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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 사각 (四角) 의 사각 (死角) 外 |
남영숙 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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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四角)의 사각(死角) -남영숙이 지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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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못참는 너. 일어나자마자 Power On...//.../...집중도 않는 브라운관의 명멸에 너는 안심한다.
100도가 못되어 끓은 전기주전자의 물을 네모난 플라스틱에 담아 .....//....../././..네모난 스프를 붓고 네모난 양념블럭을 불려.....///....../////....너는 네모를 보며 네모난 밥을 먹는다.
세상에 말로 힘센 것들은 네모난 것 같아............/........네모난 신문, 네모난 TV, 네모난 WWW.
........//././.똑같은 소릴 똑같은 앵무새들이 재잘대...////.........2:8 가르마에 짐짓 객관적인 태도. 엄숙한 표정......../..........한껏 부푼 헤어살롱의 머리에 고급정장. 노래하는 예쁜 마네킹.,,,,,,,,,,,,동경(憧憬)의 은막 뒤에선 자판 연주가 들리고 가위질 댄스가 흥겹지..................//..“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여 줄 수 있는 것만 보여줄 테야” ,.....,..,.,..,/.//,/,아 들뜬 그 목소리......,./.,/..//.///...,개소리 열전(列傳).....///.........정보란 이름의 독한 유혹에 취해 네 욕구는 끝을 모르고..,/..,/./.,/,.네 시선은 네모에 붙박혀 있어../..,,../,././네 목소리는 텍스트를 읽는 네 속에서 웅웅 울릴 뿐./.,.,/.,.//.내 목소리는 텍스트를 읽는 네 밖에서 맴맴 맴돌 뿐///.,,..,/..나를 만져봐. 나는 눈과 코와 귀와 입을 가졌지. /.,/,/.,/....,/....,.나는 너 때문에 웃고 나는 너 때문에 슬퍼............././///./.........그래도 좋아해. 그래서 사랑해..,.,/./.,/./.,//.,.,,.,.,./,.,/,.,/..,///././/.//....,.,,,,///////..,/.,,....,.,.,.,.,.,.,.//.,./,.,/.
열외(列外)의 미학 세모 - 조은수가 하자센터를 읽다
주관식 시험지는 언제나 지저분했다. 동그라미, 세모, 짝대기… 짝대기였다가 세모, 동그라미였다가 세모….
주관식이라 하여 주관을 썼더니, 반점짜리란다.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하면 온전히 옳고, 내 나름의 의견은 세모. 세모… 선생님들의 자존심 때문에 내 목소리는 반쪽짜리가 된다.
세모의 길 여기, 세모를 자랑스러워하는 친구들이 있다. 세모의 길, 정도라 여겨지는 길이 아니더라도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라고 물을 수 있는, 진짜 ‘나’를 찾아 나서는 이들이 있다. 하자센터(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뭘하지? 라는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한 사람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하자센터 하자센터에는 수업이 없다. 선생님도 없고, 시험도 없다. 프로젝트가 있고, 판돌이가 있고, 쇼가 있을 뿐이다.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인독재체제의 교실이 아니라, 자유로운 공간에서 판돌이와 함께 같이 만들어가는 프로젝트가 배움이고, 삶이다. 무엇을 쓰느냐에 따른 세모가 없는 시험, 최선을 다했다면 동그라미를 받을 수 있는 시험이 바로 ‘쇼하자’이다.
‘쇼하자’ 무엇을 위한 시험이었던가? 희끄무리한 갱지 속 시험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에 대한 척도도 아니요, 더 나아감을 위한 시험도 아니었다. 그 시험은 내가 얼마나 ‘선생님’께 순종하였는지에 대한 평가였고, 한가지 방식으로만 평가된 나의 줄 세워짐이었다. 또한 공부를 시키기 위한 시험이었다. 쇼하자는 프로젝트를 시키기 위한 ‘하자’가 아니라, 프로젝트의 또 다른 모습의 일부이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나’를 만들게 하였는지에 대한 발표이며, 소통 과정이고, 공동체적 평가방법이다. 쇼하자에는 세모가 없다. 오직 박수갈채와 성장을 위한 비판, 피드백이 있을 뿐이다.
하자센터의 기본 모토는 ‘스스로 업그레이드 하자’이다. 물론 어떤 특정한 기술을 배우고 전문인력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그것을 원한다면 오히려 전문학원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자기 기획력을 높임으로써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스스로의 의견을 개진·추진해나가는 방법을 몸에 익히기 위함이다. <쇼하자 식의 자기 정리와 발표작업은 정보를 공유하는 훈련이자 언어를 조율하는 방법이고 빨리 제자리를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아갈 수 있는, 스스로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준거점이 됩니다. 자신이 채 정리가 안 되었다 싶어도 일단 한 시점에 멈추어 서서 성찰적으로 자기를 정리하고 또 일을 그려보는 훈련은 새 팀을 짤 때, 또한 앞으로의 팀워크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구요.> 조한혜정 <하자총서> 2권 212쪽
쇼하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영상디자인 작업장은 영상물의 시사회와 토론회를 하고, 대중음악 작업장의 경우 공연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소통을 시도한다. 작업장학교 글쓰기의 경우 직접 완성한 대본을 통해, 또 다른 프로젝트는 전시를 하기도 한다. 미술은 미술실력으로, 음악은 음악실력으로, 국어는 국어실력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개별화된 평가방법은 줄의 몇번째에 있는 ‘나’가 아니라 독립된 ‘나’로서 다른 사람과의 연합·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웃는눈물 - 파랑 ( 염복남이 보다 )
메테를링크는 파랑새를 찾아 헤매던 치르치르와 미치르를 통해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루한 현실 속에 우리는 환상을 소비함으로써 행복을 대리만족한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가 롱런하고 마임 <스노우 쇼>와 인형극 <별지기>가 차례를 기다리는 ‘신 우화주의(Neo Fabulism)’의 세상. 2003년의 대·한·민·국.
