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노래한다. 보이지 않아도 아름다운 세상 박종호


팝페라 대표 가수
요즘 ‘크로스오버’니 ‘팝페라’니 하는 생소한 신조어들이 음악계에 자주 비친다. 그리고 그런 것을 주로 하는 연주자 중에서 보첼리만큼 크게 부각된 인물도 드물다. 그는 이 장르의 대표적인 가수로 자리매김하였다. 보첼리는 영국의 뮤지컬 여가수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취입한 노래 ‘이별을 고할 때(Time To Say Goodbye)’가 세계적인 히트를 함으로써 큰 명성을 얻었는데, 그는 가수 이전에 한 사람의 시각 장애우이다.

빛이 된 소리
안드레아 보첼리는 1958년 중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고장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들은 농부였는데, 기쁘게 얻은 예쁜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앞을 잘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사려 깊고 사랑이 넘치는 부모들은 아이의 교육에 소홀하지 않았다.
부모들은 아이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보첼리는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곧 플루트와 색소폰도 배웠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음악을 통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아갔다. 그러던 중 보첼리는 학교에서 있었던 축구 경기 도중 크게 부딪히는 사고를 당한다. 그 사건으로 그는 완전한 실명 상태에 빠지게 된다. 12살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보첼리의 사랑은 더 커져만 갔고, 부모 역시 그를 더욱 더 열심히 뒷바라지 하였다. 점자(點字)를 통해서, 그리고 부모님의 애정을 통해서 공부하던 보첼리는 결국 이탈리아의 명문 피사 대학의 법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정상인도 힘든 공부를 마친 보첼리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변호사의 자격을 획득하였다.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하던 보첼리는 34세의 나이에 뒤늦게 음악 활동에 가담하게 된다. 유명한 대중음악 가수였던 주케로에 의해서였다. 주케로는 보첼리가 뛰어난 미성을 가졌으며 쉽게 고음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1992년 주케로는 자신의 음반 취입 작업에 그를 가담시켰고, 그렇게 보첼리의 목소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케로 등 주위 사람들은 보첼리를 유명한 대중음악 경연대회인 상 레모 가요제에 출전시켰다. 여기서 그는 사람들의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자선 콘서트에 초대되어 파바로티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 공연은 전세계에 중계되었으며, 이로써 보첼리는 당당히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보첼리의 창법
많은 사람들이 보첼리의 음악적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뛰어난 고전음악 창법, 즉 테너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중음악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그가 녹음한 많은 음반들을 들어보면 갈수록 자신만의 발성, 즉 대중음악적인 기술과 고전음악적인 발성을 섞어서 노래하였다. 따라서 사실 그를 파바로티나 로베르토 알랴냐 등과 동일한 기준을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보첼리가 자꾸만 크로스오버 쪽으로 나가는 것은 그의 장애 때문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가 정상적인 오페라나 콘서트에 주력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며, 그런 그를 매니저들은 음반 작업에 집중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크로스오버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로린 마젤이나 주빈 메타 같은 대지휘자들은 그를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보첼리도 자신의 장애를 무릅쓰고 최근 제노바에서 있었던 푸치니의 ‘라 보엠’에 세계적인 프리마 돈나 다니엘라 데시와 공연하였으며, 디트로이트에서는 마스네의 ‘베르테르’를 메조소프라노 데니스 그레이브스와 성공적으로 공연하는 등 몇 편의 오페라에 출연하여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

토스카나의 하늘을 기억하며
자신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는 보첼리. 그의 인생 과정은 힘든 삶을 겪고 있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고 있다. 최근에 녹음한 음반에서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어렴풋이 보았던 ‘토스카나의 하늘’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글쓴이 박종호는 신경정신과 전문의이며, 음악전문 컬럼니스트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