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한남대학교 수화 봉사 동아리 ' 돋을볕' 김경석


햇살처럼 따뜻한 대화를 꿈꾸며

돋을볕의 약속

그곳은 한남대학교 내에서 가장 허름한 건물이었다. 앞쪽에 있는 학생회관의 수려함과는 대조적인 가건물이었다. 가건물 안으로 들어선 순간 바닥도 너무 차고 공기도 차서 처음엔 약간 당황스러웠다. 찬 바닥 위에 전기 장판, 그리고 기타 책상이나 의자 같은 가구는 거의 없다시피 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학교측에서 학생회관으로 입주하라고 해도, 동아리의 식구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만한 크기의 방이 없기 때문에 가건물에 둥지를 틀고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가움은 돋을볕 식구들과의 따스한 대화를 통해서 차츰 사라져 갔다.

어제 동아리 활동 중 큰 행사에 속하는 ‘수화 발표제’를 끝내고 나서 그런지 회원들의 얼굴엔 약간은 지친 표정과 함께 편안한 미소가 듬뿍 담겨 있었다. 올해 ‘수화 발표제’ 주제는 ‘Promise’(약속)였다고 한다.

책자의 내용을 인용하면,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돋을볕! 살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약속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돋을볕이 1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고리 역할을 한 선배님들 그리고 여러분과 한 약속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이다. ‘수화 발표제’의 주제는 매년 바뀌며, 프로그램은 노래, 연극 등이 다양하게 준비되고, 학년마다 분위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맡는다고 한다.

봉사는 즐겁다

이외에도 돋을볕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아리 방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씌어 있던 것처럼, 매주 2회 자체적으로 수화 교육을 실시하고, 학교 오리엔테이션 등을 통해서 수화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매년 ‘수화와 차의 만남’이라는 일일 찻집을 열어서 수익금을 복지 시설에 후원하고 있다.

‘봉사’ 동아리인 만큼 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지체장애를 겪고 있는 ‘평강의 집’, 농아 아이들이 있는 ‘정화원’, 치매로 고생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머무는 ‘다비다의 집’, 정신지체 아이들이 있는 ‘온달의 집’에서 봉사 활동을 한다.

‘평강의 집’과 ‘정화원’에는 2주에 한 번꼴로 봉사 활동을 가는데, 오전에는 ‘평강의 집’에서 목욕이나 식사 봉사를 하고, 오후에는 ‘정화원’에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대화는 마음의 언어인 수화로 이루어진다. 1년 중 ‘평강의 집’ 식구들이 외출을 하는 ‘햇빛보기’ 행사에도 참여한다. ‘정화원’에서 교육 봉사를 한다지만, 오히려 아이들에게 수화를 배워온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일이다.

부회장을 맡고 있는 조근주 씨는, 봉사는 그리 대단한 일도, 큰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동아리 식구들이 많아져서 선후배간의 행사 연락이나 기타의 일들이 오히려 힘들다며 웃음 짓는다.

친구되기

교육 봉사를 나갔을 때의 일. 교육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분이 어떻게 왔냐고 묻더란다. “수화 봉사를 왔습니다”고 했더니, “수학이요?”라고 되물어왔고, 다시 한번 ‘수화’라고 말해 주어서야 비로소 어설픈 손짓과 함께 “아 이거요?” 알아듣더란다. 돋을볕 회원들은 그런 일반인들의 수화에 대한 인식 부족과 편견에 부딪칠 때마다 씁쓸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돋을볕 회원들은 ‘장애인’을 ‘정상인’과 구별되는 이분법적 논리로 보기보다는 단지 몸이 조금 불편한 우리의 친구로 보려는 ‘장애우’라는 말을 쓰자고 권고한다. 더욱이 수화는 듣지 못하는 장애우들의 언어인데, 이 언어를 마치 장난 삼아서 허공에 손짓을 해대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고.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

돋을볕 식구들과의 만남을 가진 후 생각해 본 것이 있다. 요즘 영어 조기교육 붐이 일고 있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영어보다는 수화를 가르치는 게 어떨까 하는 것이다.

수화라는 따뜻한 마음의 언어를 가르침으로써 장애우들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을 일찍부터 심어 준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따뜻해지지 않을까? 점자도 마찬가지다. 점자 또한 빛을 잃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빛을 느끼게 하는 소통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가 더욱 향기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작은 실천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김경석은 아산장학생으로, 현재 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