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무명씨 a의 왁다글닥다글 축지법 남영숙


Log on - 메신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 암호를 두들겨대는 나. 사무실의 나는 시공간의 벡터에서 정지 상태인 한 점에 불과하지만 모니터 앞에서 나의 존재는 확인되고, 확대된다. ****
게임 아트를 한다는 친구가 MSN으로 말을 걸었다. 오늘 이 녀석의 닉네임(Nickname)이… ‘그 사람의 목소리로 시작해서 행복한 아침’. 녀석은 유쾌발랄경쾌 모드(Mode)다. 덩달아 나의 변죽도 상승곡선을 탄다. 보이지 않는 선을 타고 그녀의 행복 바이러스에 나는 감염된다. 신체적 접촉이 필요 없는 21세기 신종 바이러스다.

On the Phone - 핸드폰- 진실의 입
**만나야 한다면 보조수단이 필요하다. 비행기, 기차 등 각종 탈것이 있고, 화상회의를 하는 데도 있다. 보통은 전화로 대신한다. ****
“저, 요새 바쁘세요? 이번 주말에 어떠신지…” “사는 게 왜 이런지 몰라요.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심함에 죽을 지경이라며 ‘포스트-잇으로 인생이 즐거워지는 100가지 방법’을 연구하던 마케팅팀의 그녀. 돌연 열혈 직장인이 되어 전화를 받는다. 그녀의 오른발은 책상 위로 올라가 있고, 큐빅 박힌 샌들에 싸인 다른 하난 책상 밑에서 까닥대는 중.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면, 진실이 두렵다면, 진실이 필요없다면 웬만한 성과를 보장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Out to Dinne - 인터넷- Wow Wonderful Web
** 시간과 거리가 더 이상의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은 “We are the World!” 하나의 관심사로 모인 세계적인 연대는 거룩하게 빛나고 그 실천은 숭고하다. ****
아침의 녀석을 저녁에 보기로 했다. ‘찐하고 뜨거운’ 최신판을 입수했단다. 압구정동과 삼성동 사이, 직선 거리 3km·최단 주행거리 8km·인터넷 지도로 모니터에서 12cm(축적 496.63m/2cm). 차로 가면 고무줄 시간·걸으면 90분쯤? 녀석이 넘겨준 그것은 코스모폴리탄들의 범우주적 동료애가 결집된 CD였다. 좋아하는 배우의 ‘호랑이 담배 필 적’ CF를 찾아내 포럼의 수많은 팬들과 함께하는 불굴의 의지와 아름다운 나눔, 나눔.
“‘폰티악’이라는 이태리 오토바이(?) 광고야. 처음에 뜨자마자 찍은 거지. 이걸 이태리 전국의 대리점을 뒤져서 찾아냈다니깐. 그런데 불행히도 그 사람이 컴맹이라 CD를 동영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미국의 같은 팬에게 보냈어. 그리고 이걸 인터넷 계정이 있는 친구에게 다시 보내고. 드디어 인터넷의 바다에 떠오른 그의 단 하나뿐인 광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포럼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다운했다네.”

On the Way Home - 힐리스- 폼은 나의 힘
**순수한 재미,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벌써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인라인 스케이트부터 요즘의 힐리스(Heelys 바퀴 달린 신발)까지. 퇴근 길 11:00 p.m. 밤을 잊은 힐리스 가게엔 아이들로 붐빈다. 좀더 빨리 가고 좀더 멀리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저 재미나고 폼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세븐 같으니깐. ****
“야근이 뭐냐, 신새벽에 막차를 타고 출근 같은 퇴근을 하는 중이었단 말이지. 전철에서 내려서 이제 개찰구로 가려는데, 저 앞에서 아주 쿨하게 생긴 힙합 보이 하나가 걸어가더라. 오호라. ‘파김치처럼 지친 하루의 보람이로세’ 하며 자세히 보려고 눈을 비비는데, 갑자기 스르르 멀어지더란 말이다. 아, 내가 과로했구나, 그랬다. 그런데 다시 또 스르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데 우와~ 그 귀신 같은 조화에 얼른 가서 냉수 먹고 잤다.”

Log out- 그래도 남은 이야기
** 지리산에서 수십 수백 년간 묵은 도사나 비기(秘記)를 훔친 동방불패쯤 돼야 가능해 보였던 축지법(縮地法). 그러나 세월이 좋아져 이제는 범인(凡人)들도 하루에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 턴하는 요술쯤은 쉽다.

거ː리(距離)[명사]
1. 서로 떨어져 있는 두 곳 사이의 길이. 예) 십 리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왔다.
2. 수학에서, 두 점을 잇는 직선의 길이.
3. 인간관계에서, 서먹한 사이. 친밀하지 못한 사이. 예) 요즘 그들 부부는 서로 어떤 거리를 느끼는 것 같았다.
4. 어떤 기준에서 본 서로의 차이나 구별. 예) 두 사람의 견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환경적 제약이 줄어든 현대에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순수한 알몸으로 발가벗겨져 ‘우리가 정말 서로 알기를 원하느냐’고 묻고 있다. 발신자 번호 서비스에 이어 콜을 킵해 주는 콜키퍼(Call Keeper)까지 등장한 세상은 동시에 전화를 받기 싫을 때 댈 수 있는 핑계까지 알려 준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영원한 난제라지만 유비쿼터스의 시대에 저마다의 유리벽에 갇혀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영원한 아이러니가 될 것 같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란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즉 우리의 모든 일상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휴대폰에 내장된 GPS 시스템이 인공위성과 연결돼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고, 인터넷에 연결된 전자레인지는 가장 맛있는 조리법을 검색해서 요리한다. 또 냉장고에 내장된 컴퓨터를 세팅하면 필요한 야채가 자동으로 주문되기도 한다. 이들 각각이 연결되어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 이것이 유비쿼터스다.
이 유비쿼터스에서는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 누구나 편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멋진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의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비밀없는 세계’가 될 가능성도 크다. 이외 크래킹에 의한 정보 유출, 바이러스 유포, 컴퓨터 범죄, 프라이버시 침해, 저작권 침해 등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작용들이 우리 삶을 위협할 수도 있다.
_리처드 헌터/ 윤정로·최장욱 공역 , 유비쿼터스: 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 21세기북스

글쓴이 남영숙은 아산장학생 동문으로, 현재 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