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감동이란 말로도 형언할 길 없는, 헝클어진 잿빛 머리의 할머니 박종호


“나는 음악적 진실을 접하였다” - 니콜라예바
러시아 피아노계의 대모이자 바흐 연주의 권위자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구소련이 자랑하던 레이블 멜로디아의 간판 아티스트였다. 젊은 날의 그녀가 처음으로 서방에 가게 되었는데, 아직 서유럽의 예술계에 어두웠던 그녀에게 한 선배가 조언을 하였다. “잘츠부르크에 가면 꼭 카라얀이라는 젊은 지휘자의 연주를 들어라. 그는 가장 주목할 만한 떠오르는 신인이다.”
니콜라예바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카라얀의 콘서트 티켓을 구했다. 음악회가 시작될 때까지 그녀는 그날의 협연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처음 본 여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니콜라예바의 말이다.
“그녀의 몸은 완전히 뒤틀려 있었고,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막상 연주가 시작되자 카라얀의 존재는 나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피아노 위로 손을 올리자 곧 나의 두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때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 연주가 끝날 때 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모두 그녀에게 감동해 있는 상태였고, 지휘자는 그녀에게 감전된 것 같았다. … 나는 음악적 진실을 접하였다.”
당시 충격적인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연주를 들려 주었던 그 피아니스트는 뒤틀려가는 온몸을 보조대로 감싼 꼽추였다.

“나는 평생 동안 진정한 천재 셋을 만났다” - 채플린
클라라 하스킬(1895~1960)은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에서 유대인의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녀는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다.
먼저 그녀는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청순하고 고혹적인 자태는 어릴 때부터 주위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외모가 아니라 하늘이 내린 재주였다. 하스킬은 여섯 살 때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듣기만 하고 한 악장을 다 연주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음악성은 참으로 놀라워서, 어릴 때부터 한 곡을 그대로 조를 옮겨서 다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배우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은 유명하다. “나는 평생 동안 진정한 천재라고 할 만한 사람을 세 사람 만났다.
처칠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하스킬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닥친 운명은 가혹하였다. 그녀는 꽃다운 18세에 불치의 병을 얻게 되었다. ‘세포 경화증(Sclerosis)’이라는 무서운 병은 그녀의 모든 몸의 조직들을 서로 엉겨 붙게 만들었다. 그녀의 몸은 쪼그라들고 뒤틀려갔다. 당연히 그녀는 연주를 그만두어야 했고, 그 때부터 온 몸에 보조기구를 찬 채 누워 지내야만 하였다. 뿐만 아니다. 병의 후유증으로 그녀의 몸은 20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갑자기 늙었으며, 머리카락은 모두 반백으로 변해 버렸다.
젊음을 순식간에 잃고 23세의 나이로 어머니마저 잃은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1차대전의 포성(砲聲)을 들으면서 20대를 보냈다. 전쟁 이후 그녀는 놀라운 의지로 병과 싸워 힘들게 이겨내고, 잠시 다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2차대전이 발발하였고 유태인이었던 그녀는 나치를 피해서 남프랑스의 마르세이유로 피신했다. 그리고 그녀의 신경계에는 다시 많은 종양들이 생겼고 게다가 뇌졸중마저 당했다. 그녀는 몇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았다.

그것은 신의 도움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받던 그녀였지만, 이렇게 많은 불행을 겪은 그녀가 처음으로 음반 녹음을 한 것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47년이었으니 이미 그녀의 나이 50을 넘긴 후였다. 만년을 가족도 없이 고양이 한 마리와 마르세이유 항구에서 쓸쓸히 살다가 간 슬픈 거장 클라라 하스킬-그녀의 연주를 들어보라. 이렇게 청아한 피아노 소리가 있을까? 피아노 소리 안에 세상의 아름다움이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만년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행운아였습니다. 항상 벼랑의 끝에 서서 살았지만, 벼랑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지요. 그것은 신의 도움이었습니다.”

글쓴이 박종호는 신경정신과 전문의이며, 음악전문 컬럼니스트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