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가까이 하고싶은 친구, 멀리하고 싶은 친구 김은영外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공부를 잘한다 / 재미있다 / 친절하다 /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준다 / 힘든 일을 도와준다 / 친구가 많다 / 글씨를 예쁘게 쓴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지저분하다 /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한다 / 침이 많이 튄다 / 잘난 척한다 / 자기 의견만 내세운다 / 놀린다

우리반에는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들과 멀리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들은 공부도 잘 하고 재미있는 서연이와, 늘 친절하게 대해주는 현주, 내게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문정이가 있다. 내가 힘든 일을 할 때 도와주는 지영이, 친구가 많은 소라, 글씨를 예쁘게 쓰는 혜리도 가까이 지내고 싶다. 나는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멀리하고 싶은 아이들도 있다. 그런 친구 중에는 내 짝과, 내 친구 혜리의 짝이 있다. 왜냐하면 내 짝은 너무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항상 콧물이 나와 있어 보기가 싫다. 또 내 짝은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선생님께서 항상 내게 가르쳐주라고 하시고, 알림장에 표시하는 것도 내가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하고 싶다. 혜리의 짝은 너무 침이 많아서 싫다. 매일 밥 먹을 때 고통이다. 내 짝은 지저분하고, 친구 짝은 침을 반찬 위에 많이 튀기기 때문에 밥을 가리고 먹어야한다. 혜리는 짝 때문에 밥만 먹은 적도 있고, 나는 밥과 반찬을 아주 조금밖에 못 먹는다. 그래서 나는 이런 애들을 멀리하고 싶다. 그 외에는 잘난척하는 친구, 자기 의견만 내세우는 친구, 놀리는 친구 등이 싫다.
나는 이런 친구들을 가까이 하고 싶고, 이런 친구들을 멀리 하고 싶다.

김은영 / 12세 / 중평초등학교 5학년 2반 55번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마음이 맞는다 / 착하다 / 똑똑하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 이상하다 / 날라리 같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어느덧 봄은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2003년 올해 중2가 되었다. 3월달. 새학기만 되면 누구나 그렇듯이 설레임으로 나의 마음은 가득찬다. 내 나이 또래의 애들은 언제부터인가 친구의 존재가 커져 간다. 그리고 친구와의 우정도 깊어진다.
모두에게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마음이 맞고 착한 아이, 똑똑한 아이 등 여러 얘기가 나올 것이다. 반대로 멀리하고 싶은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면 마음이 통하지 않은 아이, 이상한 아이 등의 얘기가 나올 것이다. 노는 아이 즉, 날라리 같은 아이들과는 멀리하고 싶다는 대답도 나올 것이다.
그런데 나와 멀리하고 싶은 친구를 사귀어 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의 장점을 찾아보고 또 그 아이의 못된 점, 잘못된 점을 고쳐주고 자신의 단점도 고쳐보면 분명 그 둘은 마음이 원래 통했던 친구들보다 우정이 훨씬 더 두터워지지 않을까?

김지상 / 15세/ 오륜중학교 2학년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어떠한 압력에도 둥글고 부드럽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한 방향만 고집한다
원경(遠景)- 멈추지 않는 수직선상의 달리기.
실패에 감긴 무명실처럼, 한 방향만을 고집하는 친구…. 너의 날 선 목소리 앞에선 나름대로 용기있고 진지했던 나의 의견들이 순식간에 베어지고 만다.
근경(近景)- 원점(原點)에서 펼쳐지는 모든 방향에 대한 관용.
조금은 두서없지만 나름의 결을 만들며 감기어진 털실 공 같은 너.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갔던 길을 다시 가기도 하지만, 완성될 꿈의 형태(둥글게 뭉쳐질)를 기대하며 오래도록 시간을 감는다. 그 울퉁불퉁한 모든 길들은 겹치고 합하여져 어느덧 따스한 부피가 되어감을 깨닫고 기뻐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삶의 ‘심지’를 가슴으로 껴안으며 나아갔기에. 때론 헛짚었던 자리와 실소(失笑)도 귀중히 여기며 자신을 다져가는… 그래서 어떠한 압력에도 둥글고 부드럽게 살아날 수 있는 너와 가까워지고 싶다.

