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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아산병원 "봉사도 하다보면 중독이 되죠" 이선희




매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은 김완영 사회복지사가 지원과의 김현미 씨와 자원봉사자 2~3명과 함께 목욕봉사를 나가는 시간이다. 자원봉사자 중엔 여성이 55명으로 남성 4명에 비해 훨씬 많다. 김 복지사는 자원봉사자들의 조를 편성, 월~목요일은 여자노인, 금요일은 남자노인을 씻기는 날로 정해 하루 2~3집, 한달 60여 가구를 찾아가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오늘은 대천성당에 다니는 장말자(63)·김미경(42)·이향림(39) 씨가 팀을 이뤄 목욕봉사 하는 날. 이동목욕차량은 대천해수욕장 가는 길 부근인 보령시 요암동에서 멈춰선다. 도로가 인접한 담 곁 화단에 김장에 쓸 배추며 쪽파들이 가지런하고 집 한켠 외양간에서는 소 한 마리가 여물을 먹으며 되새김질에 한창인 농가 앞이다. 마당 한켠에 수북이 쌓인 호박이며 농기구들의 질서정연한 배치…. 어느집 아낙네의 손길이 이렇게 정갈할까 생각했는데 이집의 살림꾼은 의외로 할아버지다. 식사를 준비 중인지 고추장찌개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고 있는 마당가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이국주(73) 씨가 봉사단을 맞는다.

재작년 허리 디스크 수술 여파로 허리에 복대를 두른 채 생활하는 할아버지. 아내 목욕 뒷바라지가 이제 제일 힘든 일인데 보령병원 덕분에 자신도 살고 할멈도 살게 되었다며 목욕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연신 표한다.

“아이고, 어서들 오셔. 할멈이 이제나저제나 올까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구먼.”

14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뒤 풍을 맞아 한쪽 손이 오그라지고 애꾸눈처럼 한 눈도 감겨버린 김영순(70) 씨가 방안에 오도마니 앉아 있다. 집안 가득 퍼진 찌개 냄새를 의식했는지 “우리 집은요, 신랑이 요리도 잘 해요…”하는 할머니. 한쪽에선 목욕도구를 들여놓느라 분주한 가운데 김현미 씨가 할머니의 체온과 혈압을 잰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할아버지의 하소연이 늘어진다.   

“한창 일할 때 할멈 체중은 55kg이었어. 근데 단 것 좋아하고 노상 앉아만 있으니 점점 살이 쪄서 지금은 68kg이여. 나보다 더 체중이 나가니 목욕시키기가 힘들어요. 2~3일에 한번 머리 감겨주는 게 고작이지. 내 허리까지 이래놓으니 이 사람이 빨리 죽어야지. 고생스러워서 참말 죽갔네그랴. 그래도 이 사람은 나랑 자기랑 한날 한시에 죽어야 된대나 뭐라나….”



두 번째 찾은 집은 보령시 남포면 창동2리 주택가. 정원까지 딸린 꽤 기품있는 저택이다. 4년 전 중풍에 걸려 한쪽이 마비된 채 남편 이철우(71) 씨에게 의지해 살고 있는 김순옥(67) 씨 집이다. 한의사 아들도 두었고 꽤 잘 사는 집안 출신이라는 멋스런 풍모의 김씨. 하지만 한창 활발하게 여행도 할 나이에 일찍 그를 찾아온 병마는 사람을 사물화시켜버렸는지 표정이 어둡기만 하다. 이 집은 가족이 모두 지쳐 있는 상태라는 게 김완영 복지사의 귀띔이다.

봉사자들이 집안에 들어서자 휠체어에 앉아 있던 김씨가 어제 다리쪽은 막내아들이 와서 닦아주었으니 윗부분만 씻어주면 된다며 은근히 아들 자랑을 한다. 김씨는 유난히 불안증세가 강해 여자봉사자들이 안아서 목욕통에 몸을 옮길라치면 혹여라도 자신을 떨어뜨릴까봐 그나마 성한 한쪽 팔로 봉사자의 팔을 멍들 만큼 움켜잡는 습성이 있다. 때문에 완력이 있는 남자가 번쩍 들어주어야 한다. 김 복지사 대신 오늘은 사진기자가 그 일을 맡는다.

“예전에는 너무 멋쟁이셨을 것 같아요.”
“그랬던 것 다 소용없어. 지금은 목욕도 맘대로 못하고….”

목욕을 마친 뒤 한결 상쾌한 기분인 듯 침대에서 옷을 갈아입던 김씨에게 겨울엔 감기 걸리실까봐 못 올 것 같다니까 입술이 실죽해지며 김씨의 입에 울음이 물리는 듯 싶더니 둑방이 터진 듯 그예 엉엉 소리를 내고 만다.

