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가장 작은 씨앗이 자라 새들이 깃들도록 염복남


겨자씨 싹틔우기
겨울은 춥다. 칼바람이 옷깃을 헤치고 들어와 몸을 휘감아 돌 때,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목을 움츠릴 때, 외투의 얼음조각 같은 지퍼에 턱이 닿아 소스라치게 놀랄 때, 새삼 겨울이 춥다는 것을 느낀다. 내친 김에 겨울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얼어붙게 할 기세다.
이런 겨울에 씨뿌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식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씨뿌리기일 듯싶지만 미약하나마 싹이 나고 있다. 기세 등등한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충남대의 학생들이 대전 효광원에서 ‘싹틔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겨자씨 공부방’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년범과 비행청소년들의 학업을 돕고 있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서 작은 것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나면 씨앗일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커져서 새들이 날아와 깃들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소원하며 씨뿌리기에 여념이 없는 ‘겨자씨 공부방’의 이야기는 가슴 훈훈한 온기를 전해 준다. 이들로 인해 이 겨울은 따뜻하다. 글 몇 자로 그들의 거룩한 일들을 적는다는 것은 오히려 흠을 내는 듯싶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옮겨보고자 한다. 귀기울여 보자.

선생님들의 이야기
▶▶▶ 언젠가 수업 중에 “밖에 있을 때 뭐 했었냐?”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앵벌이요”, “공사장에서 이만한 각목 어깨에 딱 매고 싸움질하고 다녔어요”, “소년원에 있었어요”, “동네 뒷산에서 대마 잎 따서 말아 피다 잡혀 들어왔어요”, “이모랑 싸우다가 이모가 절도 누명 씌워서 억울하게 들어왔습니다” 한다. 물론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되는 소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열다섯에서 열아홉 하는 그 아이들의 대답은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난 그때 알았다. 이 아이들은 분명 우리와 많이 다르고 이들이 우리처럼 살기란 몹시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고민은 더 깊어만 갔다.
-00학번 이현진 선생님

▶▶▶ 그곳에 있는 아이들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들을 범죄 청소년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정말 알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아이들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접 느껴보지 못한 선입견일 뿐입니다.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고 걱정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싫어서, 아이들이 무서워서 떠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97학번 문정원 선생님

▶▶▶ 내가 겨자씨 공부방을 시작한 것이 1998년 5월 중순이었다. 내가 겪은 첫 검정고시는 8월이었고, 수학과 체육을 맡아 열심히 가르쳤다. 아이들도 수학을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심정으로 제발 과락(40점 이하)은 하지 말거라, 기도를 했다. 그러나, 수학시험의 최고 득점자는 35점이었다.
-98학번 김성주 선생님

▶▶▶ 어느덧 내가 처음으로 가르치는 아이들이 검정고시를 보게 되었다. 긴장되고 초조한 마음으로 고사장 앞을 서성거렸다. 수학 시험이 끝난 뒤 쉬는 시간에 가서 잘 보았냐고 물어봤다. 아이들의 대답은 모두 ‘예스(yes)’다. 결과는 좋지 않을지라도 실망하지 않으련다. 덧붙여 말하기를 “선생님이 가르쳐 준 거 다 나왔어요.” 아이들의 한마디가 나의 기분을 좋게 한다. 너무 고맙다. 검정고시 결과가 나왔다. 전체 합격한 아이도 있었고 과목 합격한 아이도 있었다. 합격한 아이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이제 아이들에게도 자신감이 생겼나 보다. 부모님께 칭찬을 받았다며 마냥 좋아한다. 처음으로 받은 칭찬이란다. 가슴 한편이 뿌듯해온다. 이렇듯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고, 내 대학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이렇게 생활하면서 어느덧 아이들과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 01학번 천보라 선생님

▶▶▶ 매주 가는 곳이지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는 내내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서기 직전에는 긴장되고 떨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안녕하십니까!” 하는 아이들의 우렁찬 인사를 받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리까지 고래고래 질러가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대게 된다. 역시 효광원이란 곳은, 그리고 아이들은 나에게 많은 에너지를 주는 존재들인가 보다.
-00학번 강진 선생님

선생님들께 보내는 아이들의 편지
▶▶▶저 성재예요. 하도 말썽을 많이 피워서 선생님들이 저를 잊지 않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 이번에 굉장히 감사합니다. 선생님들의 그 교육이 없었더라면 과연 시험에 합격할 수가 있었을까요. 아마도 떨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합격하니 집의 부모님도 저를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정말 앞으로도 잘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야죠. 제가 5월 11일에 대전에 가는데 그때 뵐 수 있음 좋겠네요. 그때 뵙겠습니다. 그럼 다들 건강하시고요. 안녕히….
-이성재 학생

글쓴이 염복남은 아산장학생으로, 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