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행복 수돗가에 얽힌 추억 이상미



유년시절 저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집 마당 중간에는 깊은 우물이 있었는데 어느 날 우물을 묻고 수도를 설치했습니다. 날마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려면 팔이 아프고, 한여름 밤에는 우물에서 혹시 귀신이 튀어 나올까봐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았던 터라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 시절, 겨울 준비 중 하나가 땅위로 솟은 수도관을 헌옷으로 감싸 꽁꽁 묶고, 다시 짚으로 한 번 더 동여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수도가 얼지 않아 물이 나왔습니다. 한낮에 수도꼭지만 돌리면 콸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이 신기해 물을 계속 틀고 구경하면 할머니는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할머니의 요강을 닦아 수돗가에 놓고, 다같이 안방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다 말대꾸야….” “그래. 어디 한 번 읍내 가서 놀음 한 번 더 해봐.”
옆집에 사는 아줌마와 아저씨의 다투는 소리가 담을 넘어 들려왔습니다. 두 분의 대화로 보아 아마도 전날 밤부터 아저씨가 놀음을 하다 새벽에 들어오신 것 같았습니다. 밥을 다 먹어 갈 무렵 두 분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부모님은 옆집에 가봐야겠다며 수저를 놓으셨고, 궁금해진 나도 마루에서 까치발로 옆집을 구경하려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주머니네와 우리 집 경계인 돌담위로 홱 날아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치 책에서 본 비행접시처럼 ‘슈우웅’하고 날아와 우리 집 수돗가에 심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동시에 할머니의 요강이 ‘쨍그랑’하고 깨졌습니다. 할머니는 ‘세상에’하는 표정으로 넋이 빠졌는데도 언니와 저는 얼마나 우습던지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웃음을 참았습니다.

동시에 왕왕 싸우시던 아줌마와 아저씨가 우리 집으로 뛰어 오셨습니다. 양은 대야에 요강 깨지는 소리를 듣고 놀란 황소 눈이 되어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집안에 하나씩 있는 요강이 꽤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집안의 어른이자 호랑이 할머니인 우리 할머니의 요강이기에 더 그랬던 것입니다. 방금 전 목소리를 높였던 아주머니 아저씨는 꼬리를 잔뜩 내리셨고, 우리 할머니는 노발대발하여 아침부터 소란을 피운다고 더 혼내셨습니다.

그날 이후 언니와 저는 대야에 세수를 할 때면 비행접시처럼 날아와 요강을 깬 생각이 나서 배꼽이 빠져라 웃었답니다. 어쩌면 그 아줌마와 아저씨도 사라져가는 요강을 볼 때면 할머니의 요강을 깬 것이 생각나 웃음 짓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아 수도가 있는 마당은 없지만 더 나이가 들면 꼭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유년시절처럼 작은 웃음과 행복이 깃든 수돗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가만히 앉아 유년시절 그리움을 그려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