한전아츠풀센터가 연일 터질 듯한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동요 가사의 한 소절처럼 달나라까지 울려퍼질 기세다. 러시아 마임극단 ‘리체데이’가 폭소의 근원이다.
하늘과 달로 배경을 처리한 무대는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이다. 하늘은 그렇다 치고, 초승달마저도 파란색으로 처리한 것이 인상적이다. 객석엔 아이들이 다수이긴 하나, 적잖은 수의 어른 머리가 뒤에 앉은 어린이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자, 9개의 에피소드가 저마다 다른 색깔의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도 세계적 수준의 배우들은 이를 마치 연출된 것인 마냥, 공연의 한 부분으로 흡수해버림으로써 어른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관객이 무대 위로 초대되기도 하고 배우들이 관객석을 침입해 귀여운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무대 위로 올라간 소녀와 관객의 입장에서 배우와 어울린 소년 모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본래 말이 배제된 공연이라 해도, 말없는 교감을 통해 함께 하는 연출을 해나가는 것이 신기하다. 배우들의 손이 가리키는 허공에서 물이 쏟아지고 하트 모양의 종이들이 쏟아진다. 그것이 무대 위에서 일어난다 해도 흥미로운 일인데, 터무니없이 관객들의 머리 위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폭소 뒤엔 무언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남는다. 서글픔인가?
“희극적인 상황이 서정적인 스토리와 어우러지고, 고독이라는 예리한 감정에 즐거운 웃음이 어우러진다.” <마임뉴스 Mime News>
“한참 웃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슬프기도 하다. … 거기엔 연민이 배어 있다.” <한국일보>
광대가 머리 위에 모자를 쓰려고 계속 시도한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가 무의미함을 깨닫고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등뒤로 막대기가 끼워진 주인공은 거기에 팔이 묶여 있어 팔을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아랑곳없이 물을 따르고 마시기 위해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고, 물잔 앞에 무릎 꿇기까지 한다. 자신을 끼워주지 않는 친구들 틈 사이로 주인공이 머리를 밀어보고 다리를 넣어보기도 한다.
배우들의 동작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지만 보노라면 가슴 한편이 저려오기도 한다. 마치 우리네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광대마임을 보려는 것이 아닐까? ‘리체데이’는 말 많은 세상에 말 없이 웃음으로 쉼표를 찍고 있다. 이를 통해 올해는 웃음바이러스가 사람들 마음에 창궐했으면 하고 소망해본다.
진실한 거짓말 - 하양 ( 남은옥이 생각하다 )
세상 만사가 급(級)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에도 급이 있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최상급으로 해야 남에게 인정받는 세상이다. 턱도 없는 말로 사람 등쳐먹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쳐죽일 놈’이라며 손가락질 받지만, 거짓말 중에서 우리가 최상급으로 쳐주는, 순수한 의도로 하는 하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세상 살 줄 아는 사람’이라는 소릴 듣는다.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색은 빛 그 자체이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은 빛이나 색채의 파장과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의 진동이 서로 호응하기 때문에 “빛은 생명에, 색채는 사람의 마음과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논리에서 보면, 하얀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흰색과 진동이 맞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흰색에서 순결함을 연상해서인지 하얀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 거부반응이 없다.
따지고 보면 하얀 거짓말이든 새빨간 거짓말이든 어디까지나 상황을 모면해 볼 양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며내서 하는 말, 고육지책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부도덕한 덕목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는 세계가 유한하고 상대적인 세상이다 보니, 절대적으로 거짓말을 못하게는 하지 못하고, 좋은 것이 좋다는 말들로, 기왕 거짓말을 할 바에는 남도 나도 좋은 하얀 거짓말을 하자면서 거짓말을 어설프게 합리화시켜 왔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쟁이들을 눈감아 주었던가. 또 얼마나 많은 거짓말쟁이들이 그럴듯한 말로 자신은 하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를 설득시켜 놓고 큰소리 떵떵 치면서 살고 있는가. 그러나 아직까지도 아리송한 것은 어디까지가 하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가 새빨간 거짓말인지….
우리는 유치원에서 거짓말은 어떤 이유이든 간에 정당화 될 수 없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이 정답이 없는 시험이다. 때로는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세상을 활보하는 요즘 시대에 나의 하얀 거짓말은 과연 누굴 위한 ‘하얀 거짓말’인지…?! 이제는 하얀 거짓말 뒤에 숨겨 왔었던 투명한 진실이 하얀 세상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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