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저 멀고도 가까운 지름길 위에 실상사 작은 학교가 있다 반칠환


비칠비칠 뜨거운 김 모락모락 나는 양수가 채 마르기도 전에 네 발로 일어서는 송아지를 보며 놀란 적이 있었다.
퉁퉁 불은 어미의 젖을 치받거나 밭 가는 어미 소 곁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여린 푸성귀 씹는 송아지의 자유를 부러워 한 적이 있다. 월말고사에 모의고사에 학력고사도 없이 잘만 커서 중송아지가 되고 코뚜레 꿰어 성년식 치르고 장가가는 게 신기했다.
알에서 깨자마자 물가로 풍기어 가는 오리새끼들. 나팔꽃은 새끼줄을 외로 감고 오르며, 해마다 개나리는 노랗고, 진달래는 붉었다. 동물과 식물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마다 스스로 ‘저 다움’을 찾아가는데 인간은 얼마나 오랜 동안 공을 들여야 가까스로 제 발로 걸어갈 줄 아는 걸까.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 놓은 제도 교육은 가장 공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허점 투성이로 눈총을 받곤 하는가?


교문 없는 학교
‘깨달음은 나무처럼 자란다’는 모토 하에 새로운 교육 마당을 펼치고 있는 곳을 찾았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선돌마을에 자리잡은 ‘실상사 작은학교’가 그곳이다. 초록이 짙어가는 들판에선 모내기가 한창이었고, 잡초 사이로 난 소로를 가로지르니 교문 없는 학교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컨테이너 몇 개를 이어놓은 교사(校舍)가 고작이지만 그 허름한 외양은 오히려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때마다 제 머리통을 두드려 아이들을 교실로 들이고 내보내는 ‘학교종’은 LPG 가스통을 반으로 잘라 달아놓은 것이다. 성가신 문짝도 떼어낸 남자 화장실에선 효소를 따르던 노란 깔대기가 변기통이 되어 아이들의 명약 같은 오줌발을 받아마시며 웃고 있었고, 비 마른 흙마당엔 먼지가 폴폴 일고 있었지만, 맹매기 송아지처럼 뛰노는 아이들은 한껏 생기 있어 보였다.
“작은학교는 도법 스님(실상사 주지)이 펼치고 있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속적이고 생태적인 삶의 가치를 지역 속에서 풀어가고자 불교계에서 내딛은 대안교육의 첫걸음입니다.”
‘인드라망’이란 그물코마다 삼라만상이 서로를 촘촘히 되비추고 있는 제석천의 그물을 말한다. 화엄경에 나오는 이 말은 세상 모든 존재들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연기법’의 중요한 상징으로 쓰이는 말이다.
교무실 한 모퉁이 작은 원탁을 사이에 두고 작은학교 교사 대표인 이경재 선생과 마주앉았다. 90년대 후반 불교적 세계관을 교육철학으로 재해석하여 대안교육을 처음 도법 스님께 제안한 것은 저이였다. 도법 스님은 ‘돈은 없지만 먹고 자는 것은 제공할 수 있다’며 흔쾌히 작은학교가 둥지 틀 곳을 마련해 주었다.


혼자만의 열 걸음보다 다 같이 걷는 한 걸음
비인가 3년 중등 과정의 작은학교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생명살림학교’,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창의성을 살리는 ‘작은학교’, 지역민의 삶을 배우고 익히며 지역문화를 창조하는 ‘지역공동체학교’를 추구하고 있다. 2001년 3월 첫 신입생을 뽑은 작은학교는 현재 1학년 11명, 2학년 14명, 3학년 12명에 교사 10명의 인원으로 꾸려가고 있다. 입학 전형은 학부모와 학생의 지원서를 따로 받은 다음, 지원자들과 함께 3박 4일간의 예비학교 생활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기간 동안에 그 학생의 품성과 작은학교 생활에 대한 의지 등을 살펴서 신입생으로 뽑게 된다.
작은학교의 교과는 일반 학교와 많이 다르다. 일반 교과 외에도 작은학교가 지향하는 공존, 생태, 자립의 철학에 따라 실질적인 체험을 우선으로 하는 체험 교과의 비중이 매우 크며, 학생들 스스로 관심분야를 찾아서 사물과 현상에 대한 사고 능력을 키우는 주제 교과가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단연 체험 교과이다. 나무 조각, 천연 염색, 짚풀 다루기, 흙집 짓기 등 ‘기능 익히기’와 풍물, 탈춤, 도예, 전통 무예, 서예 등으로 구성된 ‘특기 살리기’, 시설을 방문하여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는 봉사활동, 지역 답사, 공동체 방문 등으로 진행되는 ‘세상보기’ 등은 아이들을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세상을 몸으로 체험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전지구적인 자본화, 경쟁 원리가 여전히 가동되고 있는 현실에서 공동체 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시대 부적응자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일반인들이 품고 있을 만한 궁금증을 넌지시 물어보았다.
“나 혼자만의 열 걸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 같이 걷는 한 걸음이 중요합니다. 제도교육의 틀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고민 없이 사는 것보다 자기 정체성이 먼저 생기면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당장의 경쟁적 구조보다 자기 정체성 확립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더불어 삶’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작은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이 2, 3명씩 인근 마을에 주택을 얻어서 함께 생활하는 ‘작은 가정’을 꾸리고 있다. 모든 생활 방식과 규칙은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교사와 학생 모두 독립적인 주체가 되어 생활 전반에 걸쳐서 동등한 책임을 지고 있다.

