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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
일하는 아내, 밥하는 남편의 사랑 만들기 |
방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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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춘복씨 부부
안해’는 아내의 옛말이다. ‘안’은 ‘밖’의 반의어이고, ‘-해’는 ‘사람이나 물건을 말할 때 쓰이던 접미사’이다. 즉,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안사람’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반해 남자는 밖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 뜻으로 ‘바깥사람, 바깥양반’ 등으로 불리워진다.
하지만 요즘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집안일은 아내가, 바깥일은 남편이…’ 하는 그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아니, 오히려 바깥일을 아내가 하고,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집들도 생겨나고 있다.
살림하는 바깥사람
“잠깐 앉아서 기다리세요. 운동화를 빠는 중이라서요….”
올해로 살림 경력 6년째인 배춘복 씨의 첫인사는 이러했다. 약속 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했더니 그 사이에 아들의 운동화를 빨고 있었다.
“집안일을 해 보니까 주부들의 마음을 이해하겠더라구요.”
흔히들 집안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한다. 또 열심히 해도 티가 안나고, 한번 안하면 금방 티가 나게 마련인 게 집안일이다. 그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집에서 놀면서 뭐했냐’고 무심코 던지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집에서 살림을 하고 있다’고 당당히 밝힌다.
배춘복 씨도 예전엔 그 세대의 보통 남자들처럼 살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런 그가 살림을 맡게 된 것은 IMF 경제 위기 때문이다. 총포무역상을 운영하던 배춘복 씨의 가게는 개점휴업 상태가 될 정도로 장사가 잘 안되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주저없이 아내가 동대문에 옷가게를 열었다. 처음엔 집안일은 파출부에게 맡기고, 낮에는 테니스를 치는 등 소일거리를 찾아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점차 ‘살림을 내가 직접 맡아서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가 살림을 맡게 된 것이다.
‘살림하는 남자’로 그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첫째 아들이 모형비행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이다. 잡지사에서 아들을 표지모델로 하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와서 취재를 오게 되었는데, 대화를 나누던 중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었단다.
그는 집에서 살림을 한다고 했더니, 잡지사에서 오히려 자신을 취재하게 되었다고. 그때부터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남자 망신 다 시킨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잘 산다’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부부 중에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며 능력 발휘를 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여자가 밖에서 일을 한다면 일하는 만큼 남자가 채워주면 된다는 것이다.
프로 주부 되기
어느날 아내가 그에게 ‘책 좀 보라’는 말을 했다.
“드디어 내가 밥떼기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달라진 아내 모습이 내심 뿌듯했지요.”
사실 그는 책 볼 시간이 없다. 아파트 동 대표이면서, 아이들의 학교 운영위원회 일도 보고, 고양시 사격연합회 총무, 주부클럽 회장, 아마추어 무선 모형비행기 모임과 좋은 아버지 모임 등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배춘복 씨는 주부도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살림도 체계적, 과학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정도 하나의 회사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된다. 그는 살림을 맡은 후 살림 지출 내역을 뽑아서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체크하였다. 조명과 전기 시설을 체크해 전기차단기를 설치하였고, 실내 온도에 따라 온수 밸브를 조절하여 한달 관리비를 예전보다 40∼50% 줄였다.
아이들의 교육 방식도 전면 수정했다. 다니던 학원을 모두 그만두게 하고 마음껏 놀게 했다. 그랬더니 두달 뒤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학원을 골라서 보내달라고 하더란다. 예전엔 마마보이였던 아이들이 적극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또 그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다. 필요할 때 말하면 주되, 내역서를 꼭 쓰게 한다. 그리고 작은 일이라도 아이들과 논의하고, 아이들의 입장을 반영한다.
서로 존중하고 함께 챙기며
배춘복 씨 부부는 늘 대화하고 서로의 의사를 존중해 일을 나누고 결정한다. 그는 아내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 친구들 앞에서는 아내를 존중하는 태도를 취한다. 자신이 아내를 함부로 대할 때는 친구까지도 함부로 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아내가 일어나 신문을 펼쳐 보았다. 그러는 사이 그가 커피를 가져다 줬다. 일반 가정의 모습과는 정반대라 할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최근에 일식집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할 때는 아내가 아이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적었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져 그는 좋다고 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맞춰 열심히 생활하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21세기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가정의 모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 방은경은 아산재단 편집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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