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오페라 '아, 고구려 고구려, 광개토 호태왕' 반칠환


너희는 알고 있느냐 알고 있느냐
그 옛날 천자이신 해모수의 후예
주몽 성왕께서 졸본에다 고구려 세울 때
국시를 다물로 삼았나니 다물을 국시로 삼았나니
동부여 옛 땅을 되찾으라는 말씀
들어 보라 저 애마의 울음소리
동부여 옛 땅을 되찾으라는 저 소리
이제 그 영광을 찾았으니 그는 광개토 호태왕
이것은 고구려의 꿈 이것은 고구려의 기상
그 이름 휘날리리라 그 명성 빛이 나리라
아- 고구려 우리의 나라
아- 고구려 우리의 기백
꿈을 이루었다
영원하라 영원하라 대를 물려 영원하라

- 오페라 <아, 고구려 고구려 - 광개토 호태왕> 중에서

어디서 들려오는 장쾌한 노랫소리인가? 한껏 주눅 들고, 어깨 처지고, 한숨 뿜어내던 사람들 천천히 가슴 펴게 하고, 두 주먹 부르쥐게 하고 오금을 일으켜 한 곳으로 모여들게 하는 저 노래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저 노래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그렇잖아도 신문만 펼쳐들면 경기 침체니, 실업이니, 빈부격차니 하여 백성들이 먹고 살 걱정만으로도 싱숭생숭하던 차에 난데 없이 중국서 불어온 ‘동북 공정’인가 뭔가 하는 것이 또 가슴을 울컥 하고 두드리던 차였다. 봄철마다 하늘 노랗게 보내주는 중금속 투성이 황사바람만으로도 숨쉬기 곤란한데 이건 또 무슨 과분한 선물인가?

이른바 ‘동북 공정(프로젝트)’이란 중국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라는 논리 아래 우리 민족의 고구려사를 뚝 떼어 자국의 지방정권사로 복속시키고, 한민족의 역사를 한강 이남의 신라와 백제로 잔뜩 졸아붙이려는 역사 왜곡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은 장차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영토 분쟁에 대비한 것으로 중국이 북한 땅 개입의 근거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란다. 밖으로는 서남, 서북, 동북 공정을 통하여 소수 민족의 분열과 영토를 단속하고, 안으로는 삼황오제의 전설조차도 역사적 사실로 만들고 있는 중국은 중화문명을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문명으로 부상시키고자 역사적 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다.

욕심 많은 부자가 사래 긴 제 논밭들이 홍수에 무너져 내릴 것을 대비해서 둑도 쌓을 겸 경지 정리를 한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슬그머니 남의 땅까지 헐어 제 땅과 붙여 놓는 꼴이다. 뿐인가. 그 땅에 묻혀 있는 남의 조상 무덤까지 가져다가 제 할애비라고 우기는 형국이니 까딱하면 땅 잃고 조상 잃고 천애 고아가 될 형편인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가슴을 울리어오는 저 우렁찬 노랫소리의 진원은 어디인가?

드높아라, 민족의 기상!
‘국내 창작 오페라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뉴서울 오페라단은 고구려 정신을 다룬 창작 오페라 <아, 고구려 고구려 - 광개토 호태왕>을 태동시키고 있다. 김영무 극본, 나인용 작곡, 강영걸 연출로 무대에 오를 이 작품은 서북으로 몽골 초원에서 서남으로 대릉하 유역까지 진출해 광활한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했던 광개토 호태왕을 주인공으로 진취적인 고구려의 역사를 무대 위에서 펼치게 된다.

