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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우즈업 제7회 아산의학상 수상자 임상의학 이경수 교수 채승웅


“아산의학상은 전통적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큰 상을 받게 돼 정말 기쁩니다. 폐암의 조기발견, 치료방법 예측 관련 업적을 인정받아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더 잘 하라는 뜻으로 알고 후배 양성에 주력하겠습니다. 또 아산의학상 수상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앞으로 더욱 열심히 연구해서 세계적인 업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성균관대 의대 영상의학과 이경수(58) 교수는 1989년부터 폐관련 질환 연구와 흉부영상의학 연구에 몰두, 우리나라 흉부영상의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업적을 인정받아 제7회 아산의학상 임상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교수의 업적은 그가 저술한 SCI(Science Citation Index,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 수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2013년 10월까지 그가 저술한 SCI 논문은 총 314편이다. 이 중 ‘폐암의 병기 결정’,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에 의한 병기 결정’ 등의 논문은 전 세계 영상의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2008년과 2012년에는 그의 논문이 세계 영상의학 분야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레이디올로지(Radiology)>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사실 이 교수의 업적을 요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단 뜻이다. 긴 세월 내내 이 교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하면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가?’였다.

“혈액검사로는 폐암을 판별할 수 없기 때문에 조직검사를 하거나 영상장비를 이용해 육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폐암을 발견하는 방법은 긴 세월 동안 수차례 바뀌었죠. 제가 의사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영상장비가 낙후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폐 자체에서 조직을 얻는 것도 불가능해서 폐 겉의 막에서 조직을 얻었습니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는 흉간경이 발전해 늑막에 구멍을 뚫고 내시경을 넣어서 폐에서 직접 조직을 떼어낼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엑스레이, CT 등 영상장비를 이용해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됐죠.”

그의 논문 중에서도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에 의한 병기 결정’은 폐암의 조기발견과 각각의 경우에 맞는 치료방법을 도출하는데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일명 ‘펫 시티(PET CT)’라 불리는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장비는 포도당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소비하는 세포를 발견할 수 있는 최신영상장비다. 기존의 CT 촬영으로 폐가 섬유화 되는 등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이 장비를 이용해 암세포를 찾을 수 있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이러한 펫 시티 영상데이터로 암의 진행 정도(병기)를 구분하고 그에 맞는 적합한 치료방법을 명시했다.



의사들의 의사

2012년 논문에서는 조기폐암의 재발 가능성, 적절한 치료방법 등을 영상판독만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밝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조기 폐암 단계에서 수술이 적합한지, 항암치료가 적합한지 판단하는 것은 물론 이후 환자에게 나타날 증상까지 영상판독만으로 예측 가능케 한 것이다.

이경수 교수는 1956년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문과생이었던 그의 꿈은 법관이었다. 고3 시절 이과로 전향해 서울공대에 지원했지만 낙방했고, 다음해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 중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가 영상의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 은사였던 한용철 박사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영상을 보고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하게 진단하는 모습에 감동했죠. 영상의학의 중요성과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알게 된 후 모든 것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교수는 영상의학 중에서도 폐를 주로 보는 흉부영상의학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전문의 생활을 처음 시작한 1989년에는 순천향병원에서 근골격 영상을 주로 보게 됐다. 그는 폐를 보기 위해 1993년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겼고 20년 넘게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 3년 동안은 아침마다 같은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과 CT 영상을 놓고 한 시간씩 판독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엑스레이만 봐도 CT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상한 점들이 보이더라고요. 남들이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내공이 쌓인 것입니다. 이후에는 정말 못 볼 게 없더라고요(웃음).”

