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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신장 기증, 두 아이 입양한 이종진, 이현수 부부 유인종

“직장동료가 신장 질환으로 건강상태가 무척 안 좋아서 내 신장을 주려고 했는데, 맞지 않는다고 하네.”

2010년 가을, 경북 상주시청 공무원인 남편(이종진・9)이 퇴근한 뒤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말이다. 아내(이현수・7)는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남편의 평소 성격으로 봐서 장기 하나쯤 내놓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어서였다.

“그럼 내 신장을 줄까?”
아내의 말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그래 볼래?” 하며 반겼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부의 대화이지만, 두 사람이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문이 풀릴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은 아무 쓸모가 없으므로 애착을 갖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남기고 가자는 것이 평소 부부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 의견일치를 보고 장기기증 서약서를 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1주일에 두 번씩 신장투석을 하면서 걷기도 힘들어한다는 남편의 직장동료(강인환・9)를 그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남편또한 자신과 갑장인 직장동료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보람 있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던 부부는 이날 저녁부터 ‘신장 기증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그러나 사람의 장기는 주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쉽게 이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족도 아닌데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하면 은밀하고 불순한 돈거래가 있을지도 몰라서 심사가 무척 까다로웠다. 어렵게 승인 절차를 통과한 뒤 제공자와 수혜자 장기의 적합 여부를 병원에서 검사하던 날, 아내는 남편 동료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던 그해 11월 24일, 신장 이식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수술 직후에는 몸이 조금 힘들었지만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내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축사에서 소를 돌보고, 감 과수원을 가꾸며 비교적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남편 동료는 건강을 회복해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 신장을 이식받은 남편 동료와 그의 아내는 인사하겠다면서 몇 번이나 그들 부부의 집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부부의 반대가 완강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때 ‘신장을 제공하면서 엄청난 돈을 받았다’는 뒷공론이 돌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닌 까닭에 부부는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마음으로 낳은 두 딸

부부에게는 아들이 셋(병하•승하•영하), 딸이 둘이나 있다.
아들들은 각각 26세, 24세, 18세이고 딸들은 이제 다섯 살과 네 살이다. 아들과 딸의 나이차가 많이 나는 이유는 아들 셋은 부부의 친자식이지만, 두 딸은 마음으로 낳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큰딸 은서는 생후 24일이던 2009년, 둘째딸 선주는 생후 1개월이던 2010년에 입양했다.

어느 날 부부는 TV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이 한국을 찾은 프로그램을 보았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해 남의 나라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면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부부는 버려지는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거두어 보자고 합의했다. 그렇게 하면 보육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잘못되었을 경우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물림하는 잘못된 환경을 끊는데 일조하자는 마음도 있었다.
세 아들도 부모 결심에 동의해서 부부는 함께 인터넷 등에서 입양 절차와 자격에 대해 꼼꼼하게 확인한 뒤 대구 혜림원 미혼모센터에 입양을 신청하고 교육을 받았다.

직접 와서 아이를 선택하겠느냐는 보육원의 제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소중한 생명체를 물건처럼 고른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만, 아들만 있어서 집안 분위기가 삭막하니까 미혼모에게 버려진 딸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첫딸을 거둔 뒤 오빠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서 아이가 외로워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딸을 한 명 더 받아들였다. 부부의 혈액형과 두 딸의 혈액형은 다행히 들어맞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입양 사실을 충격 없이 받아들일 나이가 되면 알릴 생각이다. 두 딸을 입양하는 과정에서 동거하던 시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귀엽게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부모는 마음을 풀었다. 입양 계획을 처음부터 환영한 아들 3형제는 양육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독거노인 등에게도 나눔 실천

그뿐만이 아니다. 부부가 두 딸을 입양하여 잘 사는 모습을 본 이웃과 직장동료 등 6가구도 아이들을 입양하였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육아 정보도 교환하고, 아이들끼리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부부는 주위에도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독거노인 대여섯 명에게 2~3주에 한 번씩 아내가 만든 반찬을 배달한 지 16년이 되었고, 2008년부터는 상주시청에 들어오는 신문과 폐지들을 모았다가 판 돈으로 4명의 척추장애인들에게 명절 때마다 그네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사 주고 있다.

