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3
- 부문 : 사회봉사상
- 소속(직위) :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관장
- 수상자(단체) : 이정호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사랑
어느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거리 실험을 했다. 먼저 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었다.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동안 배운 영어 실력을 총동원해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어떤 사람은 미국인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다음에는 방글라데시 사람이 길을 물었다. 역시 영어로. 이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글라데시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가던 길을 그냥 갔다. 어떤 이는 “너, 어디에서 왔어?” 하며 우리말 반말로 되묻기도 했다.
대한성공회 신부이기도 한 이정호(56)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관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부색에 따라 외국인을 어떻게 차별하는지 잘 보여주는 실험”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내다본다면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이고, 초저출산 국가예요. 10~20년 뒤에는 이런외국 노동자들이 예전 우리의 파독 광부나 간호사처럼 필요한 때가 반드시 올 겁니다.”
가구공장 밀집지역으로, 또 불법체류 외국인이 많은 것으로도 잘 알려진 경기도 마석에서 20여 년간 외국인노동자들과 더불어 살아온 이 신부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교 2학년 때 성공회 성북교회를 처음 찾았다가 독실한 신자가 된 뒤 성공회대 신학 과에 입학,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1989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에는 김성수 주교의 비서 신부로 발령이 났다. 어느 날 주교 신부가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서울 정동의 주교좌성당에서 근무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한센병 환자촌인 성생원(지금의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자리)의 관리 신부를 맡으라는 지시였다. 부인(김복선 · 51)과의 사이에 당시 세 살짜리 딸 하나를 두었던 그는 1990년 6월 1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에 있던 성생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센인 주민들과 거리감을 없앤 이 신부는 한글과 한문·교양 교실을 운영했다. 또 한센인 행복학습관을 개관하여 자립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에는 한센인 단체로부터 한빛대상 인권상을 받았다.
성생원에서 사목활동을 하다 보니까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좁은 집에서 생활하는 그들이 임금체불과 음주·도박·싸움 등의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게 되어 영어 미사를 시작하였고, 1992년에는 교회 옆에 외국인노동자 숙소인 ‘샬롬의 집’을 건립하였다.
그 뒤 외국인노동자들의 임금체불과 의료지원, 사건 중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1996년에는 아예 성생원 주
임신부로 부임하면서 샬롬의 집을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로 확대하였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 사고가 나면 많은 치료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신부는 관련단체들과 연합하여 1999년 이주노동자의료공제회(지금의 한국이주민건강협회)를 출범시키는데 관여하였다. 2000년부터는 서울아산병원과 연세대 의료봉사동아리, 온누리약사회 등 의료봉사단체들과 연계해 무료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2000년에는 가구공단 규모가 더욱 커지면서 2천여 명의 외국인노동자가 일하게 되자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노동자들이 상부상조할 수 있도록 국가별 공동체를 조직하였고, 농구와 축구대회 등의 체육활동과 문화 페스티벌을 지원해왔다. 2005년에는 교회가 보유한 24억 원 상당의 토지 2,640㎡(800평)를 남양주시에 기부 체납하였고, 경기도와 남양주시는 그 땅에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복지센터를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성공회 사제는 65세가 정년이다. 정년퇴임까지는 제법 남았는데, 이 관장은 의외의말을 했다.“저의 경우, 나이가 든다고 해서 설교를 더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 깊어지고 심화되는 느낌도 안 들어요. 그래서 사제는 62세 이전까지만 하면 좋겠어요. 그 다음이요? 할일이 있죠. 이곳에 와서 일하다가 돌아간 방글라데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자꾸 자기 고향에 와서 학교를 하라고 권하고 있어요. 선교 목적이 아닌, 한국문화를 알리는 학교 말이에요. 방글라데시에서 새로운 꿈을 일굴 생각을 하느라 많이 행복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