나라 의료역사상 최초로 전국의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85곳을 종합평가해 2005년 2월 발표한 전국 의료기관 평가에서 강릉아산병원은 진료체계, 환자의 권리와 편의 등 9개 분야에서 A등급을 받았다. 전국에서 6위, 지역 1위의 기록이다. 상위권에 든 곳은 대개 수도권에 있는 곳들로 지방에 자리한 병원은 단 두 곳에 불과했다.

“강릉아산병원이 문 열기 전까지 이 지역은 의료 소외지역으로 불렸습니다. 주민들 생활터전은 넓게 퍼져 있는데 교통은 편치 않고, 마땅한 종합병원이 없어 큰 일이 생기면 온갖 불편을 감수하며 서울 등으로 가야했죠. 최선을 다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펼치고자 했던 지난 10년간의 노력이 전국 수준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 큰 보람으로 여깁니다. 앞으로도 수준 높은 진료시스템을 더 강화해 영동지역 3차 진료기관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의사 170명에 간호사 340명 등 950여 명의 직원을 이끄는 최윤백 병원장의 다짐이다.

강원도 고성에서 경상북도 울진까지 험한 산세와 맞닿은 바다를 끼고 기다랗게 펼쳐진 영동지방. 대다수 농어촌과 마찬가지로 젊은층은 도시로 빠져나가 논밭 일구고, 고기잡이 하는 노동은 장·노년층이 감당하고 있다. 고령화 추세로 인해 고혈압·당뇨·폐질환·각종 암 같은 만성병 발병률이 높고, 탄광지대에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도 많다. 뿐인가. 겨울에도 새벽부터 그물과 씨름하는 어민들은 만선의 기쁨과 빈 배의 허탈을 한잔 술로 풀다보니 간에 무리를 불러오곤 한다.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설립자 고 정주영 이사장은 양양과 강릉, 주문진에 사는 고향사람들과 허물없는 정을 주고받았다. 사는 모습은 조금씩 나아져도 의료진과 시설이 미비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불편과 소외감을 정주영 이사장은 깊이 헤아렸다. 그 뜻에 따라 첨단 시설과 우수 의료진을 갖춘 650병상 규모의 강릉아산병원이 1996년 11월 문을 열었다. 개원식에서 정주영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곳에 살건, 빈부귀천을 떠나 건강한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바다와 가까운 병원이어서 병상에 누운 채 동해 바다와 일출의 장관을 감상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어느 곳에 살건, 빈부귀천을 떠나… 신사임당은 오죽헌 친정과 서울 시댁을 오가며 대관령 꼬부랑 고갯길을 걸어 넘었다. 그 대관령 옛길 근처, 소나무 참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에 피고 지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 첩첩산골 중의 산골로 이름 높았다. 도로가 단장되고 인터넷 망이 뚫린 덕분에 고랭지 채소와 씨감자 팔기도 한결 수월해 졌지만, 마을에서 강릉시내로 나와 병원에 들렀다 가려면 아직도 하루는 족히 걸린다.

왕산면 고단에서 대기리를 거쳐 강릉으로 향하는 버스는 아침 7시 20분과 낮 1시 30분 등 세 차례 떠난다. 1시간을 타고 나와 시내 신영극장 앞에서 내린 뒤 사천, 연곡, 주문진행 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을 더 가야 강릉아산병원. 대기리로 들어가는 버스도 낮 12시와 오후 5시 등 세 번뿐이니, 승용차 없이 병원을 오가기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진료 받았는데 내시경 검사를 위해 며칠 후 다시 오라고 한다면 속은 더욱 쓰리고 아플 터.



이런저런 주민 사정을 잘 아는 병원은 진료시스템 강화에 역점을 두고 환자 편의증진에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4년부터 운영하는 소화기병 센터다. 진료 후 1주일 이상 기다리던 내시경 검사가 당일에 가능하고, 어린이 환자를 위한 소아내시경이 따로 있다. 심혈관 환자가 많은 지역특성을 고려해 99년 오픈한 심혈관 센터에서는 심혈관조영기·심장초음파기·운동부하검사기 등의 첨단기기를 갖추고 순환기내과·흉부외과·소아과·핵의학과·진단방사선과 의료진이 협력진료를 펼친다.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아산재단의 이념은 경제, 육체적 어려움으로 병원에 쉬이 오지 못하는 환자들을 찾아 나서도록 재촉한다. 의료장비를 장착한 진료버스로 경로당과 산골보건소, 마을회관을 찾아가는 무료 순회진료 서비스가 한 달에 10여 차례 이루어진다. 수혜자는 연간 6,300여 명에 이른다.