김믿음 / 21세 / 고려대학교 3학년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이 더해간다 / 나를 믿고 함께해 준다 / 가장 힘든 순간에 떠오른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언행이 다르다 /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다
내가 늘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는 시간을 두고 만나가면서 그 믿음이 더해가는 친구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이 모든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상황일지라도, 나를 믿고 함께해 줄 수 있는 친구. 시간을 두고 친구를 만나면서 이 아이의 언행을 관찰하며 ‘내가 믿을 수 있는 스타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금방 친해지게 된다. 나의 행동에 대해서 이해하고 신뢰해주며 가끔씩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지적해주기도 하는, 나의 가장 힘든 순간에 떠오르는 그런 친구가 내가 가장 바라는 친구일 것이다. 이것은 서로를 믿기 힘들어진 이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멀리하고픈 친구도 있기 마련이다. 내가 절대 신뢰하지 못하는 이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입이 헤픈 친구. 입이 헤프다는 것은 말이 많다는 것과는 별개다. 말이 많지만 입이 무거운 친구가 있는 반면, 말은 적지만 입은 헤픈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입이 헤프다는 것은 아마 그 사람의 신용과도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다. 믿고 고민을 터놓을 수 없고, 언행이 다른 친구가 그들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평소에는 연락 한 번 없다가 자신의 일이 시급할 때만 나를 찾는 얄미운 사람이다. 필요할 때만이 아닌, 늘 내 뒤에서 나를 지켜봐 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가까이 하고픈 친구와 멀리하고픈 친구를 나열해 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남에게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유유상종이라 하지 않았던가. 내가 먼저 친구와의 벽을 허물고, 신뢰를 주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될 때에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강석필 / 21세 / 경희대학교 3학년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신뢰할 수 있다 / 진심으로 배려해 준다 / 나눌수록 기쁘고 고맙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믿음이 안 간다 / 나에 대한 이해가 없는 배려는 불편하다
나에게는 유독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내 고민을 들을 때면 먼저 내 맘이 얼마나 다쳤는가를 살펴주고, 본인이 나에게서 받을 비난은 뒤로한 채 맘이 담긴 신랄한 분석과 비평을 해댄다. 그리고는 따뜻한 정종 한 잔과 위로의 말 한마디를 절대로 잊지 않는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같은 수다부터 “삶이란~” 등등으로 시작되는 근원적인 얘기까지를 무삭제 원판으로 나누고 헤어지면, 돌아서는 그 뒤안길이 바로 이 친구 덕에 가슴까지 따뜻해지고 동시에 시원해진다. 더불어 나눈 얘기 속에 묻어나는 배려 덕에 든든함이 느껴져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한밤중 편한 마음으로 다시 내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생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나눌 수 있다는 신뢰의 장(場) 안에서 친구라는 관계의 양념이자 꽃인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지에서 나에겐 또 다른 멀리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 정말 진지하게(?) 내 삶을 걱정해 주는 이 오래된 친구는 내 추측이지만 한 달이면 열흘을 내 인생을 살피려 애쓰는 것 같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 고마움에 불편한 마음 애써 꼭꼭 감추고 나에 대한 이해가 없는 배려를 받다 보면, 때로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목에까지 차올라 그 고마운 배려 안 받고 싶어질 때가 있다.
사람이 누군가와 친구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맺고 기쁜 일 힘든 일 함께 하다 보면, 형태와 이름은 달라도 서로의 마음 안에 분명히 무언가가 쌓이는 느낌을 가진다. 그리고 다시 그 쌓여진 무언가를 통해서 더욱더 돈독해진 관계를 확인하게 됨은 물론이고! 아무리 긴 시간을 함께 하였다하더라도 이러한 느낌이 없다면, 그래서 나누면서 기쁘지 않고 받으면서 감사하지 않다면 비록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더라도 마음의 거리는 저절로 정해지지 않을까? 철가루의 양에 지남철이 저절로 끌리는 것마냥.

