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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
마임이스트에게 말걸기 |
남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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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이스트 남긍호씨
마임이스트, 무언극(無言劇)의 배우다. 여기 ‘한국 마임의 2세대’라는 프랑스 유학파 남긍호를 소개한다. ‘말 없이 말하는’ 마임으로 얼과 몸, 나와 우리,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 그를 테마 ‘안과 밖’의 무대에 올린다.
마임이 내게 왔다, 마임으로 떠나다 별볼 일 없는 부산의 연극과 학생 하나가 상경, 영국 마임이스트의 내한 공연을 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몸의 표현이 저렇게도 되는구나. 악마와 어린아이를 번갈아 연기하는데 아, 저게 마임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저걸 할 것이다’, 한 지방 연극학도의 삶이 관람 전과 후로 완전히 이분되는 순간이었다.
“예전엔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랬었죠.” 공연은 비슷하면 곤란하다, 남긍호 씨의 지론이다. “관객을 완전히 압도해서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을 거야, 이런 특별한 경험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남긍호는 프랑스로 떠났다. “저 연기 이면에 틀림없이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발견. 남긍호에게 있어서 마임 유학의 첫번째 키워드는 ‘발견’이었다. “나는 마임이 좋은데, 우리나라에서는 가르쳐 줄 사람도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없는 거예요. 프랑스가 제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죠. 그게 인생의 대전환기였어요 별볼일 없는 연극학도, 불분명한 미래를 가진 평범한 배우 지망생이 다시 태어나는….”
이방인의 말, 몸, 다시 태어나다
“유학 초창기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오디션과 함께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였죠. 하지만 오히려 스트레스를 잘 이용하려고 노력했어요. 나는 마임이스트니까 말을 잘 못 알아듣고 표현할 줄 몰라도 반면에 직감이나 다른 감각이 발달했을 것이다…. 하하. 성격 탓이죠. 표정이나 몸의 표현으로 학교에서도 잘 어울렸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라면 학비는 당연히 부모님 몫이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선 철저히 혼자다. “어린아이였죠.” 그리고 마임에 관해서도 그는 어린아이였다. “마임에는 ‘한 문장을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가 말하려면 단어를 배우듯이 마임이스트는 몸의 언어를 배웁니다. 가나다라로 한 글자 한 글자 쓰듯이 머리면 머리, 가슴이면 가슴, 다리면 다리… 몸을 부분부분 나눠 움직임을 익히고 이를 연결해서 한 문장을 만들지요.”
우연한 기회에 남긍호는 선배들의 즉흥 연기를 보았다. “인간의 몸,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어요.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패턴. 몸이 움직이는데 다른 어떤 것, 무거운 것, 이미지가 연상되고…. 놀랐어요.” 바로 ‘탈일상적인 몸’이었다. “편안한 호흡이 아닙니다. 머금는 게 많죠. 몸도 완전히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해서 훈련합니다. 진짜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을 거쳐야 몸이 바뀝니다.” 성장이 끝난 20대 청년의 몸이 낯선 땅에서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나의 안과 밖과 우리
그는 ‘마임이스트 남긍호의 오늘’을 기질 탓이라고 했다. 어린 남긍호는 잠시도 가만히 못 있고 움직이는 아이였다. 그래서 운동을 좋아했고, 밴드를 해도 ‘신체적인’ 드럼을 쳤다. “헤비메탈에 미쳐서 19살부터 22살까지 그룹 활동을 했죠.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너무 좋아서 결국 1999년 드디어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호모루덴스마임컴퍼니의 탄생. 극단 이름 ‘호모루덴스’는 유희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귀국 후 혼자서 2년 정도 활동하다가 벌인 일, 단체생활의 불협화음이 귀찮아서 피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팀 작업에 꿈을 갖고 있다.
