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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사람 |
겨울 들녘에서 부르는 노래 |
이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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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퇴근 무렵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나를 무척이나 당혹케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아 ! 어떡하면 좋나? 큰아버지가 암이라네….”
“큰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끝내 명을 재촉했다네. 그렇게 가자 해도 병원 한 번 안 가더니….”
큰어머님은 끝내 말을 맺지 못하고 울먹였습니다.
몇 해 전부터 속이 아프다시며 가루약을 통째로 사다 놓고 드시던 큰아버지께서 위암 선고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퍼져 장례 준비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날 나는 필름이 끊어질 만큼 폭음을 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소주 한 병을 더 비웠습니다.
그 분 말마따나 한평생 ‘땅 파먹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을 모르고 살아온 큰아버님입니다. 열일곱 살 무렵 전쟁통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 생활력 없는 할머니 밑에서 장남의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다섯 식구 끼니라도 잇자면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하는 도리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힘으로는 동네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여서 혼자서 두세 사람 몫을 거뜬히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십 년을 억척스럽게 일해 동생 셋에 자식 다섯을 길러냈고, 소원이던 땅도 적잖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년이 칠순. 이제 숨돌릴 만하니까 하늘이 먼저 알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전근이 잦았던 나는 중학교 2년을 큰아버지 아래서 보냈습니다. 가을걷이 때는 부지깽이까지 나와 설쳐야 할 정도로 손이 모자라는 터라, 언젠가 콩타작 하는 밭으로 일을 거들러 나갔을 때 큰아버지는 역정을 내시며 나를 무안케 만들었습니다.
“니가 공부하러 우리 집에 와 있는 게지, 콩타작 하러 왔느냐? 그러려면 당장 네 집으로 가거라.”
그 이후로 큰아버님은 벼베기를 하든 모심기를 하든 나를 주위에 얼씬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늦게 둔 당신 아들은 이일 저일을 문제삼아 사흘을 멀다 않고 쥐잡듯 몰아부쳤지만 나에게는 일언반구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신 분입니다.
큰집에 맡겨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큰아버님께서 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셨습니다.
“이제 우리집에 소가 세 마리다. 하나는 용우 거, 한 마리는 정우 거, 오늘 사온 놈은 니 거다. 고등학교 갈 때 팔아가지고 가거라.”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큰집 누나들한테 한동안 미움을 산 적도 있습니다.
교내 웅변대회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한참 열변을 토하는 중에 고개를 돌렸을 때 운동장 뒷편 철봉대 뒤에 몸을 반쯤 숨긴 채 씨익 웃고 있는 큰아버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들에 나가시는 길이었던지 등에 농약 분무기를 맨 채로, 시커먼 얼굴에는 이만 하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원고에 나와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필요 이상으로 소리를 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타온 상장을 들여다보시며 큰아버님은 한참을 웃으시더니 나를 번쩍 들어다 ‘내 소’ 위에다 앉혀 주셨습니다. “우리 조카가 최고다!!”
육십 줄에 들어서면서 마가 끼었는지 경운기 사고를 두 번이나 당하시더니 한번은 쌓아 놓은 장작 위에서 굴러 떨어져 등이 곱추처럼 구부러지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논밭에서 살아온 농부의 훈장처럼 손등은 쇠죽솥의 솥두껑마냥 두꺼워졌으며, 손톱이 죄 뭉개져 엄지손가락만 빼고는 아예 형체가 없다시피 합니다.
취직해서 첫 월급을 탔을 때 보약 한 재를 지어다 드린 기억이 납니다. 그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큰아버님의 눈가에 봇물처럼 넘쳐 나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순간 황소보다도 커 보였던 큰아버님의 큰 몸집이 갑자기 오그라들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당신도 이제 황혼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지 며칠이 지나 주말에 큰집으로 갔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도무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큰일이 났다고 바쁜데 예까지 왔어. 갈 때 되면 가는 게 사람사는 이치거늘….”
큰아버님은 사과 창고를 맨 뒤쪽까지 뒤져 제일 실한 놈으로 한 상자를 꺼내 주셨습니다.
어스름녘 당신의 키보다도 훨씬 높게 쌓은 콩단을 지게에 지고 가파른 밭머리를 내려오던 큰아버지. 지겟발을 고여놓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막걸리 한 잔을 달게 드시던 큰아버지. 이제 그분의 어깨위에 빨간 노을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병원의 말대로라면 이 겨울이 가기 전에 큰아버님의 부음이 날아올 겁니다. 차가운 땅에 그 분을 묻기 전에 드릴 마지막 말이 지금까지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매년 당신이 손꼽아 기다리던 농부의 계절이 올핸 너무 깊은 상처만 남겨놓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글쓴이 이경우는 현대중공업 문화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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