강릉시 상시동 2리 경로당에 버스가 닿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반갑게 일어선다. “추운데 수고 많으시네. 아랫동네서 왔는데, 하도 허리랑 다리가 아파서 어디 크게 고장이 났나 싶어.” 칠순 전옥녀 할머니의 호소에 의료기사 박경숙 씨가 혈당을 재려고 체크기를 꺼내 들자 “피 빼려구? 이렇게 말랐는데 뭐하려고 피를….” 마땅찮은 얼굴. 잠시 후 “150이라구? 전엔 200이 넘게 나왔는데 오늘은 선생님들 오는 줄 알았는지 낮게 나왔네.”라며 할머니는 흡족해 하신다. “침은 안 놔 주나, 허리도 아픈데.” “내가 요즘 자꾸 입이 마르는데 왜 그럴까?” “아, 갈 때가 돼서 그러는 거야, 갈 때가 돼서!” 두런두런 이어지는 이야기에 묻어 주름진 얼굴들로 잔잔한 미소가 번져간다. 고혈압·당뇨· 퇴행성관절염·장염·요도염, 이날 어르신들을 괴롭힌 주범이다.

늘 푸른 바다처럼 싱싱한 삶 “양미리 70마리 만원에 가져가요~, 꽁치는 50마리에 만원!” 동해가 키운 생선을 사고파느라 주문진 어시장은 늘 싱싱하다. 산 오징어는 함지박 바깥으로 물총을 쑥쑥 쏴 대고, 맑은 눈알의 명태와 붉은 홍게는 층층이 누워 있고. 바람과 햇빛을 쐬면 그들은 또 다른 맛으로 변신한다. 잡자마자 배에서 내장 다듬어 말린 거무튀튀한 배오징어, 짙푸른 색으로 눈을 유혹하는 파래김. 어시장 건너편 건어물 거리는 군입거리와 선물을 마련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푸근한 웃음으로 15년째 경기상회 건어물상을 운영하는 김정안 씨(51)가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10년 전이다. 서울로 가서 병원을 찾은 결과 자궁근종, 좀 더 커지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두 아들과 남편까지 ‘아들 셋’을 돌보던 몸, 강릉에도 커다란 병원이 문을 여니 나중에 하지 싶어 그냥 내려왔다. 가끔씩 통증이 오곤 했으나 빈혈 약만 먹으며 차일피일 미루던 4년 전 무서운 하혈이 시작돼 강릉아산병원에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



“덩어리가 주먹만 하게 커졌었대요. 가까이에 큰 병원이 있으니 얼마나 좋아. 주위 사람들한테도 누누이 말하지, 병 키우지 말고 얼른얼른 병원 가라고. 서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요샌 다리가 좀 아파서 또 병원 다녀요. 그렇지만 수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뭐, 하하.” 건강한 몸에서 또르르륵 굴러 나오는 웃음이 새삼 소중하다. 산과 바다가 굽이굽이 절경을 빚어내는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남으로 발을 돌린다. 안인진을 거쳐 정동진에 닿기 전, 등명 언덕에 자리한 하슬라 아트월드도 강릉의 새로운 명물이다. 바다와 마주한 야산 3만 3천 평에 다양한 예술품으로 정원을 단장하고 멋들어진 전망대와 카페도 꾸몄다. ‘하슬라’는 고구려 때부터 불려온 강릉의 옛 이름. 카페 발코니에서 바다를 보노라니 고개를 양옆으로 돌려야 다 보일 만큼 바다는 넓디넓게, 쪽빛으로 가득 차 출렁인다. 우리네 삶도 저 쪽빛 닮아 늘 푸른 꿈과 보람으로 아로새겨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