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따라 댐건설 논란중에 베일 벗은 진귀한 손님 현진오


몇 해 전 동강댐 건설을 놓고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 찬반 양론이 뜨겁게 달아오른 적이 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다 마침내 댐을 짓지 않기로 결정한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댐이 붕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고, 동강의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기 때문도 아니었으며,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은 더욱 아니었다. 댐을 건설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그곳에 살고 있는 여러 종류의 귀중한 생물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희귀 동식물이 서식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대형 개발 사업이 중지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은 크게 환영했다.
동강댐 건설을 막은 주인공들 가운데 동물은 검독수리, 담비, 사향노루, 하늘다람쥐, 수달, 어름치, 다묵장어, 금강모치, 연준모치 등을 꼽을 수 있고, 식물 주인공으로는 층층둥굴레, 연잎꿩의다리, 향나무, 비술나무, 개병풍, 동강할미꽃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동강할미꽃은 동강댐 건설 불가 판정을 내린 국무총리실 산하 민관합동조사단의 환경 분야 보고서 표지에 단독 입후보할 만큼 중요한 생물이다.
동강에 살고 있는 할미꽃을 닮은 이 식물은 ‘동강할미꽃’ 또는 ‘바위할미꽃’이란 이름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지만, 학술적으로는 어떤 식물인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하다가 몇 해 전 원로 식물학자인 이영노 박사에 의해 우리나라 특산의 신종 식물로 발표되었다. 석회암 벼랑으로 둘러싸인 채 오랜 세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온 동강에서 그곳 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 이 식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동강을 수수께끼의 땅이라고 부를 만한 충분한 이유를 동강할미꽃의 기원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동강할미꽃은 사는 곳, 꽃 색깔, 피는 모습 모두가 할미꽃과는 사뭇 다르다. 벼랑에 의지한 채 하늘을 향해 연분홍 꽃을 피워 올리는 이 식물의 자태는 신비감 그 자체다. 가장 늦게 봄이 드는 강원도 땅에 살지만 4월 초순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깔려 있던 할미꽃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버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이고 보면 새로운 할미꽃 종류가 동강에서 발견된 것은 반가움을 넘어 눈물 날 정도로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이 땅에서 새로 발견되는 식물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는 이 땅에 대해 모르는 게 많고 사랑이 부족한 까닭이리라.

글쓴이 현진오는 멸종위기식물에 관심 많은 식물분류학자이자 보전생물학자로 현재 동북아식물연구소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