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읽는 세상 그녀와 모차르트의 오래된 사랑 이야기 오미환



그를 처음 만난 게 10년쯤 전일 것이다. 부산에서 열리는 실내악축제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그날 그는 기자들에게 작은 선물을 했다. 70쪽쯤 되는 손바닥만한 책, 벨기에 신부 르 클레르가 쓴 ‘게으름의 찬양’이었다. 느림과 비움을 예찬하는 책 내용이 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듯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소문난 책벌레로, 주변에 책 선물을 즐기는 사람이다. 음악 외에 문학, 연극, 미술에도 관심이 많다.

피아니스트 신수정. 그는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표정도 말투도 부드럽고 다정하다.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호기심 많은 소녀 같은 모습을 지녔다. 손수 요리를 해서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먹이기를 좋아해 친구도 많다.

그중 한 명인 괴짜 화가 김점선이 올해 펴낸 책에서 어벙한 못난이 신수정 이야기를 썼다. 남보다 일찍 학교에 들어가서 잘 적응을 못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오줌 싸고 놀림 받고 늘 얻어맞고 울던 어린 아이였는데, 그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됐다고.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젊은 시절 미운 오리였나 보다. 유학 선물로 받은 콤팩트를 귀국할 때 갖고 올 만큼 화장을 안 하고, 안경은 테가 삭아서 부러질 때까지 썼다니 말 다했다.

그는 국내 음악계에서 전문 연주자 시대를 연 피아니스트다. 무대에 선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1956년 3월 30일, 지금은 없어진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해군 정훈음악대(서울시향의 전신)와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을 협연한 것이 그의 데뷔 무대다. 열네 살, 중학교 3학년 때다. 색동 치마저고리에 운동화 차림으로 연주했다. 드레스 입기가 부끄러워서 그랬단다. 난방이 안 돼 어찌나 추운지 치마 안에 교복 바지를 껴입어야 했다.

당시 그는 열 살이던 동생 신수희와 함께 ‘천재 자매의 상경’이라고 신문에 크게 소개됐다. 피아노도 보기 어렵고, 물감도 구하기 어렵던 그 시절에 청주에서 올라온 어린 자매가 화가와 피아니스트로 데뷔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자매는 그 뒤 서울대 음대와 미대에 수석입학, 수석졸업으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모차르트는 그에게 첫사랑이자 평생의 연인이다. “모차르트 음악은 더 없이 맑고 순수하면서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슬픔과 우수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가 운영하는 서울 서초동의 작은 연주장 이름도 모차르트 홀이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인 올해, 모차르트 홀은 매달 모차르트 음악회를 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50년 전 데뷔 무대를 함께 했던 서울시향과 정명훈의 지휘로 같은 곡을 협연,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첫사랑의 설렘을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재확인했다.

그의 이력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1회 이화음악콩쿠르 입상(1952년), 제 1회 동아음악콩쿠르 우승(1961년), 27세 최연소로 서울대 교수 임용…. 내내 서울대에서 가르치다가 잠시 경원대로 옮겼던 그는 다시 서울대로 와서 지난해 가을 학기부터 음대 학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음대 사상 최초의 여성 학장이다. 내년으로 임기 2년을 마치면 바로 정년이다.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데 대해 그는 자신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도 많은데, 없는 재주로 50년 동안 음악을 해왔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니 고마울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누리고 받은 것을 나누고 돌려주고 싶어서 7년째 서울 영등포의 요셉의원을 돕는 자선음악회를 하고 있다. 복잡한 시장 뒷길에 자리 잡은 이 작고 초라한 병원은 오갈 데 없는 행려병자를 받는 곳이다. “모든 것이 열악했던 예전에 비해 국내 음악계가 놀랍게 발전한 것도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저 피아노를 좀 더 잘 치고 싶다고 생각할 뿐, 어떤 야심도 품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은 겸손과 성실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다. 1970년대 중반 런던에서 잉그리드 버그만, 알렉 기네스 같은 영화배우들이 출연하는 연극을 본 추억이다. 은퇴하면 좋아하는 책 실컷 읽고,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고 한다. 늘 그랬듯이 음악이, 그리고 친구들이 함께 할 것이다.

* 신수정은 여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27세에 서울대 교수가 됐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다시 미국으로 가 피바디 음악원에서 2년간 유명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를 사사했다. 서울대 음대 학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