“자기 해석이 필요한 작업을 홀로 하는 사람들은 독선적이고 타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임도 솔로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같이 작업하고 소통하는 데서 더 많이 깨닫습니다. 나의 인격이나 생각이 집단창작을 통해서 발전하는 스타일이에요. 작년 ‘레고 인간’ 공연 때 순전히 배우로서만 혼자 작업했습니다, 참 외롭더라구요. 물론 외로운 면이 필요하지만 저는 여럿이 하는 게 더 즐거워요.”
마임 선진국 프랑스에서 8년, 학위도 석사까지 마쳤고 현지의 극단도 두루 거쳤으니 마임 불모지 한국, 척박한 이 땅에 안 돌아올 수도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 반대였어요. 제가 좀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으니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었죠. 한국에 오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안과 밖 “연극은 몸과 몸이 만납니다. 자기의 몸과 캐릭터의 몸이, 배우의 몸과 상대 배우의 몸이 동시에 만납니다. 또 배우의 몸과 관객의 몸이 만납니다. 가상현실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지금 존재해야 합니다. 가장 인간적인, 이기적이지 않은 예술이 연극입니다. 그림 등은 자기 아집이나 고집이 있어야 작품세계를 끌고 갈 수 있지만 연극은 전혀 다릅니다. 관객을 생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작업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경성대 연극학도 시절, 그는 사투리 억양 때문에 발음 문제로 고민해야 했다. “분명히 나는 배우 기질이 있고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어떻게 연극을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임이 연극의 본질이고 연극은 마임한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임을 선택했죠.”
요즘 너도 나도 배우 같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면 모든 사람들이 연기를 한다. 다 거짓이다. 상투적이지만 프랑스 얘길 꺼냈다. “비교는 무의미하겠지만”이란 단서를 달고서.
“시스템도 배우도 첫째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프랑스는 배우를 인정하고 높이 평가합니다. 혹독한 훈련을 거쳐 경력을 쌓아야 배우가 되기 때문이죠. 검증된 사람들이 배우하는 거지, 조금 고쳐서 키 크다고 잘 생겼다고 배우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그들에겐 배우가 직업입니다.” 하지만 우린 호흡이 짧다. “조로증입니다. 예술에 대한 지원도 결과를 바로 보고 싶어해요. 작품이 그냥 나오는 것도 아닌데 긴 호흡을 가져야죠. 다들 너무 급합니다. 혹 가다 한번씩 나오는 게 인재고 작품인데 말이에요.”
한국적인 마임, 그 가능성의 안과 밖 한국적인 마임은 무엇일까?
과연 한국적인 무엇이 가능할까? 사실 몸의 언어는 세계 만국 공통어다. 그래서 남긍호는 마임을 했다. 구태여 그가 한국적인 몸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몸의 코미디, 비주얼 코미디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한국적인 향기가 나는 코미디가 없을까 고민 중입니다. 일본은 모방을 잘하잖아요. 서양의 뼈대를 그대로 가져와서 정말 똑같이, 때로는 더 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 일본사람이 하는 마임 공연은 일본의 향기, 일본식 유머가 있더라구요. 저도 그런 작업을 한번 하고 싶어요. 몸의 언어는 하나지만 정서의 차원에서 관객에게 다가가는 데는 보편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구요. 가령 우리 코미디 영화 ‘조용한 가족’이 프랑스에 소개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 코미디를 불어로 표현하니까 프랑스 관객들이 웃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그는 도전할 것이다. 말의 벽을 넘어. 정서의 벽을 넘어. “몸이라면 틀림없이 가능할 것 같아요. 몸으로는….”
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알았다. 마임이스트, 몸으로 말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사람이란 단순한 사실을. 연습실을 종횡무진하는 그는 아름다웠다. 다른 몸이었다. 땀과 노력이란 겹겹의 시간 터널을 통과한 몸, 몸짓.
나는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말을 걸고, 받아적고 다시 나를 보탬으로써 상당한 왜곡을 했을지 모른다. 아니, 했다. 그래서 나는 공연무대에서 다시 그를 찾을 것이다.
글쓴이 남영숙은 아산장학생 동문으로, 현재 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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