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행복을 준다구요? 정진홍


행복은 삶 속에서 스스로 크는 , 가장 깊은 진실입니다.

행복을 주는 프로그램?
어떤 방송사에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 집을 지어 주고 이를 방영하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집안의 딱한 사정이 소개되고, 카메라는 거의 엉망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의 구석구석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집은 꿈도 꾸지 못했을 모습으로 바뀌고, 놀라고 감격하고 어쩔 줄 모르는 황홀한 그 집 주인들의 모습을 환상적인 빛깔을 배경으로 드러내 보여 주었습니다. 집을 수선해 준 사람들의 노고, 동네 사람들의 협조, 그 집 식구들의 아픈 삶들이 뒤섞여 마침내 빚어 내는 결말은 그 당사자들이 아니더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한 번도 이 프로를 마른 눈으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행복은 어느 날 그렇게 기적처럼 찾아오는 것인 듯했습니다. 예상하지 않았던,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 이제까지의 그늘이 가시고 아픔도 사라진 채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살게 되는 것, 어쩌면 행복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실증하기 위하여 단단히 마음먹고 만든 프로인 듯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이 프로를 보다 그만 화가 났습니다. 어떤 집을 소개해 주고 있었는데, 부엌인지 목욕탕인지 살림방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방의 한 구석에는 얼키설키 전선들이 엉킨 듯 늘어져 있었고, 파이프는 물이 새는지 꽤 폭이 넓은 고무줄로 칭칭 감겨 있었습니다. 선반인지 벽인지 바닥인지도 모를 구분되지 않는 공간에는 이렇게 저렇게 살림이 쌓여 있었는데 그 모습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늘어지는 천장을 받치려고 애써 발라 놓은 테이프들이 힘을 잃고 늘어져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전선도 잡아 빼고, 파이프를 감았던 고무줄도 쭉쭉 잡아당기고, 천장도 북 뜯어내고, 어지럽게 쌓인 살림들을 툭툭 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구, 이렇게 하고도 살아 왔다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저리게 아픈 행복의 자취
물론 저는 진행자가 얼마나 그 집주인이 고생을 했는지 강조하면서 이제는 아주 다른 멋진 집을 선사할 거니까 마음놓고 부정적인 측면을 과장했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해할 수 없다’고 묘사한 그 삶이 마냥 그렇게 뜯어내고 지우고 없애야 할 만큼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집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것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온갖 지혜를 다해 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흔적이었고, 그것을 온 식구들이 한 마음으로 견디어 온 그 따뜻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된 현실이지만 그것은 그대로 그 가족의 ‘저리게 아픈 행복’이 서린 자취들이었습니다.

새 집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것이 뜻하지 않은 선물로 주어지는데 감격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참으로 환상적인 집이 생기는데 황홀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제까지의 삶이 그렇게 ‘모욕’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네 형편에서 그 나름대로 애써 최선을 다해온 삶이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치워질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주인공들이 그 뒤 그 새집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틀림없이 행복하게 지낼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새집이 가져다 준 행복이라기보다 이제까지 고생하며 살아오는 과정에서 아무도 모르게 쌓여 온 따뜻함과 애씀이 새집을 마련하는 계기에서 크게 꽃핀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색깔이고 결이지요
행복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것은 삶의 마디마디에서, 삶의 구석구석에서, 자기도 모르는 순간 순간에, 고이 포개지고 쌓이면서 어느덧 삶이 고맙게 느껴지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행복은 저기 어느 자리에 있는 물건처럼 그렇게 내 삶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어 그것을 내 손안에 넣으면 이루어지는 그런 것은 아닌 듯합니다. 행복은 삶을 진실하게 뜸을 들이며 살아가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내 삶을 채색하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득 어느 순간에 남들이 내 삶을 보며 “너는 참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라고 말할 때 나도 비로소 그렇게 느껴지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매순간,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때란 없다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조건이 그 나름대로 고맙고 따뜻하고 정겹지 않으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란 끝내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파이프가 터지고, 물이 새고, 방이 썩어 들어가고, 수리할 돈은 없는데, 그런데 누군가가 머리를 짜내 폭넓은 고무줄을 구해 칭칭 동여매고, 온 식구들이 이제는 물이 새지 않아 참 좋다고 즐거워 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새집이 아무리 환상적으로 마련되었다 할지라도 그 집을 누리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엉망인 집안을 돌아보며 ‘이해할 수 없다’고 탄식한다는 것은 삶을 몰라도 참 많이 모르는 언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귀한 프로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행복이란 살아온 삶의 색깔이고 결이지, 따로 지녀야 할 물건 같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내 삶 속에서 스스로 크는 내 삶의 가장 깊은 진실입니다.

글쓴이 정진홍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