또한 두 딸을 입양한 보육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매년 200여만 원을 후원하고 있으며, 복지관 등을 통해 연간 60만원을 새터민을 위한 후원금으로 내놓고 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그말을 약간 변형한다면, 이종진•이현수 내외는 여유가 있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아니라 남들을 돕다 보니까 여유가 따라온 것 같았다.

부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가난한 농가에서 3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남편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뇌병변 3급장애인이 되었다. 형은 충남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동생은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어서 그가 가장 노릇을 했다. 새벽에 농사일을 하고 등교한 뒤 집에 돌아오면 다시 밭일을 했다.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영농후계자가 되기 위해 4H 활동을 시작했고, 4H 상주군 연합회장을 하던 1986년 적당한 키에 복스러운 얼굴, 그리고 부지런한 아내를 만나 2년 뒤 결혼식을 올렸다.

2남5녀의 여섯째이던 아내의 아버지는 막노동을 했다. 여고를 어렵게 졸업한 뒤 4H 활동을 하던 그녀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처럼 믿음직스러운 체구와 성품을 지닌 남편을 만났다.
아내는 당시 시댁의 어려운 가정형편과 시아버지(이시택•80)의 장애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듬직한 남편을 믿고 친정에서 말리는 결혼을 결심했다.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1995년까지 사과 과수원을 운영했다. 이 사이에 남편은 석 달 동안 피를 토하며 공부해서 1991년 공무원 9급 채용시험에 합격했다. 남편이 공무원이 되어 면사무소와 시청에 근무하면서부터는 과수원 일을 아내가 도맡았다. 사과 과수원을 정리한 뒤에는 상주 특산물인 감 과수원을 일구는 한편 소 축사 운영을 병행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경제난 극복

지금 키우는 소는 115마리이지만, 소들은 지금 부부의 소유가 아니다, 사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농협과 위탁운영 계약을 맺었다. 한우를 길러주는 대신 두당 25,000원을 받는 것이다. 매월 200만원 조금 넘게 받는 위탁사육비는 어린 두 딸의 교육비로 쓰기 위해 적립하고 있다. 부부의 나이는 어느덧 50대를 바라보고 있는데, 두 딸은 이제 겨우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서 대학까지의 학비를 열심히 일하면서 잘 모아두려고 한다.

남편에게는 원서비 3천 원이 없어서 대학시험을 치르지 못한 한이 있다. 지금은 자식들에게 그 한을 물려주지 않을 만큼 생활이 안정됐다. 대학의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장남은 청주의 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중이고, 둘째는 신구대 동물자원학과 2학년이며, 셋째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우리 집에 공짜밥은 없다”는 엄마의 엄포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장남과 차남은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벌면서 대학을 다녔다. 셋째 또한 형들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내는 외부 봉사활동 외에도 결혼 후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매일 아침 문안과 식사를 챙기는 등 정성으로 봉양해왔다. 장애로 고생하시는 시아버지 외에도 시어머니(79)마저 최근 퇴행성관절염과 골다공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져서 농사일은 물론 살림과 시부모 수발까지 모두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주위에서는 효부(孝婦)라는 칭찬이 자자하다.

꼭 상을 받으려고 한 일들은 아니었지만, 부부의 선행은 널리 알려져 보건복지부 이달의 나눔상과 상주시 올해의 부부상, 보화상(효부상) 등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아산상 효행가족상을 수상하면서 상금 1천만 원을 부상으로 받았는데, 이 상금은 대부분 상주 지역 장학금과 보육원 및 장애인협회의 후원금 등으로 사용하였다.

독자들께서 혹시라도 상주에 들를 일이 있으시면, 상주에는 곶감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사는 모습이 남달라 낯선 별에서 온 것 같지만, 선행으로 빛나는 이종진・"이현수 부부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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