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사람들 응급실에서 外 임경수 外


응급실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한 지 벌써 2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 주위에는 여러 부류의 불쌍한 환자가 많다. 응급실은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으므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덕분(?)에 나는 인생에 대하여 많은 고뇌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가장 불쌍하다고 느끼는 환자는, 죽고 싶어도 살아야 하는 환자와 살고 싶은데 갑자기 생을 마쳐야 하는 환자이다.
작년 가을, 72세의 노인이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위암 말기 환자로 매일 통증이 계속되었지만, 자식들의 경제적 부담이 걱정되어 참고 지내다가 결국 응급실로 오게 된 경우였다. 환자가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간호사에게 ‘여기서 제일 높은 양반과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여 환자와 만나게 되었다. 환자는 주위의 가족을 모두 물리치고,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나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눈가에는 금세 이슬이 맺혔다. 그리고는 귓속말로 ‘나도 살 만큼 살았고 자식도 살기 어려운데 병원비를 부담시키기 미안하다. 내가 죽을 병인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제발 고통없이 죽여 달라’고 하신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금년 1월에는 신원 미상의 30대 남자가 88올림픽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거의 사망한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각종 응급처치를 시행하였지만 결국 1시간만에 사망을 하였고, 환자가 사망하기 직전에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젊은 20대 부인이 두 살짜리 아기를 업고 달려 왔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누구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며 대부분의 가족들은 응급실에서 통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젊은 부인은 조용히 흐느끼면서, “아침에 출근하면서 저녁에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 달라고 하였는데 불쌍해서 어떡하나, 다음 달에 내집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외식도 자주 하자고 하였는데…”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였다. 내가 항시 운전에 조심하는 것은 너무도 많은 안타까운 죽음을 항시 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응급실 안의 보호자 대기실에서는 임종을 앞둔 혼수 환자(의식이 없는 환자)의 가족 사이에 높은 언성이 오가고 있다. 대화의 내용을 옆에서 들어 보니 환자를 모시던 작은아들과 미국에서 귀국한 형과의 말다툼이었다. 환자는 유산이 많았던 것 같은데, 환자가 의식을 잃기 전에 작은아들에게 한 유언에 대하여 큰아들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후에 큰아들이 내게 와서 ‘10분 만이라도 좋으니 한번만이라도 환자의 의식이 회복되게 해달라’고 한다.
돈이 없어서 빨리 죽고 싶은 환자, 이제 살 만한데 갑자기 죽는 환자, 자식간의 다툼을 접하는 돈 많은 임종 환자 등 내 주위에는 불쌍한 환자들이 너무 많다. 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작기 때문에 응급실에는 철학자 혹은 정신과 의사가 상주하였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불쌍한 환자 옆에 있는 불쌍한 의사의 하소연을 여러분들이 들어 주소서.

글쓴이 임경수는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이다.

보령아산병원을 다녀와서

의욕이 넘치고 생기발랄하게, 때로는 힘들지만 보람되고 행복한 직장 생활을 보령아산병원에서 약 13년간 해 왔다. 간호사로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환자와 그 가족들과 기쁨과 슬픔을 같이 했었다. 나에게 주어졌던 그 소중한 시간들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 나는 학생 수련원 보건실에 근무하고 있다. 수련 활동을 하다가 학생이나 선생님이 아프면 자주 찾아가는 보령아산병원은 지금도 낯설지가 않다. 힘들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진료부장님을 비롯하여 간호과, 방사선과, 원무과, 응급실, 그 외에 식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아산의 한 가족으로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있으면 부부 테니스 시합에 참석을 하여 호흡을 같이 하기도 한다. 병원을 그만두니 이제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병원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데, 보령아산병원의 발전된 모습, 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며칠 전 위경련이 있는 학생을 데리고 응급실을 방문했었다. 그날따라 비가 와서 그런지 교통사고 3중 추돌 환자에 약물중독 환자 2명, 호흡곤란 환자 등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환자가 많았지만 의사 4명, 간호사 3명, 간호조무원 아저씨 모두가 하나가 되어 진료와 처치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흡족했다. 덕분에 학생은 빠르게 진료를 받고 호전되어 일찍 돌아올 수 있었다.
보령에서의 건강의 버팀목이 되는 보령아산병원, 지역 주민에게도 골고루 복지 혜택이 돌아갈 수 있고, 불우한 사람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복지사업을 꾸준히 해주길 바란다.

글쓴이 정영미는 보령아산병원 방사선과 이동철 씨의 아내이다.

다시 생각하는 나이팅게일 정신

내가 병원에서 근무한 지 벌써 4년째이다. 가끔씩 난 내가 꿈꾸던 간호사가 지금의 내 모습인가 돌이켜 본다. 어릴 적부터 내가 가졌던 꿈은 하얀 유니폼에 캡을 쓴 아름다운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땐 막연하게나마 그게 좋아보였고 주위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걸로 생각했다. 언제나 차분하고 깨끗해 보였던 간호사 언니가 좋았기 때문일까?
얼마 전,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위암 말기 환자가 찾아왔다. 처음엔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해 치료에 비협조적이었고, 이유없이 우리에게 불만을 표시하였다. 하지만 우리들의 계속적인 관심과 사랑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치료에 협조하게 되었다. 그분의 마지막 단계에서 진통제를 놓아주러 갔을 때 나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이 고인 눈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나의 조그만 관심이 그분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걸 느꼈을 때 나의 직업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침착함과 냉정함, 신뢰감, 봉사, 희생 등 이런 것들을 배웠는데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을 위하여 얼마만큼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얼마 전 간호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조사 자료를 봤는데, 첫째가 깨끗하고 단정함이라 나왔다. 아마도 간호사들이 입은 가운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물론 기분 좋은 얘기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낀다. 친절과 봉사라는 이미지가 첫째로 나왔다면 간호사의 한 사람으로 더 기분 좋고 자부심도 가졌을 텐데.
이제 난 내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간호사로서의 자존심보다 자부심을 한층 더 앞세워 병들고 나약한 이들을 위하여 내가 배운 나이팅게일 정신을 바탕으로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간호사로 남겠다고. 그러면 어릴 적 내가 가졌던 상상 이상으로 좋은 모습이겠지.

글쓴이 정혜정은 영덕아산병원 간호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