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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조용필 서울아산병원 혈관외과 교수 이경진


서울아산병원 동관 1층 혈관외과 외래 진료실 안에서 조용필(50) 교수는 천상 ‘선생님’ 같았다. 그는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A4 용지 한 장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경동맥이라는 게 심장에서 뇌로 가는 길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신뢰가 가는 목소리. 그제야 굳어 있던 환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직접 만든 사진 자료까지 꺼내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을 모두 듣고서야 편안한 얼굴로 진료실을 나서는 부부. 종이 위에는 환자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으로 꼼꼼하게 채워져 있었다.

외과 전공의를 마치고, 그가 처음 관심을 가진 분야는 간이식이었다. 세계 최고의 간이식 수술 명의인 스승(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교수)이 보여준 끈질긴 집념과 열정, 환자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큰 가르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스승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혈관외과로 가라.”
당시 의료계에서는 혈관 질환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혈관외과 유치를 위해 해외 유명대학 교수를 초빙하는 등 새로운 과 유치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따를 수밖에 없는 권유였다.

끊임없는 연구와 탐구정신

각 조직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액. 혈액이 지나가는 길인 혈관. 막히거나 터져 망가진 혈관을 고치는 것이 혈관외과 조용필 교수의 일이다. 혈액은 온몸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새 영역에서 새 길을 찾는 것은 그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다양한 전공 교수들과 늘 새로운 연구를 하는 조용필 교수는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2012년부터 김경모 소아과 교수와 함께 렉스션트수술(간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간문맥이 선천적으로 막혀 있는 어린아이의 간문맥을 교체해 주는 혈관 수술)에 매달리고 있다.

2013년에는 버거병(자가면역 반응에 의한 염증으로 팔, 다리의 동맥이 막히면서 썩어 사지 말단의 절단까지 초래할 수 있는 혈관 질환) 환자의 골수에서 분리한 줄기세포를 다리에 직접 주입, 치료에 성공했다. 줄기세포 연구는 정부로부터 신의료기술로 채택되어 현재 7명의 환자에게 임상 적용 중이다. 최근에는 당뇨발 환자에게도 줄기세포를 주입해 성공했다.
그가 늘 새로운 연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은 절망 끝에 서 있는 환자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장에 혈액을 공급해 주는 상장관막 동맥, 간과 비장・(위에 혈액을 공급해 주는 복강동맥의 박리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였다.

“도대체 서울아산병원은 얼마나 큰 병원이기에 이렇게 드문 사례의 환자를 8명이나 모을 수 있었나요?”
그들이 던진 질문은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조용필 교수,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의료진의 노력을 보여준 반증이기도 했다.

환자에 대한 높은 몰입도

꾸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그의 진료는 사람에 대한 따듯한 마음을 밑거름 삼고 있다.
“제가 교수님과 알게 된 지 벌써 6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환자나 다른 직원에게 반말하시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저희에게도 늘 ‘간호사님’,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시죠.”

권위적이지 않은 조용필 교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한 간호사는 그를 ‘은인’이라고 부르는 8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발가락 끝까지 피가 가지 않아 괴사한 발가락. 고름투성이었지만 고령인 탓에 수술할 수 없다는 다른 병원의 통보를 받고 쫓겨나듯 내몰린 환자였다.
절박했지만 아들 내외를 사고로 잃은 노부부에겐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조용필 교수는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안 된다고 말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든 해보자. 약을 쓰고 있으니 좀더 기다려보자’고 하셨죠.”
환자가 오면 늘 양말을 벗겨 손으로 환자의 발등을 감싸 맥박을 쟀다.

“다른 병원에 없는 특별한 치료를 하신 것도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처방했던 약이 효과가 있었어요. 몇 달 뒤 환자분의 발이 정말 나았죠.”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까. 그가 했던 담담하지만, 진심 어린 말이 떠올랐다.
“결과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죠.”
검사실, 진료실, 병동에서 만난 직원들은 한결같이 그를 환자에 대한 몰입도가 아주 높은 의사라고 말했다.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아주 정확한 치료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환자와 보호자가 하는 말을 모두 기억해 치료에 접근하시죠.”

하루 두 번, 정확한 시간에 병동 회진을 도는 성실함, 정성스런 말투와 태도에 환자들은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그는 안주하지 않는다. 늘 무엇인가 연구하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으려 한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알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것은 환자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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