황정혜 / 33세 / 서울 강북구 수유3동 / 교사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친구의 이야기는 귀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내겐 바위같은 친구가 있다. 때때로 닥쳐오는 자신의 시련과 그 시련 속에서 친구인 나의 슬픔이 얹어져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서서 괜찮아질 거라는 주문을 걸어주는 친구, 내겐 그렇게 바위같은 친구가 있다. 바위는 쉽게 부서지거나 깨지지 않지만 혹여 미래의 어느날, 자신이 깨져 버리게 되어도 내가 삶에 지쳐 어디든 주저앉고 싶을 때 자기를 찾아오라고 서슴없이 말해주는 친구. 그런 친구가 내곁에 있다.
내겐 이쁜 조약돌 같은 친구가 있다. 한 손에 쏙 들어와 착 달라붙는 그 감촉에 매혹되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버거워지는 그런 친구, 내겐 그런 이쁜 조약돌 같은 친구가 있다. 선택하는 사람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조약돌은 자신이 가장 아름답게 빛날 때는 자신의 행복만을 늘어놓으며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운명이 곤두박질칠 때는 하찮게 여기던 그들을 찾아와 자신의 슬픔만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이야기만을 끊임없이 들어주길 기대한다. 물론 이런 친구도 내 곁에 있다.
나이가 들수록 바위 같은 친구와 조약돌 같은 친구가 점점 더 뚜렷하게 나뉘어진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문득 난 다른 이들에게 어떤 친구인지 궁금해졌다. 바위 같은 친구인지, 조약돌 같은 친구인지. 오늘은 뜬금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말해줘야겠다. 넌 바위라고. 네 한마디의 위로와 격려, 꾸짖음, 그리고 사랑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 준 힘이 되었다고. 고맙다고 말이다.

권자영 / 30대 / 프리랜서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작은 도움에도 고마워한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진심으로 애쓰고 도와줬는데도 고마워할 줄 모른다
“그때 네가 준 돈, 나에겐 열배 백배로 크게 느껴졌어.”
사업하다 망해 40대 중반의 나이에 작은 회사의 잡일꾼으로 들어간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보기 안쓰러워 주머니의 돈을 털어 건네준 것을 두고 듣기 민망하게 고맙다는 거였다. 별 것 아닌 걸 감사하는 친구. 늘 곁에서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다.
IMF 이래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내 나이가 그럴 때여서인지 주위에 실패한 친구들이 많다. 사업을 했건, 직장생활을 했건, 그들의 공통점은 회생과 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지경이 되기까지 주변의 친척, 친지 등에게 모두 물심양면의 피해를 입혔고, 빚도 있는 대로 끌어다 써서 신용 불량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친구는 내가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모른 척한다며 친구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사글세 보증금이 없다고 해서 동기들에게 직접 연락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건네준 나에게…. 그래서 자고로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나보다. 정말 뒤늦게나마 멀리 하고 싶은 친구가 아닐 수 없다.

고정욱 / 40대 / 소설가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말이 통한다 / 칭찬에 능하고 비난에 더디다 / 효자이고 효녀이다(아픔을 함께 해 주고 도와준다) / 친구의 도움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 나보다 뛰어난 점, 배울 점이 있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자신의 주장만 하고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 비난에 능하고 칭찬에 더디다 / 화를 자주 낸다
나는 말이 통하는 친구에게 끌린다. 본인의 심중을 솔직하게 담담하게 풀어내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친구, 그래서 공감하는 부분에서 서로 기뻐하고 이야기가 끝날 때쯤엔 내가 모르던 것을 깨달은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이다. 이런 친구는 칭찬에 능하고 비난에 더디다. 나에게서 고쳐주고 싶은 약점을 발견했을 때라도 스스로 고칠 기회를 주다가 우회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아프지 않게 하는 지혜로운 친구이다. 예를 들어 “난 너의 솔직한 점이 참 맘에 든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솔직함에 움츠려들기도 하더라. 사람 보아 가며 마음을 여는 것도 우리 나이엔 필요한가봐”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내겐 있다.
또 효자, 효녀인 친구를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며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배우자를 고를 때나 사위, 며느리감을 고를 때 효자, 효녀를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들은 모두 효자, 효녀이다.
아플 때 내 손길을 마다않는 친구에게 끌린다. 나의 도움을 너무 지나치게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이는 친구는 내가 아플 때도 내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무언가 나보다 뛰어난 점이 있어서 내가 배울 점을 지니고 있는 친구들을 사랑한다. 그것이 남들의 눈에는 사소하게 보이는 살림살이, 노래 등등일지라도.
깔깔대며 잘 웃는 친구, 슬픈 영화를 보고 줄줄 우는 친구, 덜렁이지만 속내는 여려서 미안하다는 소리를 자주하는 친구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만 옳고 남의 말에 절대 귀기울이지 않는 완고한 사람들, 비난에 능하고 칭찬에 더딘 사람들,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은 멀리하고 싶다.

