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따라 기생하여 겨우 살지만 화려한 꽃을 피운다 현진오


식물은 물리적인 태양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무기물질만이 풍부한 지구상에서 태양 에너지를 연료로 사용하여 최초의 유기물질을 만들어 공급하는 게 식물인 것이다. 여기서 생긴 탄수화물이라는 유기물질은 지구의 모든 생물을 부양하는 에너지가 된다. 태양 에너지가 화학 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은 식물세포 속에 들어 있는 엽록체라는 기관에서 일어나며, 엽록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을 광합성이라 한다.
식물은 엽록체라는 광합성 공장에서 물분자와 이산화탄소를 주재료, 인, 질소, 황, 마그네슘 등 15종류의 필수 영양소를 부재료로 하고, 태양에너지(가시광선)를 연료로 사용하여 탄수화물을 생산한다. 이 과정의 부산물로 산소가 발생된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동물과 달리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 자신을 유지한다.
초종용은 엽록소가 없는 식물이다. 줄기나 잎 어느 곳에도 녹색을 띠는 부분이 없으므로 광합성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과물인 탄수화물도 만들지 못한다.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며 살아갈 수 없으니, 초종용은 식물의 본질과도 같은 기능을 할 수 없는, 식물이기를 포기한 식물인 셈이다.
초종용처럼 다른 식물로부터 영양분을 얻어먹고 사는 식물을 기생식물이라고 한다.
겨우살이 같은 목본성 기생식물은 다른 나무에 붙어서 수분과 무기물을 얻지만, 자신도 엽록소를 가지고 있어서 광합성을 한다. 하지만 기생식물 가운데 풀은 대부분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수분과 양분을 다른 식물에서 얻어야만 한다.
초종용은 사철쑥이라는 여러해살이풀의 뿌리에 자신의 뿌리를 박고 물과 양분을 얻어먹고 산다. 하지만 봄마다 어김없이 새싹을 틔우고, 5~6월이면 꽃을 피운다. 그 꽃이 얼마나 화려한지, 꽃만 보고 있노라면 기생하여 겨우 살아가는 식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록 다른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여 어렵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화려한 꽃을 피워 자손을 퍼뜨리려는 노력은 뭇 생물의 본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기생하는 습성만으로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이 땅의 초종용들은 이제 설 땅마저 잃고 있다. 사철쑥과 초종용이 살고 있는 바닷가 모래땅이 각종 개발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6월 초순에 변산반도 상록해수욕장에서 발견하여 사진에 담았던 이 녀석들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지 궁금하다.

글쓴이 현진오는 멸종위기식물에 관심 많은 식물분류학자이자 보전생물학자로 현재 동북아식물연구소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