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돗둘 아버지와 신발 정호승

누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아버지가 사 주시던 신발 생각이 난다. 요즘 아이들이야 소위 메이커 있는 품질 좋은 운동화를 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검정 고무신이나 질 낮은 운동화가 고작이었다. 어쩌다가 흰 고무신이나 때깔 좋은 운동화라도 하나 얻어 신게 되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신발을 사도 언제나 내 발보다 한두 치수 큰 신발을 사 주셨다. 처음엔 나는 아이들은 키가 쑥쑥 빨리 자라니까 일부러 거기에 맞추어 큰 신발을 사 주시는 줄 알았다. 또 가난한 집안 형편에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신발을 신게 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무슨 신발을 신든 그리 오래 신지 못했다. 내 발이 채 크기도 전에 언제나 신발이 먼저 닳아 버렸다. 그것은 신발의 품질이 나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껴 신는다 하더라도 신발이 먼저 닳아버려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으레 내 발보다 한두 치수 큰 신발을 사 주셨다.

나는 언제나 그게 불만이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신발이 벗겨질까봐 조심스럽게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번은 학교 운동회 때 큰 신발을 신고 달리기를 하다가 꼴찌를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자연히 걸음걸이가 느려졌으며,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뛰어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 뒤 어른이 되어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에게 신발을 사 드리게 되었다. 아버지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백화점에 있는 어느 구두가게에 들른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저한테 그러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아버님이 한 치수 더 큰 구두를 사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빙긋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발보다 큰 신발을 사준 것은 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그건 항상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뜻에서였다.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정신 없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세상을 사는 것보다는 조금 헐거운 신발을 신고 좀 여유 있게 걸어다니며 세상을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글쓴이 정호승·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