뉴서울 오페라단의 홍지원 단장과 이 작품의 산파 역할을 맡은 세 주역, 작가와 작곡가와 연출가를 동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먼저 홍 단장에게 기획의도를 물었다. “그 동안 많은 창작 오페라가 있었지만 해외에 나가서 이렇다 하게 선보일 작품이 없었습니다. 큰 스케일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 줄 수 있는 오페라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이 떠올랐습니다. 나라 경제는 침체되고 사기가 저하된 이 때에 온 국민이 고구려의 기상을 듬뿍 받았으면 합니다. 또 중국의 역사 왜곡에 맞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한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작가 선생님께서 가장 역점을 두신 것은 어떤 것인가요?”
“오페라 대본은 사실 처음입니다. 그 동안 제가 보아온 영웅 오페라들은 인간을 제대로 못 그려 왔어요. 교과서 안의 인물밖에 못 그려 냅니다. 제대로 된 인물을 한번 그려 보자, 내가 음악은 모르지만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 극작법·희곡론 등 드라마의 구성을 가리키는 말; 편집자주)는 자신이 있어서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의 제1주제는 고구려의 기상이지만 제2주제는 사랑입니다. 딱딱하고 역사 교육적인 구성을 탈피하고자 광개토왕과 사랑을 나누는 비극적 여인을 넣었습니다.”
오페라의 줄거리는 고구려 16대 고국원왕이 전연의 모용에게 환도성을 앗기고 통곡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청년 담덕(광개토 호태왕의 본명)이 성장하여 황제에 즉위하고, 광활한 영토를 회복하여 고구려의 건국 정신이었던 ‘다물’을 이룩하는 한편, 광개토 호태왕을 사랑하는 다주라는 여인과, 다주를 짝사랑한 나머지 반역자가 된 지평이라는 한 남자 사이에 벌어지는 비운의 삼각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다물(多勿)’은 ‘되찾는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고구려의 비조 주몽은 고조선 이래 한민족이 다스렸던 영토를 다시 찾자는 뜻으로 ‘다물’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고구려의 건국 이념이기도 했다.


국내 창작 오페라의 세계화
대본의 구체적인 시각화를 맡은 연출가 강영걸 선생께 연출 방향을 여쭈었다.
“지금까지 오페라가 음악적인 요소 외에는 너무 제쳐 두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고증을 통해서 고구려의 화려한 의상을 복원해 내고, 고구려인들의 씩씩한 무예적 무용 등 볼거리를 풍부하게 마련해서 기존의 오페라와는 다른 총체적인 요소들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오페라 가수가 아리아 하나 부르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배역의 인물이 부르는 노래, 그런 걸 만들었으면 합니다.”
‘연극이나 할 걸 괜히 망조가 들지는 않았나 걱정’이라는 저이의 말은 엄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몇 안 되는 고구려사 전문가를 만나서 공부를 하는가 하면, 오페라 대본의 노래 가사를 송두리째 외우고 있다니 말이다.
오페라곡을 세 번째 쓴다는 나인용 선생은 ‘김영무 선생님의 작품이 스케일이 크고 심리묘사가 좋아서’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단다. ‘나름대로 센 고집의 소유자’지만 작가, 연출가와 호흡을 맞추느라, 그리고 가수와 청중을 생각하느라 적잖이 고집을 버리려 노력했다고.
“고구려의 씩씩한 기상과 그 속의 섬세한 사랑의 에피소드가 어떻게 하면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홍 단장에게 오페라 만들기의 어려움을 물어 보았다.
“오페라는 가장 돈이 많이 들고 화려하지만 극단의 재정이 너무 열악합니다. 어렵게 기업의 협찬을 얻고는 있지만 창작 오페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아쉽습니다.”
나인용 선생이 거들었다.
“이걸 만드는 분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죠. 오페라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모험입니다. 한 가지 제가 환기시키고 싶은 것은 ‘관객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무조건 외국사람들을 데려다가 무대에 세우면 관객이 모이고 박수를 치는데 대개 한물 간 사람들이 옵니다. 우리 젊은 가수들 실력이 훨씬 낫습니다. 지금 여기 캐스팅된 가수들을 보세요. 얼마나 화려한 경력들인지. 관객 여러분들이 관심을 갖고 우리 빛나는 후배들을 살려 주어야 합니다.”
그이는 오랫동안 우리 오페라의 열악한 제작 현실과 창작 대본의 활성화, 소극장 오페라 운동 등에 대해 열띤 말씀을 해 주었지만 아쉽게도 이 짧은 지면에 다 담을 수가 없다. 하지만 각자 중견이자 원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연출가, 작곡가 세 분 사이에 흐르는 교감과 열정만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영광을 찾았으니
<아, 고구려 고구려- 광개토 호태왕>은 2005년 3월 30일부터 4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른다. 서울공연과 지방순회공연에 이어 도쿄와 로스앤젤레스의 해외공연과 평양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우주호(광개토 호태왕), 김향란(다주) 외 400여 명이 출연한다.
고조선의 고토를 회복하려는 고구려의 건국정신 ‘다물’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꼭 지리적인 영토 회복뿐만 아니라 우리가 잃거나 잊어버려서는 안 될 민족의 긍지와 자존, 그 정신적인 영토를 착실히 지켜나가는 것부터가 ‘다물’의 실천일 것이다.

글쓴이 반칠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