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아름다운 반작용, ' 안티 ' 를 꿈꾸며 김종휘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던
우리 사회에 안티 문화가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번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역사가 그동안은 다수자, 기득권자, 상급자, 생산자, 중앙집권자, 남성의 발언만이 일방 통행되고 일방 관철되는 비민주적인 원리로 흘러왔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당연히 소수자, 상대적 박탈자, 하급자, 소비자, 지방자치권자, 여성은 발언 기회를 갖지 못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억압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억눌려온 에너지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분출된 것의 하나가 바로 안티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노’라고 말하는 것의 가치
예를 들자. 안티 미스코리아, 안티 다이어트, 안티 호주제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성적 가치와 규범과 제도에 대한 수많은 안티 운동이 있다. 소위 쭉쭉빵빵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안티 미스코리아, 자기 몸을 사랑하고 자기 몸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해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안티 다이어트, 아버지가 죽으면 어머니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나이 어린 아들이 호주가 된다든지, 아이는 이혼모와 사는데도 전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는 남녀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는 호주제의 허구를 비판해서 크게 호응을 얻은 안티 호주제 등등. 남성에 대한 여성의 안티 문화를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이다.
안티 문화는 이처럼 여성을 비롯해서 소수자, 상대적 박탈자, 하급자, 소비자, 지방자치권자라는 비주류적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주류적 원리와 관습을 뒤집어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준다. 이러한 문제 제기들로 인해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던 고루한 사회는 신선한 자극을 받고 다양한 방법론을 동원해 각축을 벌이게 되며 활발한 토론이 펼쳐지게 되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의사 소통의 동맥 경화를 벗어나 건강을 되찾고 더욱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게 되는 다원적 환경으로 연결된다.
요컨대 사회의 민주적 의사 소통과 조직 원리의 생산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안티 문화가 수행하는 긍정적 역할이 제법 큰 것이다. 재차 요약하자면 안티 문화는 모 CF의 카피처럼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눈치 안 보고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비판적 문제 제기를 한다.
안티 문화의 이러한 최초 문제 제기는 여타 사회 세력, 집단, 개인들의 활발한 의견 개진을 촉발한다.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하게 되고, 다양한 방법론들이 경쟁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도출되는 사회적 결론은 그 값어치와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안티 문화의 최고봉
반면 안티 문화가 불러일으키는 부정적 요인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흔히들 말하듯 ‘반대를 위한 반대’, ‘안티를 위한 안티’가 남발되면서 도리어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논의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경우다.
중요한 것은 ‘안티를 위한 안티’에 머물게 되는 이유다. 대체로 가장 큰 요인은 안티가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딱 떨어지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안티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자체적인 대안 제시가 미흡할 때 안티 문화는 내부적으로도 힘을 잃기 십상이다.
또 하나 대안 제시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 상대편을 이해하고 있으며, 상대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유도하는 안티야말로 안티 문화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티란 존재론적으로 ‘무엇’ 또는 ‘누구’에 대한 안티로서만 성립한다. 그 ‘무엇’과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안티 또한 소멸한다. 결국 안티란 상대편과의 관계 속에서 상호간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때 ‘안티를 위한 안티’라는 우물에 갇히게 되어 상대방에게도 자신에게도 무익하고 불필요한 존재가 되고 만다.

주류와 비주류의 생산적인 공존
요즘에는 안티에 대한 안티도 많아지고, 안티 사례들만 따로 모아서 전문적으로 분석 비평하는 경우도 있을 만큼 ‘안티 문화의 생활화’가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 의사 소통의 길을 터준 것이 인터넷이란 매체고, 그 안에서 저쪽의 일방향에 대해 이쪽의 일방향을 보여준 것이 안티 문화라고 한다면, 이제는 그야말로 쌍방향의 피드백을 통해 안티와 안티 해당자가 서로를 얼마만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가를 실험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존재를 배려하고 그 특성을 이해하는 안티 문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꼼꼼하고 충실한 내용의 안티 문화, 온-오프라인 만남을 활성화하여 상호간의 부족함을 메꿔 나가고 정서적 유대감을 찾아가는 안티 문화,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언제든 스스로 즐겁고 재미있는 안티 문화를 꿈꿔 본다. 안티라고 해서 다 같은 안티가 아니라는 것,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글쓴이 김종휘는 문화평론가이자 하자작업장학교 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