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직설적으로 말하기와 돌려 말하기 진주희 外


창과 방패
오랫동안 병원에서 일해 온 친구가 있다. 하루는 고3인 이 친구의 아들이 병원에 놀러왔단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가 아들 보고 ‘너 의대 갈거지?’라고 물어 봤단다. 늘 솔직하고 직선적인 이 친구는 “성적이 안 돼서 못 가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나중에 아들이 ‘이과가 적성에 안 맞아 문과라고 대답해 주시면 안돼요?’라고 웃으며 말할 때, 친구는 아차! 했단다. 이 말을 들으며, 늘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나의 모습과 내 주변의 아들, 남편, 부모님, 친구들 모습이 떠올랐다. 대인관계에서 솔직함과 담백함을 좋아하는 나의 말과 행동이, 혹시 뾰족한 창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했거나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생각나는 대로 직설적으로 말함으로 상처를 주게 되지나 않았는지 생각하며 얼마나 더 나 자신을 다스려야 상대방을 높여주고 이해하고 감싸주는 둥근 방패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날씬한 모습을 자랑하는 창과, 날씬하진 못해도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주고, 햇빛이 쨍쨍할 땐 그늘도 되어 주며, 비가 내릴 땐 우산도 되어 주는 방패에 대해서 말이다.
미국의 유명한 예화 중에 이런 게 있다. 어느 학교에 두 개의 작문 클래스가 있었다. 한 반은 잘못된 것을 그대로 지적하였고, 다른 반은 잘된 것을 칭찬하며 세월이 지났다. 잘못된 것을 지적받은 반 학생 중에는 변변한 작가가 나오지 않았지만 칭찬 받은 반에서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남을 받아들일 자리가 전혀 없는 날카로운 직선보다는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그 안에 있는 원이 되어 상대방을 더 높여주고 칭찬해 줄 줄 아는 원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진주희 / 50대 / 서울 강동구 둔촌동

‘낀 세대’의 말하기
흔히들 우리 40대를 ‘낀 세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고,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라나? 그래서 그런지 나의 경우엔 말로 표현할 때에도 부모님께 할 때와 친구나 자식들에게 할 때 종종 다른 언어를 쓰게 된다.
부모님 같은 윗세대에게는 “못한다”, “안된다”, “맛없다”`대신 “글쎄요 `그걸 지금해야 되나요?”라든가 “지난 번보다 맛이 좀 덜한 것 같네요”라며 돌려 말하게 되고, 그분들은 미루어 짐작을 하신다. 이처럼 어려운 상대에게 돌려서 완곡한 표현을 하다 보면 거리감을 더 느끼게 되고,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친구들이나 아랫세대에겐 직설적인 표현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직설적 표현을 쓰면 마음의 교류가 더 빨리 소통되고 같은 편이 된 친근한 감정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러나 `예의가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조명희 / 40대 / 서울 광진구 광장동

요 며칠 전 일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나는 말을 꺼내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말을 하면 내 의견이 받아들여질까, 어떻게 말하면 저 사람에게 상처를 안 주고 내 마음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지만 언제나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고민을 하다 하다 말을 하게 되니까 나는 요점만 말하지 못하고 빙빙 돌리는 말투를 갖게 되었다. 물론 이런 말투가 듣는 사람에게는 상처를 덜 줄지도 모르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 며칠 전만 해도 그랬다. 정말 친한 친구에게 니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걱정이 되어서 충고를 해주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렇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히 내가 사적인 일에 끼여드는 것 같아 걱정이 되어서 며칠간 말을 못했지만 친구도 궁금해 하길래 드디어 오늘 말을 해 주었다. 솔직하게 얘기해 주고 나니 내 마음도 편해졌고 친구도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는 되도록이면 돌려서, 부드럽게만 말한다고 좋은 게 아닌 것 같다. 상황에 따라 솔직하게 얘기할 건 얘기해 주고 적당한 때에는 부드럽게 말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친구 사이도 더욱 두터워지고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백영경 / 10대 / 수내고등학교 1학년

“이것도 할 줄 모르니?”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의 차이
사람은 참 간사하다. 어떤 일을 해서 칭찬을 받을 기회가 되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바로 말하지만, 실수한 것이 있으면 가능한 한 좋게 돌려 말한다. 또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서도 다르다. 싫은 사람에게는 싫은 것은 싫다고 바로 말하고, 좋은 사람에게는 싫어도 듣기 좋은 말로 돌려 말한다. “넌 이것도 할 줄 모르니?”와 “이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거야”의 차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성격이 직접적인 사람에게 ‘돌려 말하기’란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바로 말하기보다는 돌려 말하기가 더 수월하다. 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로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돌려 말하게 된다. 그러다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떤 경우 돌려 말해야 하고, 어떤 경우 바른대로 말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
박미정/ 10대 / 고등학교 1학년

나는 N세대다
나는 N세대다.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익명성에 기대어 살아온, 솔직하고 소심한 N세대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상의 공간에서 거의 모든 생활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N세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필요도 없고 또 굳이 알려고 드는 사람도 없다. 닉네임 하나면 만사 OK다. 실명으로 글을 남기는 일이 거의 없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익명성에 기대어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의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고, 읽는 사람의 마음이 동할 만큼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해 주는 사람도 있다.
나부터도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는 조금 느슨해져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모두 쏟아내게 된다. 인터넷의 바다엔 200% 솔직한 내가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땐 같은 말이라도 좋게,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더욱이 공적인 일로 만나는 사람이라면 200% 앙큼한 내가 된다. 상대에겐 앙큼한 내가 더 멋있어 보이더라도 아직 나에겐, 얼굴 없는 솔직함이 더 편하다.
서한나/ 20대 / 경희대학교 2학년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오고가는 말 속에 기쁨과 슬픔이 있다. 때로는 오해와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난 존재이며 끝날 날이 있는 존재라면, 이 생에서 사는 한 서로 사랑하며 아끼며 살면 좋을텐데.
그래서 난 칭찬과 행동에 대한 피드백은 되도록 직설적으로 한다. 직접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얘기한다는 것이 참 쑥스러운 일이지만 돌려 말하는 것보다 더 빨리 전달되고 그 끈이 튼튼해진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상대방도 다음 번엔 나에게 또 힘을 준다. 그것이 바로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는 길게 그리고 천천히 곡선을 그린다. 모든 사람이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이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야지 서로에게 쑥스런 맘도 부족한 맘도 조금은 느리게 다가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 그리고 사랑을 얘기할 때 난 직선보다 곡선이 좋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넌 정말 나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야. 언제나 네 곁에 있으면 좋겠어’가 더 좋다.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
더운 여름 청량제와 같이 시원하게 해줄 곡선의 미학을 전달해 줄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박선영/ 30대 /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