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오리의 눈물 이선기

우리 집에 오리가 한 마리 생겼고 나는 이내 그와 친구가 되었다. 내가 ‘쭈쭈’하고 부르면 그는 어김없이 쫓아 나왔는데, 자주 그를 끌어안고 돌아다녔다. 지렁이를 무척 좋아해서 지렁이만 보았다 하면 먹어 치웠는데 나는 그것이 재미있어 시간이 나면 자주 오리와 ‘지렁이 사냥’을 나갔다. 내가 괭이를 둘러메고 나서는 것을 보면 쪼르르 달려와 앞장을 섰다. 수채나 거름 무더기를 괭이로 찍어 흙을 일구기 바쁘게 기어 나오는 지렁이를 오리가 달려들어 먹는데 거의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한 번은 지렁이를 먹으려고 쭉 내어 민 오리 주둥이를 괭이로 내려치고 말았다. 기겁을 하고 꽥꽥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는 오리를 겨우 붙들어 살펴보니 넙적한 주둥이 앞부분이 괭이 날에 맞아 갈라지고 피도 약간씩 흐르는데 가정에 상비약이 없어서 그냥 두고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는 오리와 우정을 키워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별이 찾아왔다. 아침상을 물리신 아버지께서 “선기야, 저 오리를 아랫마을의 부면장 댁에 갖다 주고 오너라. 그 집에서 약으로 쓴단다.” 나는 너무 놀랐으나 어쩌겠는가, 어른의 말씀인데….

오리를 안고 가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리와 자주 놀던 참나무 밑에 이르자 오리를 내려놓고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고 오리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내가 태어나서 아버지를 원망한 것이 그날이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다.

부면장 집에 다다르니 아직 아침 식사 중이었다. 끈을 하나 주면서 오리 발을 묶어 장독대 옆에 매어 두고 가란다. 나는 시키는 대로 오리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날개를 치고 꽥꽥거리며 나에게 오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쩌랴. 끈으로 매어진 다리 때문에 몸부림칠수록 엎어져 뒹굴었다.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어 돌아서 몇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돌아보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고 말았다.

오리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쏟아졌는지 목을 타고 내린 눈물이 깃털을 적셨고 그러고도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나와 마주친 오리의 눈을 보면서 어른이 아니어서 그를 구해 줄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져 내렸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내 친구의 모든 것들을 가슴에 새겼다. 어떤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도록….

이 경험은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로 나는 모든 짐승을 인간처럼 대하려 했고 그것이 일상에 여러 가지 마찰을 불러와 힘들 때도 많았지만 오리의 눈물을 생각하면 견딜만 했다. 그리고 고기 한 점이 귀하던 시절이었지만 집에서 기른 짐승은 거의 먹지 않았다. 그때 오리와 맺은 우정은 그 후로도 끊임없이 자라 내 감성을 풍요롭게 하고 모든 사물들의 숨겨진 가치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과연 어떤 친구가 있어 나를 이렇게 깨우쳐 줄 수 있을 것인가?

오리야! 너의 눈물은 헛되지 않아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너와의 우정을 생각할 때마다 나를 울게 하여 동심으로 이끄는구나. 다시 생각해봐도 너는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예쁜 오리였고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사귀었던 가장 좋은 친구였구나. 고마운 오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