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아버지 방은경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과 건장한 체구의 대한성공회 남양주교회의 이정호 신부에게선 엄숙한 신부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정호 신부는 사무실에 놓여 있는 트로피를 가리키며 작년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축구시합에서 자신이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넣어 받은 MVP 컵이라고 자랑스레 얘기했다. 그리곤 신학대 재학 시절 이야기며,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활 이야기, 축구 시합 이야기, 그가 키우는 강아지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술술 풀어놓았다. 이렇게 소탈한 성격의 그였기에 외국인 노동자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며 고락을 함께 해왔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그는 ‘파더(father)’로 통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문제가 생기거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 제일 먼저 이정호 신부를 찾는다. 그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평화의 집을 짓고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읍 녹촌리. 이곳은 원래 음성 나환자들의 집단 정착촌이었다. 1960년 영국인 선교사 천갈로 신부는 일정한 거처없이 떠돌아 다니던 한센병 환자들에게 생활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마석에 대규모 가구단지가 형성되면서 많은 공장이 들어서게 되자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낯선 땅을 찾은 이들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1990년 주교님의 비서신부로서 마석에 오게 된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곁에서 보면서 비로소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고 싶다고 원주민들에게 말했습니다. 한센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살아왔던 원주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자신들과 같이 소외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낯선 이들을 위해 헌금을 내는 모습을 보며 정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97년 9월 교회 옆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위한 쉼터 ‘샬롬의 집’이 문을 열게 되었다.
마석의 성생가구공단에는 현재 1,5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외국인도, 내국인도 아니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들이기 때문이다. 샬롬의 집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ID카드를 발급하여 주고 있으며, 임금체불, 산업재해와 같은 노동상담과 한글, 영어, 컴퓨터 등의 교육과 나라별 공동체 지원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의료공제조합을 만들어 회원들에게는 진료비의 50%를 환불받을 수 있게끔 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가 나거나 분만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소 예방 차원의 건강 관리를 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때문에 연세대학교 의료봉사 동아리나 서울아산병원의 정기적인 무료 진료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이 신부는 전했다.

모두가 이웃이 되어
국문학을 공부하던 그이가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리라고는 그 자신도 생각지 않았다. 해병대 제대 후 야학에 뛰어들었고, 빈민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늘 전공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던 차에 학교도 성공회대로 옮겼다.
“딱히 신부가 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지요. 성직자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성직자라면 100%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죠. 기숙사 옆에 정신지체아들을 위한 베드로학교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을 보면서 신부가 되면 할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저는 사목 활동을 정신지체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내년이면 교회 설립 40주년이 되는 해로 남양주교회 앞 899평 땅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종합사회복지관을 건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이 공간을 어려운 사람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더불어 사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외국인 노동자, 음성나환자, 정신지체아 등도 모두가 우리의 이웃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다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을 그는 꿈꾼다. 그 행복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그가 보이는 것 같다.

글쓴이 방은경은 아산재단 편집실에 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