이 교수는 2000년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폐 속에 숨어 있는 암 세포를 아주 이른 시기에 발견하기도 했다.
“미국 의사들이 ‘그 단계에서 어떻게 폐암을 발견했느냐?’며 놀랐습니다. 보통 폐암은 결절을 발견해야 암이라고 판단하는데, 이 회장님의 사진에서는 결절이 발견되지 않았거든요. 임파절이 약간 커진 형태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암 예측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악성인지 양성인지 몰라 정밀검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조직검사를 통해 암세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영상의학 전문의를 두고 ‘의사들의 의사’라고 하는데 이렇게 의사들에게 가장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최근 자신의 20여년 노하우를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영상의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폐의 경우는 더욱 그렇죠. 암이 진행될 만큼 진행된 상태, 즉 증상이 나타난 후에 암을 발견한다면 이미 늦습니다. 치료할 수 있을 때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일을 영상의학 전문의들이 맡고 있습니다. 게다가 폐암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죠. 제가 흉부영상의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놓치면 끝이다”

‘근면, 성실’이 좌우명인 이 교수의 별명은 칸트다.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점이 칸트와 닮아 붙은 별명이다. 20년 넘게 삼성서울병원으로 출근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침 7시 10분 전에 자신의 책상 앞에 앉지 않은 적이 없다. 성균관대학교 수원캠퍼스로 강의를 하러 가는 날에도 반드시 아침에 병원으로 출근해 영상물들을 판독한다. 이 교수가 하루 평균 판독하는 영상은 50개 정도다.

이 교수에게는 당뇨병이 있다. 가족력이다. 그래서 병원의 스포츠센터에서 열심히 운동하면서 체중 54kg을 유지하고 있다. 키는 167cm이다.

부인 이경숙(58・서울대 간호학과 졸업) 씨와는 대학교에서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났다. 슬하의 두 아들은 이 교수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큰아들 주황(31) 씨는 현재 경남 함안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고, 작은 아들 주영(29) 씨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다. 작은아들은 수능 전국 1등을 차지한 뒤 서울대에 수석 입학했고, 큰아들은 고려대 공대를 졸업한 뒤 뒤늦게 의사가 됐다. 큰며느리 또한 의사다.

“제 영향을 받았겠지만 서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큰아들은 지역사회에 봉사를 하고 싶어 의사가 됐죠. 작은아들은 학자가 되고 싶어 의사가 됐습니다. 때문에 큰아들에게는 인성과 관련된 조언을 많이 해주고, 작은아들에게는 학문과 관련된 조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웃음).”

이 교수는 최근 성균관대 의대 학장 겸 의과전문대학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후배 의사들 앞에선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따뜻한 선배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이번 아산의학상을 통해 받는 상금도 흉부영상의학 발전을 위해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많이 하죠. 특히 영상의학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는 꼭 갖추어야 할 소양이 있습니다. 바로 신중함이죠.영상의학과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암이 자란 뒤에 증상이 나타나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영상을 볼 때마다 ‘우리가 놓치면 끝이다’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영상의학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융합’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PET와 MRI의 융합, 핵의학과 영상의학의 융합 등 여러 가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죠. 다른 분야 의사들과의 연계도 중요합니다. 영상의학 전문의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요즘은 환자들 앞에 서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늘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다른 분야 의사들과 함께 환자가 완치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죠.”
이 교수는 흡연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순한 담배, 전자담배, 간접흡연 등 모두 위험합니다. 필터의 성능이 좋은 담배를 애용하는 흡연자들은 깊이 마시는 습관이 있는데 이러한 습관은 더욱 위험하죠. 폐암 중 20%는 주로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성입니다. CT로 3mm 크기의 결절부터 판독이 가능한데, 악성의 경우는 3mm에서 2cm로 커지는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하죠.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발견하더라도 치료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영상의학과는 우리나라에서 ‘방사선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의과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없는 분야였다. 하지만 요즘의 영상의학과는 이른바 ‘정재영’이라고 해서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와 함께 의대생들이 가장 많이 지망하는 진료과 중의 하나가 됐다.

우리나라 영상의학계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은 이경수 교수와 같은 뛰어난 의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이경수 교수가, 혹은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 의사들이 우리나라의 흉부영상의학을 얼마나 더 발전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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