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세상보기 망각 - 기억에서 퇴장 - 빨간 불에 붙이는 빨간 약 염복남


망각 - 기억에서 퇴장 - 빨간 불에 붙이는 빨간 약
염복남이 토(吐)하다

이글은 대구지하철 참사가 있은지 한 달 뒤에 쓴것이다

전동차 2대가 화재에 전소하여 약 400명의 사자를 토해냈다.
우리 사회의 반응은 무엇인가? 분노와 비난, 이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이 문제에 대하여 실제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감정보다 과장되게 표출하진 않았는지 의문스럽다. 대중의 분노는 늘 그러하듯이 솔직하지만 피상적이다. 통찰력을 잃은 분노는 축적되어 본질을 타격하기보다 감각세계에서 희생양을 구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가 그리고 내가 분노하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그 책임을 돌릴 것인가? 화재의 1차적인 원인 제공자인 방화범, 오판으로 피해를 더욱 커지게 했다는 기관사들, 개도국들의 전동차 가격에 비교할 때 반값으로 더 싸게 제작하여 판매하고 구매한 지하철 공사 관계자들 그리고 사회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한 사회병리 등 몇 개 항목들, 마침내 더 나아가 지구의 자연법칙과 전우주의 섭리를 비난할 것인가?
너무 고급스럽고 지적인 분석과 대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축구 경기로 비유하자면 너무 많은 심판들이 그보다 더욱 많은 선수들에게 레드 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관중들의 눈살을 찌푸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에서 후진국형 사건이 일어난 뒤, 선진국민을 지향하는 이들이 후진국형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 사망자의 유가족들은 당국의 허술하고 안일한 대처에 실망하고 분노한다. 유가족들에게 전국민의 성금이 모이자, 처자식을 팔아 부자 되었다며 속물적인 부러움을 거리낌없이 내비치는 주변의 시선이 그들을 상처 입힌다. 국민성금을 노리는 사건 브로커들이 그들의 눈물을 마르게 한다. 보상금을 노려 지하철 화재로 실종됐다며 허위신고를 하는 이들도 있다.

경찰은 방화범인 김씨를 체포한 뒤, 김씨가 정신질환 환자 혹은 정신지체 장애인이라고 발표하였다. 언론을 통하여 이것이 알려지자, 그렇지 않아도 장애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사회에 장애인 혐오증상이 생겼다.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네티즌들은 장애인들을 격리 보호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들을 내놓았다. 최소한의 인권도 존중치 않는 것이다. 또 한 언론은 정신질환자들을 마치 예비 범죄자들처럼 간주하기도 하였다. 통계로 볼 때, 장애인의 범죄율이 정상인의 범죄율에 비할 때 극히 미미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장애인은 사회의 약자이며 신체적으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더군다나 김씨는 뇌졸중 즉, 중풍에 의한 후유 장애 때문에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따라서 그는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지체장애자인 셈이다. 어째서 장애인이 사고를 내면 이목을 끄는 보도거리가 되는가? 장애로 인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단지 같은 질병을 가졌다는 이유로 공범처럼 보여졌다. 장애의 범위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발표한 경찰 측도 그러하거니와, 이를 그대로 믿고 보도해 버린 언론사들은 이 나라의 장애인들에게 더없이 큰 상처를 줘버렸다.

우리는 방관만 했다. 게다가 이젠 시간이 흘렀다고 자연스럽게 잊으려고 한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더 아파해야 한다. 씨랜드 화재 중에 어린 아이들이, 인천호프집 화재 중에 청소년들이 화마에 휩쓸렸을 때 우리는 그렇게 어린 영혼들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여전히 별다르게 나아졌다고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사회의 상처는 심각하게 곪아 버렸다. 그 때보다 더 처참한 일이 일어난 것이 그 증거다.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그와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다.
우리는 사건으로 인한 상처들이 치유되고 근본적인 예방책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아파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남겨진 자들의 몫이고, 그래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