“어쩐다요…. 전처럼 한달에 한번은 목욕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목욕은 이제 겨우내 못하겠네. 이제 난 으떡하나….”
“울지마세요. 아저씨나 아드님이 시켜주시면 되죠.”
“못해요. 남편은 휠체어에 앉혀 머리나 감겨주지….”

그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돌아서자니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봉사자들은 가슴이 먹먹한 가 보다.

이번이 4번째 목욕봉사길이라는 김미경 씨도 한마디 거든다. 첫날 봉사 때 집안풍경에다 목욕을 못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환자들을 대하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는 그이는 ‘세상에 소외된 이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올 3월 새로 취임한 정종기 원장은 정형외과 의사로 이전부터 보령아산병원에서 진료부장을 맡아왔다. 진료부장 때부터 ‘지역사회와 병원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강조를 늘 입버릇처럼 달고 살아왔던 그의 취임 이후 보령병원은 더욱 ‘찾아가는 아산병원’으로서의 면모가 다져지고 있다. 무료목욕봉사 외에도 그동안 해왔던 순회진료 검진 차량을 이용, 연중 인근 8개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무료진료 활동도 펼치고 있다. 직원들 모두가 조를 짜서 쉬는 날이면 대천애육원 등 아동복지시설을 찾아 삼계탕 등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책읽기며 놀아주는 봉사를 한다. 올 7월 12일에는 16개 읍 면 동 통장과 이장 중, 대표자 16명을 병원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해 봉사할 만한 일들을 찾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사랑의 연탄배달 행사의 범위를 확대해 올해는 이장들을 통해 가장 어려운 가구를 추천받아 16개 가구에 연탄 300장씩을 돌릴 예정이다. 이런 찾아가는 봉사활동 덕분일까. 2006년 260병상 미만의 118개 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기관 평가에서 보령아산병원은 우수의료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목욕봉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마침 오늘이 부여군 외산면 만수노인복지관에 무료진료를 나가는 날이라 한다. 방문지는 만수산과 아미산을 낀 산자락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만수노인복지관. 1995년 개원했다는 이곳에는 평균연령 80세 이상 되는 고령의 노인 55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조진원 2내과 과장, 채혈을 맡은 고미화 간호과장, 투약을 맡은 김선정 간호사, 혈압을 재는 박현선 간호사, 이동철 X레이 촬영기사 모두 자신의 할 일을 잘 알고 있는 듯, 짐을 옮겨놓고 장비를 설치하고 휴게실이 5분 안에 뚝딱 검진실로 바뀐다. 여기저기 소화도 안되고 아픈 데가 많은 노인들은 자신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흰 가운 입은 의사와 간호사의 등장이 너무나 반갑기만 하다. “요즘 통 소화가 안된다”고 하소연하는 김인순(96) 할머니의 증상은 심각한 편이다. 역류성식도염이 악화되어 내시경이 필요한 상태. “팔다리보다 나는 속이 아파 죽갔어요. 미식미식한 것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김경운(91) 할머니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한다. 의사가 진찰을 마친 뒤 귀에 대고 “내시경검사 해보셔야겠어요.”하고 크게 소리친다.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네시경에 약 먹으라고?” 화답하는 할머니. 좌중에 웃음이 터진다.

이번에는 휠체어를 탄 조성임(78) 할머니의 등장. 그를 보더니 조진원 과장이 반가운 표정으로 벌떡 일어선다. “아니, 할머니 여기 계셨네. 또 뵈니까 좋네요. 지금도 숨가쁜 증상 있어요?” 환자도 반가움에 의사의 손을 맞잡으니,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다. 사연인즉 2년전 호흡곤란 증세로 중환자실에 있던 할머니다. 진찰 결과는 정상. 할머니는 숨가쁨은 없어졌는데 기억이 점점 나빠져서 걱정이란다. 한참 할머니 얘기를 귀여겨듣던 의사가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한다. “이렇게 살아나셨는데…. 힘내셔!” 그 한마디에 괜시리 코끝이 찡해온다.

장비를 주섬주섬 챙기는 일행을 기다리며 밤하늘에 하나 둘 떠오르는 별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온 뒤끝, 쌀쌀한 냉기가 코끝에 쌩 하니 감겨온다. 취재 때에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추위다. 그 추위 속에서 불현듯 “이상하죠? 봉사를 하지 않은 날은 찝찝하고 일도 잘 안풀리는 게…. 봉사도 맛들이면 중독되나봐요” 하던 봉사자 이향림 씨의 말이 떠오른다. 그 중독은 추위를 따뜻하게 만드는 마력도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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