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참 평화 담백한 물빛 평화를 날마다 새롭게 이해인



참된 행복이 어디에 있는 것 같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나는 항상 “마음의 평화 안에 행복이 있는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오랜 수도생활이 나에게 준 선물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서늘한 평화입니다. 수도생활을 시작하던 초기에는 느끼지 못했던 내 마음의 평화를 ‘담백한 물빛 평화’라고 이름 지었더니 이 말을 들은 어떤 독자 분은 이 표현이 마음에 든다면서 자신의 전자우편 아이디를 당장 ‘물빛 평화’로 만들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한 번 밖엔 오지 않는 순간순간이 요즘은 얼마나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지요. 내 마음이 평화 안에 있을 적엔 사람을 만나 이야기 하다가,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산책을 하다가, 기도를 하다가 문득 눈물이 핑 돌곤 합니다.

이토록 복잡한 세상에서 마음을 단순하고 평화롭게 지니려면 욕심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맑은 눈빛과 삶에 대한 경탄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의 내면을 기도로 가꾸어야 합니다.

볼 것도 너무 많고, 들을 것도 너무 많고, 말 할 것도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고요함과 단순함을 그리워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한 기회를 못 만들고 내내 미루다가 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결국은 다 두고 갈 것들을 위하여 왜 그토록 전전긍긍하며 집착하는지! 이기심의 성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평화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걸림돌입니다.

요즘 나는 사소한 일에서도 이기심을 버리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매일 봉헌하는 미사 중에 ‘평화를 빕니다!’는 인사도 수없이 하고 세상의 평화를 소망하는 청원 기도도 수없이 바치지만 내 안에 평화가 없고 내가 만나는 이들과의 관계 안에서 평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일상생활에 충실할 때 맛보는 담백한 물빛의 평화,

욕심을 버린 자유가 주는 평화, 조건 없는 용서로 열매 맺는 평화를 그리워하며 내 남은 날들을 진정한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평화는 우리의 가장 강한 욕구지만 그것을 바란다고 해서 평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평화는 수동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조건을 요구하는 평화는 가짜 평화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하려고 애쓰면 평화가 찾아온다. 평화의 본질을 이상적인 세계, 혹은 침묵이나 고독에 기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고뇌가 뿌리 깊이 박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평화는 그러한 시련의 가치와 자극의 중요성을 간파할 때 찾아온다….」

그림 설명가로 유명한 웬디 수녀의 명상록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 시간, 수도원의 평화로운 종소리가 나를 다시 평화의 길로 재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