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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제7회 아산의학상 수상자 기초의학 서판길 교수 유인종


제7회 아산의학상 수상자가 결정되었다.

기초의학 부문은 서판길(62) UNIST(유니스트, 울산과학기술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가, 임상의학 부문은 이경수(58)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영상의학과 교수가 수상했다. 젊은의학자 부문은 2명의 의학자가 선정됐는데, 고재원(36) 연세대학교 신경생물학과 교수와 박덕우(41)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심장내과 교수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상금은 아산의학상이 각각 3억 원, 젊은의학자 부문이 각 5천만 원이다.

아산의학상은 아산재단이 인류의 건강증진을 위해 기초와 임상의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국내 의과학자를 발굴해 격려하기 위한 상으로 2007년에 제정됐다.



정년 70세인 최초의 국립대학 교수

울산시 언양읍에 자리한 UNIST는 2009년 3월에 개교한 국립대학이다. 신입생들은 고교 성적 상위 2.5% 이내이고, 교수 220여명의 3분의 2가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탠퍼드대,캘리포니아공대(칼텍), 옥스퍼드대 등 세계 명문대 출신이라고한다.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모든 강좌를 100%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

이 대학의 건물들은 아파트처럼 숫자로 표시되는데, 104동 705호가 서판길 교수의 거점이다. 연구실 입구에는 ‘705-1 당뇨 및 대사질환 연구실’, ‘705-2 생체신호 네트워크 연구실’, ‘705-3 국가석학교수 서판길’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20여년 동안 세포신호전달 분야를 핵심적으로 연구해온 서 교수는 <셀(Cell)>,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등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 2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피인용횟수가 1만 회를 상회하며, 이런 연구 업적으로 2007년 교육부가 주관하는 국가석학으로 선정되는 등 국내 기초의학 발전에 기여해왔다.

정년 70세를 인정받은 최초의 국립대학 교수이기도 한 서 교수는 환갑을 넘긴 지난해에도 13편의 논문을 제출해 ‘영원한 현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실 3개가 합쳐져 있어서 실내는 무척 넓다. 연구실에 들어서서 열 걸음쯤 걸어가자 왼편에 서 교수의 방이 보인다. UNIST의 연구부총장이자 국가석학 교수의 방치고는 크지 않고 소박하다. 천장에는 무슨 의미인지 앵그리 버드(Angry Birds)의 모빌이 걸려 있고, 입구 왼편 책장에는 영어 원서들이 빼곡하다. 책장 옆에 세워진 옷걸이에 넥타이가 몇 개 걸려 있는데 빨간색 넥타이가 세 개, 자주색이 한 개여서 방 주인의 열정적인 성격을 짐작케 한다.
아니나 다를까, 서 교수는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의 좌우명이 ‘열정과 목표를 갖고 즐겨라’, ‘노력하면 운은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공이산(愚公移山)’ 즉 ‘우직하게 공을 들이면 산도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에 짙은 밤색 카디건을 걸친 서 교수는 붉은색이 감도는 안색이 무척 건강해 보였고, 여기에 머리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백발이 잘 어울렸다. 또 원형의 안경 너머로는 그의 지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것처럼 까만 눈동자가 반짝였다.

1989년부터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0년 UNIST에 부임한 서판길 교수는 신호전달 핵심 단백질 중 하나인 ‘PLC’유전자를 밝혀내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생명과학자다.

꼬집으면 아픔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 몸의 각 기관들이 소통하는 것은 세포끼리 소통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포막 안에 있는 분자들이 상호 작용・소통하면서 생리현상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조직과 세포와 세포내 분자의 신호전달 핵심효소인 PLC(Phospholipase C, 포스폴리파제 씨)의 대표적인 동위효소 PLC-β(베타), PLC-γ(감마), PLC-δ(델타)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찾아낸 과학자가 바로 서 교수다.

‘No life without communication’

세포 밖에서 오는 물질의 접수창구 역할을 하는 수용체가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 등을 1차적으로 받아들이면, PLC에 의해 2차 신호전달물질이 만들어져 세포 안에서 분자간 신호전달 과정을 통해 생리활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1988년 <셀(Cell)>에 게재되었고, 현재 대부분의 생화학이나 세포생물학 대학 교재에 소개되어 있다.
서 교수는 PLC 세 종류를 세계 최초로 뇌에서 분리・정제하고, PLC가 매개하는 신호전달 기작(메커니즘)을 생명현상 이해의 기본개념으로 정립함으로써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규명했고, 이 분야 연구를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는 생명과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연구실 한쪽 벽에 이러한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도식이 ‘No life without communication(소통 없이는 생명도 없다)’는 제목 아래 붙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 교수의 궁극적인 연구 목표는 생명현상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하여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세포신호전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암이 성장하는 원리와 전이과정을 규명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서 교수는 PLC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성장 신호전달을 매개하는 PLC-γ1이 암세포에서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있고, 활성화된 PLC-γ1이 암세포 성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잇달아 밝혀냈다.

