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가장 귀한 보배는 질그릇에 담겨진다 조은수


만남
강원도 춘천의 어느 작은 변두리, 먼지 날리는 좁고 굽은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질그릇자활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강원재활원이었다. 넓고 황량한 운동장에 차를 세웠을 때 우리를 먼저 반긴 사람은 ‘박순자 엄마의 어른이 되어버린 딸’이었다.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의 엄마 이름이 ‘박순자’라며 흙이 꼬질꼬질 낀 무뎌진 손으로 땅에 줄곧 그 이름을 써 댔던 한 친구. 도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궁금함과 동정심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애써 친한 척하고 있는데, 이덕연 씨가 마중나왔다. 장애 친구들이 달려오면 반갑게 안아주고 쓰다듬어줄 수도 있는, 그는 말 그대로 친구였다.

‘특별한’ 대학생들
강원재활원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무렵, 질그릇자활회 사람들이 장애 친구들을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할 때였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앞치마를 하고 양파를 까던 한 남학생이 자신의 식당 아주머니 차림에 장난스레 아쉬워한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대학생이다. 질그릇자활회는 대학생들의 모임이다. 보기에 다들 평범한 대학생들이다. 특별히 진지하다거나 거룩해 보이지 않았지만, 사랑을 실천하고 있고 스스로를 선한 일에 쓰임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데서 특별하다.
이들은 토요일마다 11시부터 7시까지 정기적으로 강원재활원을 찾아와 봉사를 한다. 밥도 짓고, 설거지도 하고, 각 반별로 모여서 장애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며 함께 먹는다. 또 같이 공작놀이도 하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나가서 공도 차고 논다. 그 후에는 청소도 하고 목욕하는 것을 돕기도 한다. 대학 생활에서 토요일은 각종 미팅에, 엠티에, 황금 같은 시간일텐데 그 황금 같은 시간을 진짜 황금같이 쓰는 그들을 만난 것은 춘천의 닭갈비와 막국수를 맛본 것보다 내게 더 귀한 경험이었다.

스스로 설 수 있게
모두가 매주 모이기 힘든 방학 때에는 1주일 동안 같이 먹고 자면서 봉사를 한다고 한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다름 아닌 대변 문제라고, 민망해하며 꺼내놓는 솔직한 대답에 봉사가 절대 낭만적이지도,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단순한 도움도 필요하지만, 자폐증을 앓고 있는 친구일 경우 자해하기도 하고,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들은 예기치 않게 발작을 일으키기 때문에 돌발 상황에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게 장애인 봉사에서 필요한 것 같아요.”
질그릇자활회에서는 화요일마다 정기교육을 통해 좀더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공부한다. 장애 친구들을 대할 때에 포용하는 사랑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엄한 사랑을 해야 하는 때가 있다. 같이 놀고 장난치기도 하지만 고집을 부릴 때면 형, 누나라도 혼을 내야 한다. 또한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 주기 위해 과도한 도움은 피해야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동정어린 사랑이 아니라 남에게 덜 의존하도록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이다.

가장 귀한 것을 담는 가장 투박한 그릇
“왜 폼나고 누구나 좋아하는 금그릇, 은그릇도 아닌 질그릇 자활회냐?”는 질문에 “금그릇, 은그릇은 장식용으로 쓰이고 폼이 날지는 몰라도 깨지기 쉽고, 투박한 질그릇이야말로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과 세상을 밝히는 빛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덕연 씨는 말한다. 또한 “장애 친구들과 함께함으로써 겸손을 배울 수 있고, 오히려 못나 보이는 질그릇이 금이나 은그릇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데 더 귀하게 쓰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는 것이다.
힘든 만큼 배우게 되는 ‘사랑’이 있어서 질그릇자활회에는 끊임없이 대학생들이 찾아온다. 찾아와서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삶 속의 의지이며 결단이라는 진리를 배운다. 돈을 주고 강의실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주고 현장에서 깨달아간다. 그들의 대학 생활이 아름답다. 그렇다. 가장 귀한 보배는 질그릇에 담겨진다.

글쓴이 조은수는 아산장학생으로, 현재 본지 학생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