“나는 작은학교를 ‘실상사 큰학교’라 부르곤 합니다. 보세요. 저 앞의 들판이 앞마당이며 지리산 천왕봉이 울타리이니 이보다 큰 학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규모는 작아도 뜻은 큽니다. 거창한 철학에서 해나가는 것은 적어요. 그렇지만 하나하나 실천해 나갑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항상 모색하는 데 있습니다.” 이경재 대표 교사의 말이다.

여기요? 아주 재밌어요
작은학교에 성문화된 교칙은 없다. 다만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을 뿐이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야단법석’이라는 식구총회가 열려서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취재 중간에 아이들 수업이 끝났는지 창문 밖이 떠들썩하다. 교무실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만나 보았다.
“일반학교에 간 고향 아이들은 작은학교에 온 저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이 힘들지 않냐구요? 힘들 때도 있지만 함께 상의하고 배려하다 보면 다 해결이 돼요. 여기선 왕따 같은 건 없어요. 최근에 읽은 책요?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어요. 그 사람 참 책임감 있고 줏대 있게 살았더라구요.” 춘천이 고향이라는 중3 이재영의 말이다.
“여기요? 아주 재밌어요. 언니는 서울서 일반중학교 다니는데 저는 여기서 물놀이도 하고, 풀도 뽑아먹고, 달리기도 하면서 노는 게 재밌어요.” 중2 조민영.
“여기선 재미없는 게 없는 것 같아요. 하는 것마다 즐거워요. 선생님들이 참 잘해 주셔요. 여기 와서 발표력이 좋아졌어요. 고등학교도 대안학교에 갔으면 좋겠어요.”
면 티에 누군가 찍어놓은 황토흙 손자국이 선명한 2학년 임고운달의 말이다.
그 밖에도 몇 명의 아이들을 만났으나 인터뷰에 망설이거나 낯가림하는 아이는 없었다. 어쩌면 선생님들의 설명보다 저 아이들의 반응이야말로 작은학교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정직한 지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구김없이 맑았다. 물론 아이들이 두부모처럼 정확히 규칙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군것질과 PC 게임을 하지 않기로 약속해 놓고도 몰래 동네 슈퍼에서 과자를 사먹기도 하고, 1시간씩 버스를 타고 나가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돌아오기도 한단다. 그러나 그마저도 성장기에 치러야 할 가벼운 일탈쯤으로 여겨졌다.
“나는 작은학교를 ‘실상사 큰학교’라 부르곤 합니다. 보세요. 저 앞의 들판이 앞마당이며 지리산 천왕봉이 울타리이니 이보다 큰 학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규모는 작아도 뜻은 큽니다. 거창한 철학에서 해나가는 것은 적어요. 그렇지만 하나하나 실천해 나갑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항상 모색하는 데 있습니다.”
이경재 대표 교사의 말이다.

길 위의 학교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말이 있듯 오늘날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자본’과 ‘경쟁’이라는 이름의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정신없이 질주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과감히 호랑이의 목덜미를 떠밀고 뛰어내린 사람들이 있다. 등에 탄 것이 힘센 도깨비가 아니라 연약한 인간임을 발견한 저 호랑이가 덥썩 달려들지, 모른 채 내뺄지는 알 수 없으나, 저이들은 더 이상 호랑이에게 운명을 맡기지 않고 자기의 두 발과 자기의 의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저것은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한 가까운 길을 버리고 모든 인간이 인간다움을 회복하여 더불어 가고자 하는 머언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꾼다면 저 먼길이야말로 모든 생명을 위한 가장 가까운 지름길일 것이다. 저 멀고도 가까운 지름길 위에 실상사 작은학교가 있다.

글쓴이 반칠환은 시인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대산문화재단에서 시부문 창작지원 수혜를 받았고, 서라벌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