또 PLC-γ1이 세포 수용체가 받아들인 성장호르몬을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하는 스위치라는 것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이는 성장호르몬의 조절 이상으로 일어나는 암이나 당뇨 등 대사성 질환을 이해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UNIST의 세포간 신호교신에 의한 암제어연구센터(Center for Cell to Cell Communication in Cancer, C5센터) 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 교수는 암 세포와 주변 세포간의 신호교신 연구를 바탕으로 생체 내의 암 성장과 전이 기작을 규명하고 새로운 암진단과 치료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서 교수는 또한 지속적인 운동이 인체에 미치는 우울증 완화원리를 밝혀 학계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뼈를 만드는 조골세포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중에서 부러진 뼈를 빨리 회복시키는 단백질을 찾아내기도 했다.
지금까지 23명의 박사와 28명의 석사를 배출하는 등 열정적으로 후학을 양성했고, 생명신비의 탐험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바이오 포럼을 개최하는 등 과학기술 대중화에 공헌했으며, 국제 학술대회에서 연 2~3회 기조 및 초청 강연을 하는 등 국제적으로 높은 지명도를 얻고 있는 서 교수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세계 11위로 선진국에 상당히 근접했다”면서 “10~20년 뒤엔 틀림없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생명체 연구 위해 수의대 입학

서판길 교수는 1952년 경북 영덕에서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형님 두 분은 돌아가시고, 80세인 둘째형과 누나들만 생존해 있다.
성장과정에 약간의 굴곡이 있는 서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바로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대학은 서울대의대를 지망했는데, 3년 연속 낙방하고 말았다. 그러자 서울대 수의대 1회 졸업생이자 건국대 수의대 교수였던 사촌매부 황칠성 교수가 “생명체 연구를 하고 싶다면 의대보다 수의대가 더 낫다”며 수의대를 권유해 1973년 서울대 수의대에 입학해 1980년에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서울대 기숙사인 정영사(正英舍)의 터줏대감 노릇을 했는데, 지금은 서울대 의대 3학년인 딸(훈녕・26)이 머물고 있다. 대학을 졸업할 때는 문교부장관상을 받았다. 대학원은 의학과에 입학해 모두 서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에는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3년간 일했다. 1989년 귀국하여 포항공대 교수로 부임하였다가 앞서 말한 대로 2010년 UNIST로 옮겼다. 그는 대외적인 활동도 왕성해서 포항공대 교수로 있으면서 4년간 연구처장을 맡았으며, 이 시기에 전국대학교 연구처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UNIST에서도 2012년부터 연구부총장을 맡고 있다. 행정 업무도 많지만, 무엇보다 연구에 몰두하느라 강의는 보통 한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결혼은 박사과정에 다니던 1984년에 했다. 부인은 이화여대의대를 졸업한 뒤 10년간 동국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를 역임한 윤혜원(59) 씨. 요실금 전문의인 부인은 지금 포항에서 개업 중이다.

간암을 진단하는 키트를 서 교수가 개발했는데, 탯줄에서 분리해야 하는 이 키트 때문에 동국대 산부인과를 드나들다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결혼 이듬해에 태어난 아들(훈창・29)은 중앙대 의대를 졸업한 뒤 중앙대 병원에서 재활의학과 1년차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다.

아침 8시 반에 출근해 연구부총장으로서 오전엔 행정 업무를 보다가 강의와 연구 등으로 보통 자정 넘어 퇴근하는 서 교수는 주말이면 포항의 집으로 간다. 170cm에 85kg인 서 교수는 체중을 80kg으로 줄이는 게 목표여서 최근 수영을 배우고 있다. 골프는 배울 기회 없어서 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산의학상을 받게 되어서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연구를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기초의학 연구를 확립하고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상금은, 액수가 너무 많아서 고민인데, 그동안 내가 괴롭힌 학생들 지원기금을 만들까, 연구를 위한 기금을 만들까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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