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초상집에서 이종철


아파트에서 한시간 거리인 이곳에 취미삼아 주말 농장을 하고 있는데, 일손이 부족한 시골이라 지난해 그 노인과 함께 여러 번 농사를 지었다. 고구마와 콩을 심고 재워둔 콩 타작을 할 때까지도 그분은 정정하셨다. 거동이 조금 부자연스러웠지만 약주도 잘하시고 대체로 건강한 편이셨다. 마을에서는 그분만이 술을 마셨기 때문에 노인이 나의 유일한 술 친구였다.

평소에는 말이 없으시다가 술이 들어가면 지나온 세상을 논하고 험한 세파를 한탄하시곤 했는데…. ‘모든 것은 한때일 뿐, 한결같이 지속되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다. 흐린 날이 있으니 갠 날이 있고, 궂은 세월이 있는 그 대가로 좋은 세월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시던 분이 가슴이 아프다며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달포 전 병원에서 3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오자 대전에 사는 외아들이 마지막 여생을 자식과 함께하자고 노인을 모셔갔다.

상가에 닿으니 새벽 5시에 대전 아들네 집을 출발한 운구차가 벌써 도착해 있다. 발인제를 올리자 상여는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마당을 오갔다.

“너하 너하 너하 넘차 너하오….” 상여꾼이 소리를 하자 상주들이 애달프게 곡을 한다. 마당 한편 구석에는 미망인이 되신 아주머니가 우두커니 서 계셨다. 위로의 말씀이라도 드리려고 다가섰는데, 그만 말문이 탁 막혀 그렁그렁 눈물만 보이고 말았다. 나의 손을 마주 잡으신 아주머니 또한 아무런 말씀도 못 하신다.

“더 사셔야 할 분인데….” 마음속에서 맴돌기만 하는 그 말 한 마디가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70대 어르신들의 죽음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어린 시절 모진 가난을 겪었고, 청년기에는 전쟁 소용돌이로 숨 가쁜 삶을 영위했던 세대들이다. 이제 좋은 세상 만나서 좀 편하게 살만 해지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유명을 달리하시는 것이다.

고구마를 심으면 맛이 그리도 좋다던 양지바른 밭에 노인의 유택이 마련되었다.
또 다시 농사철이 다가오는데, 금년에는 누가 나의 술잔을 챙겨 줄는지.
어르신,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