김순란 / 40대 / 서울 송파구 오륜동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편하고 부담 없다 / 자신의 가치를 보존하고 묵묵히 살아간다 / 자연에 순응한다 /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현실적 이익 때문에 자존까지도 저버린다 / 작은 힘에 맹종하고 표류한다 / 자신의 자리가 아닌데도 위치를 모르고 떠돈다 / 저급 문화를 양산한다

30년 넘는 교직 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재산은 제자와 함께 많은 지우(知友)를 얻은 것일 것이다. 조금은 고지식하고 비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좋은 선배, 후배들 덕분에 부족한 사람이 사회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고, 그래서 인덕(人德)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해가 더할수록 자꾸 친구들이 떠나는 느낌을 받는다. 일상에서 현실적인 관심을 주지 못해서인 것 같다. 서로의 마음을 점차 알아주지 못하였고, 그로 인해 서운해지는 계기가 되면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욕심이나 내 뜻대로 계속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이제 지천명이라는 50대. 좋은 친구가 어떤 친구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웃사촌과 같이 편하고 부담 없는 친구, 작지만 자신의 가치를 보존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친구,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산소 같은 친구,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다. 현실적 이익 때문에 마지막 자존까지도 저버리는 친구, 작은 힘에 맹종하고 표류하는 친구, 자신의 자리가 아닌데도 위치를 모르고 길 잃은 철새같이 떠도는 친구, 저급 문화를 양산하는 문화 실종주의자 같은 친구는 없었으면 좋겠다. 아니 적었으면 좋겠다. 왜냐 하면 후자의 친구도 나에게 많은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주므로, 더욱 갚진 의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허봉규 / 50대 / 군포 수리고등학교 교장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 도와줘도 아깝지 않다 / 믿어 주고 이해해 준다
멀리 하고 싶은 친구 : 도움을 받고도 오히려 배신한다
얼마전 며늘아이가 받은 친구 전화 이야깁니다. 전화 목소리가 심상찮아 이유를 물으니, 평소 너무도 친하고 허물 없이 지내던 친구가 남편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며 한 달만 쓸 테니 100만 원을 빌려달라 했답니다. 돈을 건네면서 영수증을 받고 싶었지만 그래도 친구 사이인데 섭섭해 할까봐 그냥 돈만 주었다 합니다. 그런데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소식이 없어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친구 남편 왈, 그 친구는 집을 나갔고 그 돈은 받은 적이 없다며 못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김삿갓 시집에서 본 옛날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옛날에 장형준과 현태득이란 이가 있었는데, 둘은 죽마고우로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현태득이 장형준에게 엽전 천 냥을 빌릴 일이 생겼습니다. 1년 후, 현태득은 4개월 후에 나머지 이백 냥을 주겠다며 장형준에게 팔백 냥을 갚았지요. 그리고 넉 달이 지났습니다. 이백 냥을 들고 간 현태득은 장형준에게서 팔백 냥을 받은 적이 없으니 천 냥 모두 내놓으라는 기막힌 말을 들었습니다. 바로 우정에 금이 간 것은 물론, 너무 억울한 현태득은 고을 원님에게 고하였습니다.
원님이 진위를 알 수 없어 민심을 알아본즉, 장형준은 쌀 장사를 하면서 두 종류의 되를 썼다 합니다. 즉 쌀을 살 때는 큰 되를, 팔 때는 작은 되를 써서 돈은 벌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를 근거로 다그쳐 물어본 바, 장형준은 현태득에게 엽전 팔백 냥을 받을 때 본 사람이 없어 돈 욕심에 그만 우정을 깼다며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위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과 함께 내 몸과 같이 했던 죽마고우도 믿지 못하는 허탈감을 줍니다. 자고로 친구란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어떤 행동을 해도 믿어주고 이해해 주어야 할 벗이 아닌가요?
신수범 / 81세 / 서울 강서구 내발산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